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식증 환자는 같은 체중의 마른 여성에 비해 자신의 체형이 더 뚱뚱하다고 인식하는 '신체 왜곡 현상'을 뚜렷이 겪는다는 국내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섭식장애클리닉) 김율리 교수팀이 신경성식욕부진증(이하 거식증)환자 26명과 유사한 체중의 마른 여성 53명을 비교 분석했다.
거식증 여성군의 평균연령은 23.3세, BMI 17.13kg/m², 유병 기간은 평균 6년이었다. 마른 여성군의 평균연령은 22.3세, BMI 16.62kg/m² 이다. 이는 키 160cm에 체중 43kg 정도의 매우 마른 체형이다.
연구팀은 체형 인식 측정 도구인 FRS로 두 그룹의 ‘체형인식’을 분석했다. FRS는 1부터(극도로마른 체형) 9까지(매우 비만한 체형) 9개 그림으로 구성, 현재 체형과 이상적인 체형을 선택하도록 설계된 평가방법이다.
분석 결과, 거식증 여성이 마른 여성에 비해 자신의 현재 체형은 더 뚱뚱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이상적인 체형은 더 마른 몸매를 기준으로 삼았다.
거식증 여성은 왜곡된 신체상으로 인해, 마른 여성보다 다이어트 시도도 더 많았다. 또 거식증 여성이 마른 여성에 비해 식사를 더 제한하고, 감정에 따라 식사가 더 좌우되는 양상을 보였다.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도 모두 마른 여성에 비해 높았다. 한편, 거식증 여성과 마른 여성 간에 강박과 완벽주의 성향에는 차이가 없었다. 거식증 여성이 마른 여성에 비해 혈당과 갑상선 호르몬이 더 낮아 대사성 질환에 더 취약했다.
김율리 교수는 “신체상 왜곡은 거식증 환자의 핵심적인 문제"라며 "스스로 살쪘다고 인식해 반복되는 다이어트가 시작되고, 정신적·신체적 건강이 손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0대, 20대에서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를 수행할 역량을 잃게되면, 다시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특히 청소년이나 젊은 여성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삶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될 수 있어 주변에서 병에 대한 각별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율리 교수는 “거식증은 조기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발병 후 6년이 지나면 만성화에 접어들어 회복률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조기에 전문 의료기관을 찾아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거식증은 심각한 저체중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성에 대한 인식 결핍으로 인해 다이어트를 지속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질환이다. 거식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 가장 치사율이 높아서 세계보건기구는 거식증을 청소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질환 중 하나로 권고하고 있다.
김율리 교수는 “여성 100명 중 1명은 거식증 환자로 추정된다"며 "건강보험의 거식증 진료인원은 2019년 3746명으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대다수는 병이 감추어지고 만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에서도 청소년과 젊은 여성들의 건강을 잠식하고 있는 이 병의 조기발견과 치료에 대한 지원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SCI 국제학술지 '유럽섭식장애리뷰(European Eating Disorders Review)'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