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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북한산] 다람쥐는 놓아주고 안단테, 안단테

이지형 헬스조선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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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겨울 일출./사진=이지형 헬스조선 취재본부장

북한산 자락 평창동에서 일한 적이 있다. 소설을 주로 내는 조그만 출판사에서 주간을 했다. 형제봉이 멀지 않았고, 평창계곡을 치고 올라가면 대성문도 지척이었다. 한때 북한산행의 출발지로 유명하던 예능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출판사 주간으로 일하는 동안, 북한산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였다. 실제로 산 위에 머무는 시간도 많았다. 막막하고 캄캄한 새벽 5시에 백운대 정상에 출현하기도 했고, 불광동에서 우이동에 이르는 북한산 간략 종주를, 남들 기지개 켜는 주말의 아침 4~5시간 동안 해치우기도 했다. 짜릿했다. 북한산 능선에서 펼쳐지는 나의 동분서주와 종횡무진을 보고 지인들은 북한산 다람쥐란 별명을 줬다. 바람처럼 날쌔고, 나뭇잎처럼 가벼웠다. 그렇게 나는 한때 다람쥐였다. 

◇나는 ‘북한산 다람쥐’였다
그러나 내 속의 다람쥐가 나는 오랫동안 불편했다. 새벽에 집 나서, 산을 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누군가 내 앞에 있는 걸 참지 못했다. 추월하고, 추월하고 또 추월했다. 누구보다 빨리 계곡을 벗어나야 했고, 누구보다 빨리 산 중턱의 마루에 서 있어야 했다. 그 시절 나의 등산은, 내 눈앞의 남녀들을 하나둘씩 소거시켜가는 일이었다. 내 눈앞엔 나뭇잎과 바람만 남아야 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래야 행복했다.

다행히 평균 이상의 근지구력과 심폐 기능이 비정상적인 추월 욕구와 다람쥐 본능을 받쳤다. 초·중·고 시절, 수업시간만 빼면 종일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20대 이후 사회생활이 선사한 방종과 폭주의 술자리에도 불구하고 중년을 넘겨 아직 이럭저럭 살아있는 건, 어린 시절의 쉼 없는 질주(疾走) 때문이겠거니, 가끔 자평한다. 이제는 그 에너지마저 다 소진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다람쥐처럼 산을 쏘다녔다. 산 바깥에선 특별할 것 없는 인생이었지만, 산 안에선 약간 특별한 것도 같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산에서만큼은 1등, 1등, 1등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산행을 시작해, 누구보다 빨리 정상에 올랐다. 남들 올라올 때, 나는 내려갔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러고 다녔을까.  

◇내 속의 다람쥐… 강박과 조급과 공포의 흔적
강박과 조급은 어느 정도 시대의 징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위중한 편에 속한다. 누군가 쫓아오고 있다는 느낌, 그들을 떨쳐내야 한다는 느낌으로 20대를, 30대를, 40대를 보냈다. 그런데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그 느낌, 그 두려움, 이건 사실 인류사(史)적인 공포이기도 하다. 

동물을 사냥하고, 나무 열매를 따먹던 시절의 호모 사피엔스를 잠깐 떠올린다. 볼품없는 체구, 힘없는 손발, 사나울 것 없는 이빨…. 호모 사피엔스들은 그 보잘 것 없는 몰골로 광포한 숲을 헤치고 다녔다. 공격보다 방어가 문제이던 시절이다. 뒤에서 곰이라도 한 마리 달려들면, 바로 끝장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쫓아가면서 무언가에 쫓기는 모습은 인류의 원초적 상황인 동시에, 원초적 공포의 근원이다.

북한산 다람쥐란 말, 아마도 칭찬이었을 게다. 나는 내 지인들의 사람됨과 온정을 믿으니까. 그러나 다람쥐란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엔 늘 우울이 똬리를 틀었다. 내 마음 속의 다람쥐는 확실히, 강박과 조급과 공포의 흔적이었다. 발현이었다. 

◇조급해 말아요, 서두르지 말아요
요새 나는 다람쥐 스타일의 산행을 처음으로 멀리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주에도 향로봉, 비봉,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에 이를 때까지 여러 번을 쉬었다. 멀리로 펼쳐지는 응봉능선과 그보다 더 멀리로 펼쳐지는 의상봉능선, 그 뒤 백운·만경·인수의 삼각 봉우리를 한참 쳐다봤다. 조그만 바위 위에서,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넋을 잃고 절경을 보며 황홀해 했다.

문수봉에서 뒷걸음쳐 청수동 암문으로 내려간 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나한, 나월, 용혈, 용출, 의상봉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한가했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쉴 새 없이 나를 추월했다. 많이 기뻤다.

그렇게 의상봉의 험한 암반을, 철제 구조물을 부여잡은 채 아주 서서히 내려오면서 나는 서행과 만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울뚝불뚝한 북한산의 봉우리들을 뒤로 한 채,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쪽 출구를 향해 가면서 나는 안단테, 안단테…, 를 흥얼거렸다. 먼 옛날 북유럽 출신의 4인조 아바(ABBA)가 들려주던 감미로운 목소리 그대로, 나지막하게.

조급해 말아요.
여름날 저녁 미풍처럼 날 부드럽게 어루만져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안단테, 안단테….

문득 뒤를 돌아봤다.
나를 쫓는 사람은 없었다.
내 속의 다람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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