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레인지, 美서 퇴출 막았지만… 그나마 안전하게 쓰려면 [살아남기]

오상훈 기자

[살아남기]

▲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도시가스 공급 체계가 완성된 이후 가스레인지는 인류가 손가락 두 개로 불을 만들 수 있게 해줬다. 서구권에선 1880년, 우리나라에선 1980년경의 일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정부기관이 가스레인지를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철회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가스레인지 자체가 호흡기에 안 좋다는 이유에선데 사실일까? 

◇가스레인지 금지 조치, 거센 반발에 철회
지난 9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리처드 트럼카 주니어 위원은 “건강과 호흡기 문제 등을 이유로 가스레인지 판매 금지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스레인지가 소아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내세웠다. 또 가스레인지가 실내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미세먼지 농도를 높이는 주범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거센 반발이 뒤따랐다. 가전제조협회는 가스레인지와는 무관하게 요리 자체가 유해한 부산물을 만든다고 반박했다. 또 공화당 의원들은 바이든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며 가정의 행복까지 빼앗아가려 한다며 가스레인지 금지 방침을 거부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안전위원회는 입장을 철회했다. 알렉산데르 호은-사릭 위원장이 “가스레인지를 금지할 생각도, 그럴 계획도 없다”고 발표한 것. 요리할 때 발생하는 각종 유해물질이 폐암과 호흡기질환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스레인지도 위험한 걸까?

◇실내 오염물질 원인이 가스레인지는 아직 불분명
리처드 트럼카 주니어 위원이 언급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지난달 ‘국제환경연구 및 공중보건 저널’ 에는 미국 어린이 천식 환자의 12.7%가 가스레인지에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연구팀은 어린이 천식 환자의 최고 21%가 가스레인지 사용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가스레인지가 간접흡연만큼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위 연구에는 한계가 있다. 단순히 지역별 가스레인지 사용 비율에 따라 어린이 천식 위험을 분석해낸 것. 79.1%의 가정이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일리노이주에선 21.1%의 소아 천식이 가스레인지 사용과 관련이 있다면 9.1%만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플로리다주에선 3%의 환자가 가스레인지와 관련이 있다는 식이었다. 실내 오염물질 수치와 관계된 각 주의 기후나 주거형태 등의 요인은 반영되지 않았다.

실내 오염물질이 호흡기에 좋지 않다는 건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나 그 주범이 가스레인지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양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연구팀이 2017년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지에 게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산화질소·이산화황·일산화탄소·미세먼지 등의 실내 오염물질은 호흡기 증상 악화와 천식 경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실내 오염물질 유발 원인은 ▲요리 등을 위한 실내 연소 ▲벽난로, 히터와 같은 난방 장치 ▲흡연 등으로 다양하다. 연구팀은 실내오염이 가스레인지에 의한 것인지, 조리할 때 음식물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에 의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사용하지 않을 때도 오염 물질 내보내는 가스레인지 
다만 가스레인지 자체의 위험성을 추정할 수 있는 몇몇 이유가 있다. 가스레인지의 원료는 액화천연가스(LNG)다. 천연가스는 고온에서 타오를 때 어린이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이산화질소를 배출한다. 또 가스레인지는 완전히 연소할 만큼 충분한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불완전연소가 발생하는 데 이때 황산화물, 포름알데히드, 일산화탄소 등 각종 실내오염물질들이 형성된다. 호흡기질환에 영향을 끼친다는 객관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지만 유해물질을 발생시키는 건 어느 정도 사실.

게다가 가스레인지는 사용하지 않을 때도 메탄을 내뿜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1월 ‘환경 과학과 기술’에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메탄의 75% 이상이 기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메탄은 인체에 유해하진 않지만 온실가스 형성에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로선 조리할 때마다 환기하는 게 답
조리하지 않으면서 가스레인지만 단독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재로선 조리할 때마다 환기하는 게 정답이라고 볼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공동 발간한 ‘공동주택 환기설비 매뉴얼’에 따르면 10분간의 자연 환기는 실내 오염물질 수치를 3분의 1가량으로 감소시킨다. 음식을 조리했다면 30분 정도는 환기하는 게 좋다.

마스크는 안 쓰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오염물질 차단율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마스크 중 차단율이 높은 건 KF94다. 평균 크기가 0.4μm(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인 미세 입자를 94% 이상 차단한다는 뜻이다. 실내 오염물질 중 0.4μm보다 작은 것들이 많다. 포름알데히드는 0.1마이크로미터의 500분의 1로 알려져 있다. 공기청정기도 마찬가지다. 환경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 공기청정기의 오차율은 51~90%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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