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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북한산] 청바지 입고 어슬렁… 등산화는 샀다
이지형 헬스조선 취재본부장
입력 2021/04/02 13:15
등산을 배운 적 없지만 스승은 있다. 스승이라곤 해도 얘기를 나누거나 하진 않았다. 잠깐 눈만 맞췄다. 그 잠깐 동안, 말 없는 눈빛에 존경의 뜻을 담았다. 스승은 의아해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지극한 가르침은 늘 그런 식이다. 조용히 꽃을 들면, 말없이 웃는다. 진정한 가르침은 염화(拈花)와 미소(微笑) 사이에 존재한다. 내밀한 사제 관계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흰 고무신을 신고도 그는 종횡무진한다
10년 전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하고 한 시간 쯤 지나, 약간의 피로를 느낄 무렵 스승과 조우했다. 그는 숙제하듯 급히 능선을 질러가는 등산객들과 달랐다.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리산을 탔다. 비탈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잠깐 능선을 걷다가, 또 다시 비탈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차림새도 특별했다. 낡은 개량 한복을 입고 흰 고무신을 신었다.
그에게 등산의 흥분과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내, 여유롭고 가벼웠다. 종주를 위해 중무장한 등산객들 중 하나인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도 갸우뚱, 나를 보았다. 나는 잠깐 고개를 숙였다. 그는 계속 약초를 땄다. 약초꾼으로도 등산객으로도, 그는 초절정의 고수(高手)였다.
서울로 돌아와 한참 동안 스승을 따랐다, 그의 가르침을 구현하고 싶었다. 등산복을 옷장 깊숙이 넣었다. 등산화도 신장에 처박았다. 어차피 낡은 등산화였다. 그렇게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북한산을 거닐었다. 나도 스승처럼 고수가 되고 싶었다. 옷차림에 구애받지 않고, 등산화를 포함한 장비들 따위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훨훨, 너울너울 산에서 노닐고 싶었다. 고가(高價)의 아웃도어로 중무장을 할수록, 지리산에서 만난 스승 앞에서 창피할 뿐이었다. 우리 산하에는 괜한 사치가 넘쳐나는 중이야…. 나는 산에서 홀로 득의양양했다.
◇육산과 암산은 다르니까, 등산화를 신어도 돼!
그렇게 산을 쏘다니다 다쳤다. 대동문에서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 쪽으로 내려올 때였다. 바위 길에서 미끄러졌다. 운동화의 한계였다. 허공에 떴다가 떨어졌다. 낙법을 구사할 틈이 없었다. 오랫동안, 갈비뼈 부근이 아팠다. 어머니에게 혼났다. 왜 그러고 다녀. 어머니는 당장 등산화를 사라고 했다. 사주는 거야?
다시 등산화를 신기로 했다.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릴 명분이 필요했다. 육산(肉山)과 암산(巖山)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명분을 삼았다. 스승이 흰 고무신만으로 축지(縮地)하던 지리산은 흙으로 이뤄진 산이다. 서울의 북한산은 전형적인 바위산이다. 스승을 존경하지만, 그의 산행 스타일을 답습해선 안 되는 거였다. 암릉 산행을 위한 릿지화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접지력을 가진 등산화가 북한산 산행엔 필요했다. 스승도 북한산에서 약초를 따게 됐더라면, 등산화를 신었을 거야…. 합리화에 불과할지라도.
그러나 청바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등산복까지 다시 갖춰 입으면, 스승의 가르침을 완전히 저버리게 되는 거였다. 지리산에서의 염화와 미소, 그 소중하고 엄중한 인연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청바지 차림의 나를 주목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요즘도 주말이면 캐주얼한 등산화에 청바지를 입고 북한산에 오른다. 능선과 계곡을 행진하는 와중, 해찰하듯, 사람 없는 비탈을 어슬렁거린다. 험한 바위도 청바지 차림으로, 이리 넘고 저리 넘는다. 그러고 있으면 나도 스승을 닮아 산행의 고수가 된 듯한 느낌이다. 이러다 축지까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렇게 사계(四季)를 무시하고, 산세(山勢)를 간과하면서 청바지 차림으로 해발 700~800m 위 암반을 거닐 때 가끔씩 나를 주목하는 이들이 있다. 스타일리시한 아웃도어를 우아하게 걸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눈빛이, 한 경지에 이른 고수에 대한 어떤 예의 같은 거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산은 정신을 자유롭게 한다. 미혹하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