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흉골이식 명의' 중앙대병원 흉부외과 박병준 교수
흉골(앞가슴뼈) 부근에 암이 생겼거나, 폐암·유방암·신장암 등이 흉골에 전이돼 제거했거나, 심장 수술 이후 흉골이 손상된 환자들은 그동안 흉골이 없는 채로 살아야 했다. 가슴뼈가 없으니 심장이 뛰는 모습이 눈에 보이고, 심장이 다칠까 걱정돼 행동에 많은 제약이 생긴다. 책상에 앉을 때도, 운전할 때도 노심초사다. 최근엔 3D 프린팅 기술의 발달로 인공 흉골을 만들어 이식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최초로 흉골이식 수술에 성공한 중앙대병원 흉부외과 박병준 교수를 만나봤다.

Q. 기존에 흉골이 손상된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해왔나?
이전에도 흉골을 대체할 방법이 있긴 있었다. 기존 흉골 재건술에는 주로 '본시멘트'를 활용했다. 이는 쉽게 설명하면 약 10분 만에 굳어지는 의료용 점토다. 점토를 수술 중에 의사가 직접 빚어서 뼈를 제작하다 보니 복잡한 구조를 완전히 똑같이 만들기엔 한계가 있다. 시간도 부족해서 사실상 환자 맞춤형으로 제작하기는 어려웠다. 수술 소요 시간도 길어지면서 흉골 감염과 만성 통증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환자는 흉골 재건술을 포기하고 흉골이 없는 상태로 지내왔다. 흉골이 없어도 생활은 가능하지만, 가슴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흉골이 없어지면서 늑골이 점점 안쪽으로 오그라들어 변형된다. 심폐 기능도 떨어지고, 외형 변화로 스트레스를 받는 환자들을 위해 도입된 것이 '3D 프린팅 흉골이식술'이다.
Q. 3D 프린팅을 이용한 흉골이식술은 어떻게 진행되나?
3D 프린팅을 이용한 흉골이식술은 기존에 수술장에서 뼈를 만들던 방법과 달리, 수술 전 절제범위를 결정해서 환자에게 딱 맞는 임플란트를 제작하는 맞춤형 치료법이다. 우선 수술 전 3차원으로 재건된 CT 영상을 기반으로 환자의 뼈와 동일한 크기의 모델을 만들어 의료진이 미리 절제 범위를 결정한다. 이후 제작된 임플란트(인공 흉골)는 생물학적·기계적 안정성 평가를 받은 후 수술실로 이송돼 이식에 사용된다. 특히 흉골은 다른 인공 뼈보다 더욱 섬세한 안정성 평가를 거친다. 강도, 인장강도, 응집력 등을 평가해서 실제 환자에게 들어갔을 때 부러지지 않고 적정강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CPR(심폐소생술)을 해도 부러지지 않고 유지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Q. '인공 흉골'은 어떤 소재로 제작되는지?
기존에 3D 프린팅으로 인공 뼈를 제작할 때는 대부분 티타늄 합금을 사용했다. 높은 강도를 유지하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금에 첨가되는 알루미늄, 바나듐 등이 신경독성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생물학적 안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시돼 왔다. 흉골은 다른 뼈와 달리 몸무게를 지탱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호흡에 방해되지 않도록 유연할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티타늄 합금이 아닌 순수 티타늄을 선택했다. 순수 티타늄은 원래 치아 등 작지만 정교함이 필요한 부위에는 많이 쓰이지만, 크기가 큰 임플란트를 정교하게 제작하는 것은 도전적인 분야다. 제작은 티타늄 분말에 레이저나 전자빔을 조사해 '용융적층' 방식으로 한층 한층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Q. 지금까지 이뤄진 흉골이식 수술은 몇 건인가?
2018년 9월에 국내 최초 흉골이식술이 시행됐다. 전 세계에서는 여섯 번째 사례다. 세계 첫 사례는 2015년 스페인이다. 국내에서 한 임상이 첫 사례는 아니었지만, 현재까지 중앙대병원 흉골이식팀이 총 5개의 임상 수술을 진행하면서 세계 최대 건수를 달성했다. 이처럼 압도적인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미국 FDA 승인을 위한 임상시험도 2022년에 시작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수술받은 5명의 환자 모두 흉골이식술 이후 통증이 거의 없었다. 첫 번째 환자분은 암 전이가 심해 안타깝게 사망했지만, 나머지 4명의 환자는 전부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다.
Q. 향후 3D 프린팅이 다른 뼈나 장기도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지?
이미 3D 프린팅을 이용한 금속 임플란트 제작 기술은 진료에 깊숙이 들어와 상용화된 기술이다. 흉골이나 관절 같은 경우 도입 초기지만, 인공 두개골이나 얼굴뼈는 이미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개골은 국내에서만 600례 이상의 이식 사례가 있으며, 최근엔 3D 프린팅을 더욱 발전시켜 줄기세포를 잉크젯으로 사용하는 바이오프린팅도 연구되고 있다. 향후 약 2035년 정도에는 장기나 연골을 자기 생체조직으로 만들어서 이식할 수 있는 신기술이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Q. 현재 흉부 수술에는 어떤 한계가 있나?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폐암과 식도암 수술을 주로 진행하고 있는데, 폐암은 국내 사망률 1위를 차지하는 질환이다. 최근엔 건강검진으로 인해 폐암 조기 진단이 늘면서 작은 상처를 내 카메라를 넣어서 수술하는 흉강경 수술이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최소침습적 수술은 상처가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폐를 직접 만지면서 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초기 폐암은 수술 전에 찍은 영상을 보고 예측해 수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슴을 열어 직접 암을 보거나 만지면서 시각적·촉각적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보니, 오히려 수술이 더욱 어려워졌다.
Q. 흉부 수술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쉽게 말해 수술장 상황을 운전으로 비유해보자. 과거 운전할 때는 길을 모르면 차를 세워서 지도를 봐야 했는데, 최근엔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안내를 받으며 운행을 중단하지 않고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수술장 상황은 여전히 지도를 보고 가던 때와 동일하다. 수술 중간에 암이 예상한 위치에 없으면 수술을 중단하고, 다시 모니터나 CT를 보고 가늠해야 한다. 자동차 자율주행도 현실화를 앞둔 상황이지만, 수술실은 신기술과는 거리가 먼 상태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개발한 것이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기술'이다. 육안이나 카메라로는 보이지 않는 몸 안의 암 덩어리, 혈관, 신경 등 해부학적 구조를 의사가 투시하듯 볼 수 있는 증강현실 시스템이다. 의사의 경험과 숙련도에 객관적 정보를 더해 수술 예후를 향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Q.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기술로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상용화되면 아주 다양한 의료분야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대부분 병원에서 수액 등을 투여하기 위해 바늘에 찔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력 좋은 간호사를 만나면 한 번에 성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대여섯 번을 찔려도 실패할 수 있다. 혈관이 작은 어린아이나 장기간 투약으로 큰 혈관을 잡아야 하는 환자는 위험부담이 크다. 골생검 같이 위험부담이 큰 조직검사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면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의료분쟁의 과반수가 시술이나 수술 후 발생한다는 점은 경험과 숙련도에 의존하는 현 시스템에 문제점이 있다는 방증이다. 만약 증강현실 기술이 상용화되면 내비게이션을 통해 환자의 몸 위에 실제 바늘이 들어가는 최적의 삽입 지점을 의사나 간호사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시술과 수술이 이뤄진다면 합병증 발생 빈도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Q.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기술의 개발 단계는 어느 정도인가?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시스템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자세 추적 기술'의 정밀도이다. 운전할 때 GPS가 차의 위치정보를 정확히 알려줘야 내비게이션이 작동할 수 있듯, 의료 기기의 위치를 정확히 추적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시판되는 기관지 내비게이션 장비의 경우 정밀도가 10~20mm 정도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지연 없이 0.5mm 오차범위로 위치 정보를 기록한다. 이런 핵심기술을 기반으로 의료기기와 의료교육 시스템을 상용화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정밀도를 정량화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진행한 결과, 기존의 2cm에서 8~13mm 정도로 정밀도를 높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함께 정밀도를 점검한 후, 이를 바탕으로 수술실에서 쓸 수 있는 가이드를 제작할 예정이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단기 목표로는 시술과 수술을 돕기 위한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시스템 상용화에 성공해서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환자가 안심하고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공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최근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고 있듯, 자율집도 로봇도 10~20년 후에는 상용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자율집도 기계의 머신러닝을 위한 플랫폼도 준비하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 역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금속 프린팅뿐만 아니라 생체 조직으로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연구도 계속 진행할 것이다.

폐암 수술을 2000건 이상 집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기술 개발 스타트업 '데카사이트'를 설립했다. 증강현실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설득할 정도로 열정적인 창업가이기도 하다. 젊은 의사들이 숙련도를 쌓을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의료 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느낀 후, 객관적 지표를 통해 수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개발을 시작했다. 데카사이트는 2023년 교육용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실제 임상에서 적용하기 위한 의료기기로서 품목 허가는 3~4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첨단 로봇수술 개발의 가교 역할을 통해 의료사고 없는 건강한 미래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