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주가 떨어질까 일이 손에 안 잡히면? 당신도 '○○' 의심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 이해림 헬스조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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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코인 중독은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정신 질환은 아니나, 투자에 과몰입해 일상에 지장이 생긴다면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월급으론 죽을 때까지 집 못 산다'는 말이 유행하며, 주식 및 코인(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들어 돈을 불리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수시로 가격이 오르내리는 주식·코인 특성상,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불안한 마음에 차트를 들여다보기 일쑤다. 혹시 이것이 중독 증상은 아닐까?

◇중독이란?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는 중독을 ‘특정 행동을 그만두는 데 반복적으로 실패해 일상에 문제가 생긴 상태’라고 정의했다. 자제력을 잃어 자신에게 해로운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중독일 가능성이 크다. ▲알코올 ▲일 ▲쇼핑 ▲도박 ▲인터넷 등 과도하게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은 다양하다.

충동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난 경우 중독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노성원 교수는 “충동적인 성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경우가 많아서, 유전적 요인이 중독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이다”라며 “이외에 알코올처럼 중독되기 쉬운 물질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중독을 부추기는 데 일조한다”고 말했다. 

◇주식·코인 중독, 향후 질환으로 인정될 수도
주식·코인 중독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을 뿐, 의학계가 공인한 ‘정신 질환’은 아니다. 다만 이들 증상이 향후 질환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노성원 교수는 “사회가 발전하고 새로운 영역이 생겨남에 따라 중독의 양상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주식·코인 중독’ 역시 질환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이미 고위험 주식 거래 및 암호화폐 거래가 도박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도박에 친숙한 사람일수록 고위험 주식 및 암호화폐 거래에 참여할 가능성도 크다는 게 근거다. 2019년 ‘펍메드(Pubmed)’에 게시된 논문에 따르면 도박 중독 상태가 심각하고, 스포츠 도박과 고위험 주식 거래에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암호화폐 거래 빈도가 높았다. 거꾸로 고위험 주식 거래에 적극적인 사람일수록 도박에 참여하는 빈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운’을 ‘나만의 노하우’로 착각하는 게 문제
노성원 교수는 주식·코인 투자에 과몰입하는 사람 대부분이 운이 아닌 본인 능력으로 돈을 벌었단 믿음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주식·코인 투자가 온전히 운에만 기대는 건 아니다. 분석력과 투자전략이 있다면 투자에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큰돈을 벌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분석력과 전략을 통해 이득을 볼 가능성을 과대평가한다는 데 있다. ‘머리를 잘 쓰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착각은 도박꾼뿐 아니라 주식·코인 투자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2016년 ‘도박 경영경제학(gambling business and economics)’ 저널에 게시된 논문에 따르면, ‘분석력’에 따라 성과가 좌우된다고 여겨지는 ▲포커·블랙잭 등 카지노 테이블 게임 ▲스포츠 배팅 ▲경마 베팅을 더 선호하는 도박꾼들이 주로 고위험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 게임은 ▲슬롯머신 ▲인터넷 빙고 등 100% 운에 의존하는 게임과 비교했을 때 분석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 뿐, 고수익을 내는 데 투자자 능력이 결정적이라 보긴 어렵다.

본인이 ‘멀쩡한’ 사람이라 해서 주식·코인 투자에 중독되지 않을 거라 안심하긴 이르다. 연구에 따르면 고위험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도박꾼들보다 소득·직업· 교육 수준이 높고 이혼·사별·별거를 겪는 일 없이 가정환경도 더 안정적이었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좋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해 주식·코인을 이용한 ‘한탕’을 노리기 쉽단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00년 ‘미국 재정 논집(Journal of Finance)’에 게시된 논문에서는 도박이든 투자든 자신감이 과다해 위험을 감행하는 정도가 큰 사람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투자 이상으로 과몰입하면 전문의 찾아야
적당한 주식·코인 거래는 좋은 투자다. 그러나 투자에 매몰돼 거래 행위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정신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주식·코인 가격 등락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일과 중에 반복적으로 거래하는 정도라면 이미 과하다. 실시간 주식·코인 거래 플랫폼을 이용하는 투자자들이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며 ▲도박 ▲게임 ▲인터넷에 더 과도하게 몰입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주식·코인 차트를 확인하느라 일상에 지장이 생기거나, 투자에 쓰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해도 행동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노성원 교수는 “투자를 끊으려는 노력에 반복적으로 실패하거나 반복적으로 투자 손실을 보았다면 2차적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이 생길 수 있다”며 “정신과에 내원하는 경우 우선 중독 치료부터 시작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우울 증상이 심하면 우울증 치료도 병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성원 교수는 “투자 중독으로 내원하는 사람 대부분이 ‘본인 실력’ 덕에 이익을 얻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며 “정신과에서는 이 착각을 깨기 위해 인지 행동 치료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주식·코인 과몰입 치료를 위해 내원하면 약을 복용하게 될까? 노성원 교수는 “약물을 통한 치료보다는 인지 행동 치료와 같은 정신 치료 기법이 더 효과적이다”라며 “도박 및 알코올 중독 치료에 사용하는 약물을 쓰면 투자 충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임상 연구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식·코인 중독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공인한 약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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