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에게 묻다] 분당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김세중 교수

 




콩팥 기능이 15%도 채 남지 않은 만성 콩팥병 5기(말기 신부전) 환자에게 ‘투석’은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하루 네 번까지 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어 환자의 라이프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진다.

투석은 콩팥을 대신해 노폐물 제거·수분 조절 등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이 있다. 한 번 투석을 시작하면 평생 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 투석 방법을 선택할 때 직업, 일상생활 환경 등을 고려해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환자가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의 장단점을 모르고, 투석을 시작하고 있다. 최근 환자에게 맞는 투석 방법을 선택하기 위한 객관적인 도구 ‘공동의사결정’이 개발됐다. 이를 주도적으로 개발한 분당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김세중 교수(대한신장학회 수련교육이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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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김세중 교수/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은 어떤 것인가?
혈액투석은 혈액을 밖으로 꺼내 인공 신장기와 투석막을 이용해 혈액 속 노폐물과 과잉 수분을 제거하고 전해질 등을 보충한 다음에 다시 체내로 집어 넣는 치료다. 일주일에 3회 병원에 방문해서 4시간 동안 투석을 받는다.

복막투석은 뱃속 복막(위·간·대장 등이 있는 복강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을 필터로 사용해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뱃속에 투석액을 넣으면 복막이 자연필터 역할을 해 혈액 내 노폐물을 투석액 쪽으로 걸러낸다. 환자는 이 투석액을 몇 시간 후에 빼내기만 하면 된다. 하루 4회 환자 스스로 투석액을 교환해야 하며, 교환하는 시간은 20~30분 정도 걸린다. 취침 시간(8~10시간) 동안 투석을 해주는 자동 복막투석기도 있다. 노폐물 제거 등 의학적인 효과 면에서는 두 방법 간 차이가 없다.

만성콩팥병은 콩팥의 기능 정도에 따라 5단계로 나뉘는데, 콩팥 기능이 15% 미만으로 떨어진 5기가 되면 투석 혹은 콩팥 이식을 준비해야 한다. 콩팥 이식은 여의치 않아 투석 치료를 하는 환자가 많다. 현재 투석 중인 국내 만성 콩팥병 환자는 11만명 정도이다.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환자 비율은 얼마나 되나?
대한신장학회 자료에 따르면 2005년만 해도 우리나라 복막투석 환자 비율은 전체 투석 환자 중 약 28%였다. 나머지는 혈액투석 환자. 복막투석 환자 비율은 점점 감소해 2019년 기준 4%의 환자만 복막투석을 받고 있다. 복막투석 환자가 감소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복막투석에 대한 환자들의 인지도가 점점 줄고 있고, 복막투석의 수가가 혈액투석 보다 불리하게 책정돼 있어 의사들이 복막투석을 선호하지 않는 환경이 됐다. 병원 입장에서 복막투석 시설 또는 전담 간호사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도 있다. 복막투석은 정보를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중요한데, 현재 그런 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점점 복막투석 환자가 줄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의 장단점은?
혈액투석의 경우 병원에 맞춰진 스케줄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개인 일정은 그 외 시간에 맞춰 계획해야 한다. 정해진 병원에서 투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여행을 가거나 이동하는 장소에 혈액투석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있는지, 투석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신 주 3회만 투석하기 때문에 나머지 4일은 투석에 대한 걱정 없이 본인의 스케줄에 맞춰서 생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투석을 안 하는 날에는 노폐물을 걸러낼 수 없기 때문에 식단 조절을 잘 해야 한다. 혈액투석은 피부 밑 동정맥류를 이용한다. 복막투석처럼 도관을 관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리하고, 대신 투석을 할 때마다 굵은 바늘 두 개를 꽂아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반대로 복막투석은 환자 자신이 투석을 직접 하기 때문에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투석 일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학교 또는 직장생활을 하는 환자에게는 더 큰 장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동 시에는 투석액을 가방에 넣어 이동하면 되기 때문에 혈액투석 환자 보다 더 자유롭다는 면이 있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복막투석 환자가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면 캐리어에 투석 물품을 넣어 가거나 혹은 숙소로 투석액을 배달시키면 된다. 혈액투석 환자는 미국의 경우 두세달 전부터 감염 등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해야 하고, 해외에서 투석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투석하는 것과는 달리 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이 청구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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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복막투석은 환자 스스로 하는 처치라 교육이 중요할 것 같다?
복막투석은 집에서 환자가 직접 투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투석이 잘 안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 대처할 수 있을지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2019년 12월부터 정부에서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이 시행되고 있는데, 재택관리 시범사업은 집에서도 복막투석 환자가 잘 할 수 있게끔 교육 등을 통해 도와주는 것이다.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항목이 나눠져 있다. 의사가 직접 질환과 투석에 대해 교육하는 교육상담 의사 혹은 간호사가 직접 투석 방법이나 관리법 혹은 합병증 대처법 등 실질적인 부분에 대해 교육하는 교육상담 전화,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수시로 간호사가 환자의 불편함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환자관리 파트로 나뉘어 있다. 현재 83개 병원이 시범사업에 참여 중이며 국내 복막투석 환자의 절반인 4000여명이 시범사업에 등록돼 있다. 2022년 12월까지 진행된다.

-시범사업의 핵심인 ‘공동의사결정’이란?
복막투석 환자 재택관리 시범사업에는 다른 시범사업과는 다르게 공동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이라고 부르는 투석 방법 선택 교육에 대한 수가가 교육상담료에 포함돼 있다. 투석을 처음 시작하는 환자들이 투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많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투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요독 증상 등이 나타나 투석을 하지 않으면 위험할 지경에 이르러 급작스럽게 ‘응급투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조사 결과 만성콩팥병 환자 중 절반인 47%가 응급투석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응급투석은 급하게 관을 꽂아서 투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물질이 들어가 감염이 되거나 출혈, 혈전증 등 여러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있다. 때문에 응급투석을 경험한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비교했을 때 응급투석을 경험한 환자의 생존율이 훨씬 더 낮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공동의사결정’을 시행할 수 있도록 대한신장학회에서는 2018년부터 TF팀을 만들어 준비하기 시작했다. 표준화된 교육 자료를 만들었는데, 우선 신대체요법이 무엇인지,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을 하면 생활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하는 동영상 자료를 제작했다. 환자 본인이 가진 선호도와 가치관에 따라 건강, 투석 환경, 일상생활 관련 항목 35개를 체크해 보며 환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교육 책자도 만들었다. 예를 들어 환자가 ‘나는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택하면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을 시작했을 때 각각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환자분들이 자신에게 어떤 방법이 더 맞을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여러 자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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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시범사업에 대한 중간 결과가 나왔나?
2019년 12월 시범사업이 시작되고 2020년까지 우리 병원에서 공동의사결정을 경험했던 70명 환자들의 데이터를 종합해봤다. 그 결과, 2019년 응급투석 비율이 42%였는데, 2020년에는 4%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충분한 시간을 들여 15분 이상 교육을 진행하고 나니 2019년에는 5%였던 복막투석 선택 환자 비율이 2020년에는 5배 가까이 늘어 25%까지 증가했다. 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 환자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선택에 대한 만족도도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환자 스스로 복막투석을 결정한 환자와 급하게 투석을 시작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복막투석을 하게 된 환자를 비교했을 때 미리 준비한 환자에서 치료 순응도와 만족도가 더 높게 나타났고 의료 질도 더 좋아졌다. 

-공동의사결정을 통해 의료비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나?
공동의사결정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모든 병원에서 분당서울대병원과 유사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가정하여 계산을 해봤다. 환자 1인당 연간 의료 비용이 복막투석은 약 1600만 원, 혈액투석은 약 2200만 원이다. 만약 복막투석 선택 환자 비율이 이와 같이 25%까지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의료비를 연간 약 180억 원 정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응급투석을 하게 되면 분당서울대병원 기준으로 당일 투석 비용만 약 150만 원 소요되는데, 이를 1년에 4%가량 감소시킨다면 연간 약 10억 원의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재택의료 시범사업 중 유일하게 공동의사결정에 대한 수가가 포함됐다. 그 이유는?
공동의사결정을 하는데 왜 수가까지 필요한 것인가 하면 공동의사결정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교육 자료와 충분한 상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교육 자료는 학회에서 준비해서 만들었지만, 상담은 최소한 10~15분으로 1~2회는 진행해야 환자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교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신장내과 평균 진료시간은 3~4분 남짓으로 환자 한명에게 30분의 상담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한 명의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교육을 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보전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수가가 필요하다.

기존의 수가를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기존의 수가로는 공동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 만성콩팥병 환자에게 책정되어 있는 기존의 수가는 환자 평생 동안 단 두 번뿐이다. 하나는 질환, 약 복용법, 합병증 등에 대해 설명하는 만성콩팥병에 대한 교육 수가이다. 나머지 하나는 투석 방법을 결정한 후 해당 투석 방법에 대해 교육하는 것을 위한 수가이다. 이 중에서는 공동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충분히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별도로 수가를 만들어 보장해야 한다. 시범사업에서 책정된 수가는 3만9950원(환자 본인부담율 10%)인데, 긴 상담 시간과 많은 교육 자료를 활용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적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공동의사결정은 내년에 시범사업이 끝나고 본 사업으로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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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김세중 교수/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투석을 앞둔 환자들에게 ‘공동의사결정’에 대한 홍보가 필요할 것 같다?
교육 프로그램도 모두 만들었고,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나 수가도 마련됐고, 실제로 시행해 보니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여기서 더 나아가 더 많은 의료진이 공동의사결정에 대해 인지하고 시행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공동의사결정과 실제 효과에 대해 알려야 한다. 현재 대한신장학회에서는 ‘다 함께 행복한 공동의사결정을 하자’는 의미의 ‘다행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환자와 의료진에게 공동의사결정에 대해 알려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공동의사결정은 할 수 있게끔 홍보하고 있다. 학회에서 만든 ‘다행 선언문’을 읽고 제스처를 취해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다행 챌린지’를 진행했고 심포지엄을 통해 공동의사결정을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