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누구나 레고, 자동차, 인형 등을 갖고 논 경험이 있다. 최근엔 어른이 돼서도 어린 시절 장난감을 계속 수집하는 사람들을 ‘키즈(Kids)’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Kidult)’라 칭한다. 이들은 어릴 적 장난감뿐 아니라 애착 베개와 애착 인형도 유달리 소중히 여겨, ‘인형 병원’에서 낡은 애착 인형을 복구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물건을 어른이 돼서도 찾는 이유는 무엇인지, 버리지 않은 채 계속 집착하는 게 문제는 아닌지 알아본다.
◇애착 인형·어릴 적 장난감에서 위안 찾는 어른들
어른들은 ▲수집 ▲즐거움 ▲몰입 ▲현실도피 ▲심리적 위안 등을 목적으로 어릴 적 장난감을 사들인다. 단순히 예쁘고 귀여운 것을 모으는 게 좋아서 자기만족으로 사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친숙하던 것에선 편안함과 위안을 느끼기 쉽다. 곽금주 교수는 “아이는 미숙한 모습을 보여도 ‘어리니까’ 다들 이해해주지만, 어른은 그렇지 않다”며 “지켜야 할 것은 많으나 실수를 관용해 주는 사람은 적으니,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릴 적 물건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타인이나 사회에서 얻을 수 없는 심리적 위안을 어릴 적 물건에서 대신 얻는다는 것이다.
◇어릴 적 장난감 갖고 놀며 자기계발 하기도
장난감을 활용한 놀이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배움의 수단이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과정에서 감정적·물리적·사회적·인지적으로 성장한다. 원하는 자세가 될 때까지 인형의 팔다리를 재조정하거나, 친구와 인형을 갖고 상황극을 하며 ▲상상력 ▲협동력 ▲자기조절능력 ▲인내력 등을 기를 수 있어서다. 어른들의 인형놀이를 연구한 핀란드 탐페레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어른 역시 아이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인형을 갖고 논다. 다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인형 사진을 타인과 공유하거나, 기성품 인형을 여기저기 바꿔 자신의 취향대로 재창조하는 등 장난감을 아이들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핀란드 투르쿠대 인문학부 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인형은 어른들이 생산적인 자기계발을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논문은 ‘브라이스(Blythe) 인형’을 가지고 노는 어른을 대상으로, 그들이 자신의 놀이에 인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조사했다. 브라이스 인형은 길이 약 28cm의 사람 형태 인형으로, ▲헤어 ▲메이크업 ▲홍채 색 ▲의복 등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조사 결과, 어른들은 인형 놀이를 매개로 새로운 취미생활에 입문하거나, 이전에 없던 능력을 기르거나,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인형에게 새로운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다 보니 바느질 등 수공예에 흥미가 생기는 식이었다. 특히 자신이 꾸민 인형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로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진이나 영상 촬영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으며,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했다.
◇의존·몰입 정도 과하지 않다면 괜찮아
애착 인형·애착 베개가 닳아서 헤질 때까지 버리지 않거나, 장난감이 방 하나를 꽉 채울 정도로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 어린 시절 물건을 통해 위안을 얻는 건 좋지만, 이러다 심리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어른 아이’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애착 인형·애착 베개·어릴 적 장난감으로부터 언젠가 독립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들 물건에 과도하게 집착해서 본인이 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문제다. 그러나 단순히 위안이나 안정감을 얻는 용도로 계속 활용하는 건 괜찮다. 곽금주 교수는 “애착 베개를 베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든가, 출근할 때 애착 인형을 들고 가야 하는 정도면 문제가 된다”며 “애착 베개가 없을 땐 다른 베개를 베고 잘 수 있는 정도로만 애착을 유지하면, 애착 베개를 ‘힐링’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릴 적 장난감을 수집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본인의 경제력에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본인과 타인에게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는 정도로 모으는 건 괜찮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할 본인만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