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재활용 9% 불과”… 미세플라스틱 돼 인체로 돌아온다

이해림 기자

‘미세플라스틱 특별법’ 도입돼야

▲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플라스틱 폐기물 탓에 자연에 방사된 미세플라스틱은 생물의 몸에 축적되고, 궁극적으로는 그 생물을 섭취하는 사람의 몸에까지 들어온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시민·​산업계·​정부가 함께 미세플라스틱 저감에 힘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김치를 사서 가위로 뜯었는데 가위에 무언가가 붙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분해돼서 가루가 되다시피 한 봉투였습니다. 플라스틱 재질의 봉투가 산성인 김치에 닿은 채로 삭은 것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래 쓴 가습기에 파우더 같은 미세플라스틱이 가라앉은 걸 본 적도 있습니다. 가습기가 작동할 때 생기는 미세한 진동에 플라스틱이 마모돼 생긴 겁니다. 사람이 10년간 이런 식으로 자신도 모르게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경희대 의과대학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박은정 교수의 말이다. 그는 ‘김치 봉투 사건’을 계기로 미세플라스틱의 신체 독성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미세플라스틱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폐에 석면에 노출된 폐와 비슷한 이상 조직이 생긴 것을 관찰했다.

김치봉투 성분인 폴리에틸렌의 장기 섭취가 부모세대의 면역계를 넘어 자녀세대의 호르몬 분비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확인했다. 박은정 교수는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섰다. 지금이야말로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이란 생각에서다.​ 이는 박은정 교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정지현 책임연구원은 "현재 한국 연안의 미세플라스틱 오염도는 높지 않지만, 2100년에는 연안의 80%에서 미세플라스틱 오염도가 무영향예측농도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생물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의 농도가 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단 것이다.

미세플라스틱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지난 15일 국회박물관 강당에서 성료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과 소비자기후행동이 주관한 이번 토론회엔 학계·법조계·정책실무·산업계·환경단체 인사들이 여럿 모여 미세플라스틱 저감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한국분석과학연구소 정재학 연구소장과 조제희 변호사의 발표로 시작된 토론회는 토론자들의 발언과 시민-토론자 간 질의응답 시간으로 이어졌다. 토론자로는 ▲경희대 의과대학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박은정 교수 ▲마이크로필터 개발 1팀 이경수 실장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플라스틱 담당 전수원 과장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정지현 책임연구원 ▲환경부 김지영 환경보건정책과장 등이 자리했다.

▲ 지난 15일 국회박물관에서 진행된 미세플라스틱 특별법 토론회 현장./사진=소비자기후행동


토론회를 관통하는 내용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첫째, 생산된 플라스틱 제품과 제품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을 회수해야 한다. 둘째, 이를 위해선 시민과 산업계의 참여가 필요하다. 셋째, 국제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미세플라스틱 줄이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토론회 좌장으로 참여한 소비자기후행동 이차경 사무총장은 “사이언스어드밴스드 조사에 따르면,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총 83억 톤 가량의 플라스틱이 생산됐지만, 그중 재활용된 것은 약 9%(세계 평균)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그대로 환경에 노출돼 물과 자외선에 마모돼 미세플라스틱이 된다”고 말했다. 자연에 광범위하게 퍼진 미세플라스틱을 수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배출 전 회수’가 강조되는 이유다. 수명이 다한 플라스틱 제품이 환경에 노출되기 전에 제품 생산 기업이 거둬들이고, 세탁기 등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키는 전자제품에 ‘미세플라스틱 저감 필터’를 설치하는 게 한 방법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기업과 소비자가 환경 책임을 분담해야 이를 실현할 수 있다. 이에 ‘미세플라스틱 특별법’ 초안은 치약·스크럽제 속 마이크로비즈 같은 ‘1차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이 기준치 이상인 제품을 제조·수입·판매·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외부 환경에 노출된 플라스틱이 부서져 생기는 ‘2차 ​미세플라스틱’이 기준치 이상 발생·배출되지 않도록 조치할 의무 역시 기업에 부여했다. 소비자에겐 ‘플라스틱 보증금’이 부과된다. 플라스틱 폐기물이나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이 많은 업종에 해당하는 사업자는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 가격과 별도로 미세플라스틱 보증금을 제품 가격에 포함해야 한다. 단, 플라스틱 제품을 반환한 소비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차경 사무총장은 “소비자기후행동이 세탁기 제조업체 1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세플라스틱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덴 40% 이상이 동의했다”며 “다만, 기업 입장에선 기술적인 고민이 있을 수 있으므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계속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산업계 토론자로 참여한 마이크로필터 개발 1팀 이경수 실장은 기업의 고충이 크게 두 가지라고 밝혔다. 첫째로, 기업에서 개발한 미세플라스틱 저감 필터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표준화된 방법이 없다. 어떤 시료를 사용해 어떤 입자의 발생량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필터 성능 평가가 달라진다. 둘째로, 필터를 세탁기 등 제품 내부에 내장하면 제품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해 생산 단가가 높아진다. 그렇다고 외장형 필터를 만들자니 소비자가 7~10만 원에 별도 구매해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경수 실장은 “산업계 기술 개발을 정부가 지원해 주거나, 필터 실사용 소비자를 대상으로 보상을 줘야 미세플라스틱 저감 필터가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미세플라스틱 발생량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표준 시료와 측정입자를 정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첫 발표자인 정재학 한국분석과학연구소장 역시 “미세플라스틱 배출량을 줄이려면 우선 그 양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시험 방법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미세플라스틱 저감 필터도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기술 개발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미세플라스틱 저감 능력은 앞으로 국가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조제희 변호사는 “유럽연합(EU)은 미세플라스틱 규제를 위한 표준 인증 방법을 정하는 등 구체적 규제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며 “국내 플라스틱 관련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미세플라스틱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해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전수원 과장은 “세계 각국은 2024년 국제플라스틱 협약 제정을 앞두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도 플라스틱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비즈니스를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문제는 개별 정부 부서만 노력해선 해결할 수 없다.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주체와 정책을 입안하는 주체가 힘을 합쳐야 해서다. 이에 환경부 김지영 환경보건정책과장은 “다양한 연구 기관들이 참여하는 미세플라스틱 다부처 협의체가 작년 11월에 출범했다”며 “오는 2025년까지 대기·​물·​토양 등 환경매체별 미세플라스틱 분포량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중 질의응답 시간엔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김현욱 교수가 미세플라스틱 독성 시험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언급된 미세플라스틱 독성 연구에 활용된 미세플라스틱은 우리나라 하수처리장의 정수과정에서 걸러질 수 있는 크기라, 실제로 인체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또 실험실 연구를 위해 다량의 미세플라스틱을 단기간에 동물 또는 인체 조직에 노출시키면 이상 반응이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으니, 사망자의 시신을 부검했을 때 미세플라스틱이 신체 조직에서 나오는지 확인하는 식으로 독성 연구 방법을 전환하는 게 어떨까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한국분석과학연구소 정재학 연구소장은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독성은 연구 초기 단계라, 독성 연구 방법이나 결과에 대한 해석이 갈리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다만, 사람이나 동물의 조직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는 사례는 지금도 보고되고 있는 만큼 일단은 인체 독성에 대해서도 경계 태세를 갖추는 게 안전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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