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원샷 치료제 있어도… 심장 굳을까 걱정하는 SMA 환자들
신은진 기자
입력 2023/04/13 09:23
[0.001%의 싸움]①척수성 근위축증(SMA)
세계 희귀질환 유병률은 10만 명당 1.2명으로 추산된다. 0.001%의 확률로 온 질환이지만, 희망을 놓긴 이르다. 전 세계 제약사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투자하고, 결과물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희귀질환 치료를 지원하겠다고 한다.
헬스조선은 척수성 근위축증을 시작으로, 희귀해서 소외받았던 희귀질환의 정체와 환자들의 현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심장 굳어 죽거나 정신 멀쩡한 전신마비로 살거나
척수성 근위축증(SMA)은 심장과 호흡 근육이 굳어 죽거나 정신은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는데, 전신은 마비돼 숨쉬기조차 스스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신생아 1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부모가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가 아니라도, 유전자 소실이나 변이가 생겨 자녀는 척수성 근위축증이 발병하기도 한다.
운동 기능에 필수적인 생존운동신경세포(Survival Motor Neuron, SMN) 단백질 결핍으로 인해 운동 신경이 약화하고, 전신의 근육이 서서히 약해지는 병으로, 근위축증은 주로 영아기에 첫 증상을 보이지만 모든 연령에서 발병한다. 발병 시기와 운동 가능 상태에 따라 1형~4형으로 분류된다.
1형은 생후 0~6개월 미만에 증상이 발현된 경우로, 전신 근육 약화와 함께 특히 삼킴과 호흡이 어려워 사망 위험이 크다. 생후 6~18개월에 발병하는 2형은 저작 근육 약화와 다리 근육 약화가 흔하게 나타난다. 30% 이상의 환자가 만 25세 이전에 사망한다. 사망하지 않더라도 독립 보행과 삼킴 등 주요 근육 기능이 크게 떨어져 휠체어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생후 18개월 이후 발병하는 3형은 독립적 보행 등 대부분의 운동 기능이 가능하다. 다만, 청소년기와 성인기 초반에만 독립 보행이 가능하고, 서서히 근력이 약화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유아기에 근육 약화가 나타난 경우, 휠체어가 필요하기도 하고, 보행 능력을 상실한 환자에게선 척추측만증이 흔하게 나타난다. 4형은 발병연령이 18세 이상 성인기인 경우를 말한다. 이들은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걸을 수 있지만, 손과 발 근육 사용엔 어려움을 겪는다.
1, 2형 환자의 중증도가 높고, 증상이 더욱 심한 건 1형이다. 국내 환자가 10명 정도로 추정되는 1형 SMA의 경우, 출생 직후부터 운동신경세포 퇴화가 빠르게 진행돼 생후 6개월 전에 95% 이상이 손상되고, 치료하지 않으면 90% 이상의 환자가 만 2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거나 평생 보조 호흡장치에 의존해야 한다. 한 번 사멸된 운동 신경 세포는 다시 복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굉장히 치명적인 희귀질환임에도 어느 순간부터 상당수가 척수성 근위축증은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라고 아는 사람이 늘었다.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가 등장한 것이다. 대부분의 희귀질환이 제대로 된 약도 없는 상황인데, 척수성 근위축증은 치료제가 바이오젠의 '스핀라자', 로슈의 '에브리스디', 노바티스의 '졸겐스마' 등 3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졸겐스마가 1회 치료비가 약 20억에 달하는 초고가 약이지만 척수성 근위축증을 일으키는 SMN1 유전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한 번의 치료만으로 질병이 완치되는 원샷(one-shot) 치료제로 유명하다.
이 치료제들은 스스로 호흡조차 하지 못하거나 누워만 있어야 했던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가 혼자서 움직일 수 있게 할 만큼 효과가 뛰어나다. 실제로 치료제를 적절한 시기에 사용한 국내 척수성 근위축증 소아환자의 경우, 혼자서 움직임이 가능해지면서 눈에 띄게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척수성 근위축증은 특정 치료제의 존재만으로 완치를 언급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치료비가 비싸지만,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 아니라, 여전히 더 나은 치료법을 찾아야 하는 희귀난치질환 중 하나다.
강남세브란스 신경과 박형준 교수는 "척수성 근위축증은 특정 약제만으로 완벽하게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며, "원샷치료제로 알려진 졸겐스마도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는 약임에도 투약 후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완치' 효과를 내는 약은 아니다"고 밝혔다. 졸겐스마의 경우, 투약하면 10명 중 2명은 독립보행이, 2명은 도움 없이 설 수 있다는 임상결과가 존재하는데 이는 졸겐스마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일반인과 똑같이 움직일 수 있게 된단 걸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박형준 교수는 "졸겐스마 사용 후에도 치료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다른 약제를 추가로 사용하는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고 말했다.
◇희귀질환 속 사각지대까지… 치료접근성 높여야
이처럼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의 괴로움은 끝나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심지어 그나마 있는 치료제도 사용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소년·성인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가 치료제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소아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는 '졸겐스마'가 급여권에 진입하면서, 이를 투약 후 효과를 보는 환자가 늘고 있다. 반면, 청소년·성인 환자는 졸겐스마 투약 대상이 아니라 졸겐스마는 사용하지도 못하고, 청소년·성인용 치료제는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급여기준이 너무 엄격해 사용이 어렵다.
2023년 4월 기준 국내에 허가된 청소년·성인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용 치료제는 '스핀라자'와 '에브리스디'가 있는데, 급여가 적용되는 건 스핀라자 뿐이다. 에브리스디는 지난 2021년 7월 급여 신청을 했으나, 급여등재 첫 단계인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상정조차 되지 못한 상태다.
스핀라자는 급여 사용이 가능은 하지만, 급여 혜택을 받기 위해선 ▲5q SMN-1 유전자의 결손 또는 변이의 유전자적 진단을 받았으며, ▲만 3세 이하에 SMA 관련 임상 증상과 징후가 발현됐고, ▲영구적 인공호흡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 환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청소년·성인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의 증상 발현 시점은 대부분 10대 중후반이거나 성인이 된 이후인 탓에 스핀라자 급여 사용은 극도로 제한된다.
급여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청소년·성인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는 관절, 척추 변형으로 인한 심한 척추측만증 때문에 척추에 직접 주사해야 하는 스핀라자 투약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투약 전엔 엑스레이나 CT 등 방사선 촬영의 반복이 불가피하고, 제대로 된 투약 자체도 어렵다. 임상현장에선 스핀라자 투약 중 통증이 너무 심해 치료를 중단하거나,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까지 이동하는 게 어려워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들에겐 경구형태인 에브리스디가 대안이 될 수 있으나, 비급여로 사용하면 1년 치료비가 약 3억원이 넘는 에브리스디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는 없다.
박형준 교수는 "졸겐스마와 스핀라자, 에브리스디는 치료기전이 다른 약이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며, "의사 입장에선 보험급여 확대를 통해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에게 다양한 치료 선택지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희귀난치질환의 특성을 고려한 허가·급여기준 개편의 필요성을 전했다. 박형준 교수는 "대부분의 희귀난치성 질환은 약조차 없고, 그나마 있는 약도 허가·급여 기준에 맞지 않아 사용하지 못할 때가 잦다"며,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계속 나빠질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약을 사용할 수 없어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된 것을 알고 있으나, 적어도 약이 있는 질환은 약을 사용할 수 있게 환경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