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일반
뇌출혈, 일찍 병원 갔으면 살았다? 전문가 의견 달랐다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2/05/10 09:57
뇌출혈 예후, 병원 이송시간보다 출혈량·출혈 위치 영향
전조증상 없는 경우 많아… 혈압관리, 금연 필수
최근 영화배우 강수연씨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사인이었던 뇌출혈에 대한 관심이 높다. 뇌출혈은 뇌졸중의 한 종류로 뇌 조직 안의 혈관이 터져 뇌 손상이 생긴 것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골든타임'만 지키면 되는 살 수 있는 병, 노인이 주의해야 할 질환으로 알려졌기에 그의 사망 소식은 더욱 충격으로 다가온다. 2022년 뇌출혈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4050 방심 못 할 뇌출혈, 전조 없는 경우 흔해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뇌출혈은 노인질환도 아니고, 의심증상(전조증상)이 반드시 있는 것도 아니다. 뇌출혈은 40~50대에도 흔하게 발생하며, 뇌출혈의 가장 대표적인 전조증상으로 알려진 두통도 일부 환자에게만 나타난다. 환자 대부분은 뇌졸중 전조 증상조차 없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배희준 교수 연구팀이 최근 10년(2010~2020년)간 국내 뇌졸중 환자(뇌경색, 뇌출혈 종합)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내 뇌졸중 환자 평균 나이는 68세, 뇌경색은 70세, 뇌출혈은 64세이다. 그중에서도 강수연 씨의 사망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출혈 환자의 평균연령은 58세로 젊은 편이다. 지주막하출혈은 40대에서도 흔하게 발생한다. 이는 뇌출혈 중 고혈압성 뇌출혈의 주요 원인은 고혈압,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출혈은 유전, 가족력 등이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강 씨가 사망 전 두통 증상을 호소했다고 알려지면서 뇌출혈의 주요 전조 증상으로 두통이 언급되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뇌출혈 전조증상으로 두통을 경험하는 건 뇌출혈 환자의 1/4 수준에 불과하다.
고대안산병원 임동준 교수는 "뇌출혈, 특히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은 심한 두통 증상을 동반한다고 알려졌는데, 전조증상으로 두통을 경험한 환자는 25% 수준이다"고 말했다. 그는 뇌출혈이 뇌졸중의 한 종류라, 뇌졸중과 전조 증상이 같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도 전했다. 우리가 뇌졸중 전조 증상으로 아는 건 뇌경색의 증상이라는 것이다. 임 교수는 "뇌경색은 뇌졸중 전조증상으로 알려진 언어장애, 편마비,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뇌출혈은 전조증상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배희준 교수는 "뇌출혈의 주요 증상으로는 두통이 있긴 하나, 출혈 위치에 따라 전조 증상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전조 증상이 반드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만약 뇌출혈에 의한 두통이 발생했다면 환자들이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두통'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강렬하며, 이는 출혈이 생기는 순간 압력 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골든타임 의미 없는 뇌출혈
뇌출혈은 골든타임도 없다. 뇌졸중의 골든타임은 4.5시간이기에 이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뇌경색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한양대병원 신경외과 이형중 교수는 "뇌경색은 4.5시간 내에 막힌 혈관을 뚫어주면 좋은 경과를 기대할 수 있고, 그 이후엔 막힌 혈관을 뚫어도 회복이 어려워 골든타임을 4.5시간이라 보는 것"이라며 "반면, 뇌출혈은 출혈량과 위치 등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최대한 빠른 게 골든타임이다"고 밝혔다.
문제는 증상 발생 후 빠른 처치가 좋은 예후를 보장하지도 않는단 것이다. 배희준 교수는 "국내 최신 연구에서 뇌경색은 치료시간이 45분 빨라질 때마다 생존율이 10%씩 개선되지만, 뇌출혈은 예후 예측조차 어렵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뇌출혈은 최대한 빨리 치료하는 게 중요하지만, 빠른 대처가 예후를 보장하는 질환이 아니기에 '골든타임'이 없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뇌출혈의 예후를 결정하는 건 출혈량과 출혈 위치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환자사례를 보면, 증상 발생 후 바로 병원에 오더라도 출혈량이 많고 출혈 위치가 좋지 않아 수술도 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안 좋은 환자가 있다. 반면, 밤새 의식을 잃고 되찾기를 반복하다 다음 날 계속된 두통 때문에 병원에 방문한 환자가 뒤늦게 지주막하 출혈을 발견, 늦은 대처에도 예후가 좋은 환자도 존재한다.
◇금연·혈압조절은 필수… 고위험군, 증상 없어도 검진 필요
뇌출혈은 전조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어려운 만큼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평소에 꾸준히 뇌출혈 발생 위험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게 가장 좋은 뇌출혈 예방법이자 치료법이라고 강조한다.
배희준 교수는 "뇌출혈을 예방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혈압 조절이다"라며 "고혈압은 절대적인 뇌출혈 유발 요인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다음이 운동, 당뇨·고지혈증 등 기저 질환 관리이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뇌출혈은 평소 생활습관 관리가 중요하기에 뇌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일부 연구에서 적절한 음주는 뇌 보호 효과가 있다고 보고됐으나 유전적 요인 등을 고려할 때 술의 뇌 보호 효과는 없다는 게 최신 연구 결과이며, 흡연은 뇌출혈에 매우 치명적인 요소이기에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연과 혈압조절만큼 적절한 검진도 필요하다. 뇌출혈 고위험군이라면, 증상이 없어도 뇌 MRI·MRA 촬영을 통해 뇌출혈 위험 요소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고대안산병원 신경외과 임동준 교수는 "관련 학회에서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50대 이상의 뇌 MRI 촬영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과, 여의치 않으면 뇌출혈 고위험군만이라도 건강보험으로 뇌 검진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만큼 뇌출혈은 조기에 발견해 적절히 대처하는 게 중요한 질환이다"고 말했다. 임동준 교수는 "50대 이상에서 뇌출혈은 급격히 증가하고, 40대라도 가족력이 있으면 위험이 커진다"며 "증상이 없더라도 50대 이상이거나 고위험군 40대라면 뇌 건강검진을 받아보길 바란다"고 권고했다.
다만, 건강한 일반인이 뇌출혈 예방·관리차원에서 매년 뇌 MRI·MRA 촬영을 할 필요는 없다. 배희준 교수는 "가족력, 고혈압 등 뇌출혈 위험요소가 없다면 5~10년 간격으로 검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유전적으로 뇌동맥류 파열 위험이 큰 경우엔 이른 뇌 검진이 의미가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젊은 나이에 굳이 뇌 검사를 해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때 유전적 뇌출혈 고위험군은 부모와 형제 중 1명 이상이 대동맥류 파열로 인한 지주막하출혈 등을 경험했거나, 모야모야병 등이 유전성 질환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미 뇌출혈을 경험, 회복이 충분히 된 환자라도 뇌출혈 예방을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뇌출혈을 한번 경험한 경우, 또다시 뇌출혈이 발생할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높다.
이형중 교수는 "같은 부위에 뇌출혈이 반복될 가능성은 작지만, 한번 뇌출혈이 생긴 사람은 뇌의 다른 부위에도 출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뇌출혈 위험인자를 갖고 있기에 다른 이들보다 뇌출혈 위험이 더 크다는 걸 인지하고, 2차 예방을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