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입구설치만 수용… 與 “국민 위해 필요한 일”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법은 논란의 역사가 깊다. 2015년 19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최동익 전 의원이 관련법을 처음으로 발의했으나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도 10여 개의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된 바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와 관련된 법안 3건이 발의됐는데, 지난 4월 28일 논의를 마지막으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초민감 사안으로 분류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다가 두 달여만인 오늘(23일) 다시 공식적인 논의가 재개된다. 과연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는 결론을 낼 수 있을까?
◇의협, 국민 80% 찬성해도… '절대 불가' 입장 고수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지만, 의료계만 강력히 반대하는 현안이다. 지난 5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만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0.1%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찬성했다. 반대 응답은 9.8% 수준이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지난해 별도의 예산을 투입해 진행한 대국민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90%가 수술실 내 CCTV 설치의무화에 찬성한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민 최소 80%는 대리수술, 무자격자 수술, 수술실 내 성범죄 예방을 위해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의료계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는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수술실을 잠재적 범죄 장소로 취급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의협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로 인해 ▲의료진의 방어적‧소극적 대처를 유도, 환자의 건강권 침해 ▲의료진과 환자 간 불신 조장 ▲불필요한 의료분쟁 유발 ▲초민감정보인 의료정보 유출 우려 ▲CCTV 유출로 인한 환자 사생활 침해 가능성 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의사회(WMA)도 공식서한을 통해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반대입장을 전했다. 세계의사회 데이비드 바브 회장은 "수술실 내 강제적인 CCTV 감시는 끊임없는 상호 불신을 일으킬 뿐 아니라 수술실에서의 의료행위와 진료실에서 이뤄지는 그 어떠한 치료과정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의사회는 비전문적, 비윤리적 혹은 기만적인 행위를 확인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점에는 강력히 동조하지만, CCTV 설치 의무화 같은 법으로 강제화보다 적절한 방법들이 있다"고 밝혔다.
◇수술실 입구 설치까지는 합의 이뤄
다만, 수차례 논의를 통해 현재 의료계는 수술실 입구 CCTV 설치 의무화까지는 수용할 수 있다고 입장을 선회한 상태다. 수술실 입구 CCTV 설치 의무화는 복지부의 중재안이었는데, 여야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합의했고, 의료계가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의협 박수현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헬스조선을 통해 "수술실 입구에만 CCTV를 설치해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현 홍보이사는 "수술방마다 생체인식을 해야 출입할 수 있게 하는 등 수술실 입구부터 출입을 강력히 통제하고, 마취된 환자가 있는 수술실 내부와 회복실 등의 장소에는 절대 환자와 의료인이 단둘이 있지 않게 하는 등의 장치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당은 수술실 입구에만 CCTV를 설치해서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수술실 입구에만 CCTV를 설치해서는 대리수술 및 무자격자 수술 방지, 수술실 내 성범죄 근절, 의료사고 시 근거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환자가 방어력이 없는 상황에서 대리수술·무자격자 수술, 성범죄 등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술실 입구에만 CCTV를 설치하거나, 공공병원 수술실 내부에만 CCTV를 설치하는 일은 국민이 원하는 대책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 80% 이상이 원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여당은 국민의 요구에 응답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원론적으로는 수술실 내 CCTV 설치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수술실 내에 CCTV 설치 후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대리수술·무자격자 수술, 수술실 내 성범죄 등은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아니라 다른 법안들을 강화해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의 사례를 보더라도 수술실 내부가 아닌 입구에만 CCTV를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실 관계자도 "수술실 내 CCTV 설치 필요성에 대해서는 야당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려면 설치 계획, 녹화 영상의 처리·보관 방법 등을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한 논의가 미흡해 숙고기간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사면허 취소 기준 강화, 수술실 CCTV 대안 될까
그렇다면 의료계가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대안으로 제시하는 대리수술·무자격자 수술, 수술실 내 성추행 근절 대책은 무엇일까? 의협은 수술실 입구에만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의사면허 취소기준을 강화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협 박수현 홍보이사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로는 결코 대리수술·무자격자 수술, 수술실 내 성추행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문제가 되는 사안들은 '비윤리적인 의사'를 걸러내지 못해 발생한 문제이기에 이를 걸러낼 수 있도록 내부고발 강화, 면허취소·재교부 기준 강화 등이 실질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현 홍보이사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로 국민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을 따졌을 때 손실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의료계는 CCTV 설치가 아닌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의협 집행부는 비윤리적인 의사를 걸러내기 위해 의사면허 관리 강화 관련법 중 성범죄 등 강력범죄자의 의사면허 취소를 찬성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국회에 전달했으며, 내부고발 강화를 위한 시스템을 고민 중"이라고 강조했다.
'의사면허 관리강화법'의 경우, 지난해 보건복지위원회는 통과했으나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 법안은 의사가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 의료법은 의사가 의료관계 법령을 위반,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았을 때만 의사면허를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의사는 살인, 강도, 성폭행을 저질러 처벌을 받아도 의사면허가 취소되지 않고, 형을 마치면 진료를 할 때도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강력범죄자의 의사면허 박탈만 찬성하는 의협의 대안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여전히 의사면허 취소기준 강화에 대한 의료계 내부 반발이 심하고, 비윤리적 의료행위 내부고발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의 불씨를 당긴 인천과 광주의 모 척추전문병원의 대리수술 사건도 내부고발을 통해 사건이 드러났는데, 이들 역시 내부고발자 색출을 피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소위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 비쟁점법안을 우선 처리하고,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관련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