내과

[의학칼럼] 암보다 치명적인 심부전, 입원 막아야 환자 살린다

대한심부전학회 강석민 회장(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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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심부전학회 강석민 회장/세브란스병원 제공
2년 정도 같이 치료해온 60대 심부전 환자가 얼마 전 응급실로 실려왔다. 급하게 혈관을 확장시키는 처치를 통해 큰 고비를 넘겼지만, 여전히 혈액 검사 결과나 호흡 상태가 좋지 못해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환자가 퇴원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 더욱 안타깝다.

20년 이상 심부전을 치료해온 의사로서 다른 진료과 의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퇴원하는 환자를 보면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환자를 회복시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소명이자 큰 보람이다. 하지만 심부전을 보는 의사라면 환자의 퇴원이 온전히 기쁠 수 만은 없다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재입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심부전은 모든 심장질환의 종착지라고 불리는 질환이다. 고혈압, 심근경색과 같은 심장 혈관 질환, 판막 질환 등, 각종 심장질환이 오래 지속되면 심장 기능이 점차 떨어지게 되고, 그러다가 우리 몸에 충분한 혈류를 내보내지 못할 정도로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진 상태, 즉 심부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심부전 환자들은 호흡 곤란, 심장 내 울혈(피가 고임)과 같은 증상들로 인해 갑작스럽게 응급실 방문이나 입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심부전 환자의 2명 중 1명은 6개월 내에, 그리고 4명 중 1명은 한 달 내에 재입원한다는 통계도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심부전에서 입원은 사망과 직결되는 위험 요인이라는 것이다. 환자의 입원 횟수와 생존 기간은 반비례한다. 대한심부전학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심부전 입원 환자의 5년 생존율은 55%로, 외래 환자 86%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대부분의 암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심부전 또한 항암 치료와 같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약제를 적절한 용량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암이 진행하듯이 심부전 증상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성 심부전 치료의 가장 우선순위는 급격한 악화와 이로 인한 입원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입원과 사망 위험이 높은 심부전 환자에서 유일하게 효과를 확인한 약제가 허가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사실 상 환자들이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기존의 심부전 치료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계열로서 최근에 개발된 약제는, 심장의 수축과 재형성을 조절하는 세포에 직접 작용함으로써 심근과 혈관 기능을 개선시킨다. 한국인이 참여한 다국가 연구에서 매우 고위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부전 환자들의 입원 위험은 물론, 심부전으로 인한 사망률을 유의미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심부전학회에서도 지난 해부터 기존 치료에도 불구하고 심부전 증상으로 입원을 경험한 환자들에게 해당 약제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 약제가 국내에서 사용 허가를 받은 지 3년차에 접어들었음에도, 건강보험이라는 행정적 절차 때문에 현장의 의사와 환자들이 진료 지침에 기반한 효과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퇴원하는 환자에게 이전보다 더 나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는 약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의 약제를 계속 처방해야 하는 것은 의사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약제를 통해 입원을 예방하는 것은 환자들의 예후 향상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심부전은 심장 질환 중 단일 질환으로는 가장 많은 의료비가 지출되는 질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심부전 환자의 연간 의료비는 850만원이 넘는다. 이것은 비입원 환자보다 9배가 넘는 금액으로, 새로운 약제를 통해 입원을 예방한다면 전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입원 기간 동안 발생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생산성 손실까지 고려한다면 그 절감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힘으로 예방할 수 있는 일도 적절한 때를 놓치면 더 큰 노력과 공이 들어야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심부전 치료는 입원을 막지 못하면 환자의 생명도 장담할 수 없다. 효과적인 약물 치료로 심부전 환자들의 악화와 입원을 예방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인 사망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위험 심부전 환자들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에 더 이상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도록,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심부전 치료제에 대한 조속한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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