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 면제, 실제 백신 생산과는 별개
품질 보장된 백신 단기간 내 생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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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이익을 보긴 어렵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백신 지재권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지식재산권의 면제는 코로나 백신의 특허, 즉, 백신 개발·제조 비법 공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재권 면제 지지 발표 이후 SK바이오사이언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주가는 상승했다. 백신 지재권 면제가 우리나라 기업에 이득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드러난 것이다. 정말 지재권 면제는 정말 우리나라에 이득이 될까?

◇미·EU,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추진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5일(현지시각) 세계무역기구(WTO)의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백신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특허를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백신 생산기술을 공유하는 방안에 동의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미국의 지재권 면제 지지 발표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보건 위기를 해결할 기회" 연대를 제안했으며, 세계백신면역연합은 제약사들이 지재권과 제조 노하우를 함께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외교부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까지도 미국의 백신 지재권 면제를 추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지재권 면제 지지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은 코로나 백신 지재권 면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U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미국의 제안이 목표 달성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논의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EU의 우선순위는 글로벌 백신 접종자를 확대하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라며, 지재권 면제에 대한 긍정적인 뜻을 비치기도 했다. EU는 7~8일(현지시각) 코로나 백신 지재권 면제를 위한 비공식 회의를 앞둔 상황이다.

하지만 지재권 면제 반대세력도 만만치 않다. EU 집행위원장이 코로나 백신 지재권 면제 검토 준비를 알리긴 했으나, EU 주요국인 독일은 성명을 통해 "지재권 보호는 혁신의 근원이며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고 지재권 면제 반대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현지 언론을 통해 "백신 공급을 제약하는 요소는 특허가 아니라 공급 능력과 높은 품질 기준"이라고 밝혔다.

제약업계의 반발은 더욱 강력하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코로나 백신 개발 기술을 보유한 제약사를 비롯해 30여개 제약사가 포함된 국제제약협회 연맹은 "제약사가 특허를 포기한다고 해서 백신 생산량이 증가하거나 보건 위기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재권 면제가 오히려 백신 품질을 낮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미국 정부를 비판했다.

◇지재권 풀려도 국내 생산 불투명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진 못했으나, 상당한 기술력을 갖춘 덕에 코로나 백신을 위탁 생산하고 있다.​

지재권 면제로 백신 개발·제조 비법을 알게 된다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국산 코로나 백신을 금방 개발해 수출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백신 지재권이 면제되면 정말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이런 호재를 누릴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코로나 백신 지재권이 면제가 우리나라와 국내 기업들에 큰 이익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 전망했다. 지재권 면제를 통해 특허 내용만 알아내면 백신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고 현장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유명 요리사의 조리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같은 음식을 만들 수는 없단 것이다.

약사출신으로 국내외 의약품 특허분쟁 소송을 다수 진행해 온 율촌 윤경애 변리사는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가 우리나라에게 이득을 제공할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경애 변리사는 "백신 등 바이오의약품은 품질이 굉장히 중요한데, 백신은 시설, 인력, 기술이 모두 갖춰져야 양품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모두 갖추고 있더라도 실질적인 코로나 백신 생산을 위한 기술, 제조 노하우가 없다면 퀄리티 있는 백신 생산은 어렵고, 생산하더라도 품질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는 더욱 어렵다"고 설명했다. 윤 변리사는 "실질적인 백신 생산은 특허와 함께 기술 이전과 노하우 이전이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며, 이는 각 제약사 간 계약을 통해 해결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백신 지재권 면제가 이뤄지더라도 현실적으로 볼 때, 국내 기업들이 당장 코로나 백신 제조·생산 경쟁에 뛰어들기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윤경애 변리사는 "이미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코로나 백신 생산을 위해 시스템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어 추가 생산 여력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 변리사는 "화이자, 모더나의 mRNA 백신의 경우, 제조·생산을 위해 기존과 전혀 다른 시스템이 필요한데 국내 기업들이 관련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며, 이는 단시간에 갖추기도 어렵고, 시스템을 갖춰도 품질문제를 해결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적 관점에서 백신 지재권 면제에 접근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우리나라가 수준급의 백신 생산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 독보적인 백신 기술 보유국은 아니지만, 자체 코로나 백신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경애 변리사는 "특히 우리나라는 장기적으로 볼 때 기술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허법은 이미 팬데믹 등 위기 상황에서 강제실시권 발동 요건이 마련되어 있기에, 산업기술 개발 촉진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특허 지재권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