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외부물질로 인식해 항체 생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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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정자 항체 여부를 밝히는 검사로 성 경험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자가 체내에 들어오면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물질로 인식해 항체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를 '항정자 항체'라고 부른다. 으레 임신을 하려면 정자가 난자와 결합해야 하는데, 항정자 항체가 있다면 정자를 적으로 인식해 공격하니 임신이 어려워진다. 주로 난임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항정자 항체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를 여성의 과거 성관계 경험을 밝힐 수 있는 검사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전문가들은 항정자 항체 검사로 성 경험을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정자와 싸우는 '항체' 생기면… 난임 원인 돼
항체는 외부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면역 물질을 말한다. 여성에겐 정자 또한 외부물질이기 때문에 정자가 체내에 들어왔을 때 항체를 형성할 수 있다. 실제로 항정자 항체가 난임의 적지 않은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항체는 여성에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남성도 고환 손상이나 정관수술로 인해, 혹은 특별한 원인 없이 항정자 항체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활동적인 정자의 양이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대구코넬비뇨기과 이영진 원장은 "부부 중 한 명이 높은 항정자 항체를 갖고 있다면 임신이 어려울 수 있다"며 "정자의 정상적인 주행을 방해하고 난자와의 수정까지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항정자 항체가 있으면 임신 초기 유산 위험이 높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이후 이를 반박하는 연구도 나와 확신하긴 어렵다.

최근엔 항정자 항체 검사를 난임 검사법으로 널리 쓰지는 않는다. 이영진 원장은 "다른 난임 검사법이 많고, 검사료도 비교적 고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항정자 항체가 원인이든 아니든 난임이 장기간 지속되면 대부분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시술(체외수정술)을 시도한다. 아주대병원 산부인과 김미란 교수는 "항정자 항체가 있더라도 이런 방법의 난임 치료는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항정자 항체 수치가 매우 높다면 특히 남성의 경우 면역 치료를 통해 항체 활동을 저하하는 방법도 시도할 수 있지만, 비교적 인공수정이 간단하기 때문에 잘 이뤄지지 않는다. 항체를 자연적으로 없애기 위해 수개월 동안 피임 도구 착용을 권장하기도 한다.

◇성 경험 여부·횟수 밝히는 검사? "불가능하다"
문제는 항정자 항체 검사를 '처녀성 검사'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는 항정자 항체 검사를 여성의 처녀성을 확인하기 위한 의학적 검사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항체는 단 한 번이라도 항원(적으로 인식하는 물질)을 겪은 후에만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김미란 교수는 "항정자 항체가 만들어지려면 정액과의 접촉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정액과의 접촉이 항체를 만들 확률은 매우 낮아 처녀성 검사로 적합하지 않다"며 "질 점막에 손상이 있어 혈액에 노출되거나, 소화기관에 정액이 노출되면 확률이 다소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진 원장은 "항정자 항체 검사는 난임 검사의 한 종류일 뿐, 처녀성을 감별하는 검사가 아니다"라며 "의학적으로도 이치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성 경험이 많을수록 항정자 항체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걸까? 해외에서는 성매매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의 양성률이 높으며, 특히 피임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여성에게서 양성률이 높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다만, 이외에는 연구 결과가 부족해 객관적인 입증 자료로 쓰긴 어려워 보인다. 또한 성 경험이 많을수록 항정자 항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하면 난임 위험도 함께 증가할 텐데, 이 경우 출산 경험이 많은 여성들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와 관련해 추가적인 연구가 나올 가능성도 적다. 의학자들이 굳이 여성의 성 경험을 밝혀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김미란 교수는 "이외에도 처녀막 검사 등은 출산 경험이 있지 않는 이상 성 경험을 밝혀내기에 정확한 검사는 아니다"라며 "성 경험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