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더 안전한 혈액검사법 있어도 못 쓰는 상황, 왜?
김진구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8/02/23 14:20
기존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폐암 환자들이 새로운 항암제를 쓰려면 내성이 있는지를 유전자 변이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 ‘타그리소’라는 이름의 3세대 표적항암제는 ‘EGFR T790M’이라는 유전자 변이가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이 검사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팔에서 간단하게 혈액을 뽑는 방식의 혈액검사이고, 다른 하나는 옆구리에 굵고 긴 바늘을 찔러 넣는 조직검사다. 혈액검사의 경우 혈액 내에 떠다니는 암세포의 DNA 조각을 분석하는 진단법이다.
당연히 혈액검사가 훨씬 간편하고 덜 고통스럽다. 기흉이나 혈흉 같은 부작용도 적다. 또한, 암이 뼈나 뇌로 전이됐을 땐 사실상 조직검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안으로 혈액검사가 유일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 유전자 변이 검사가 필요한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은 간단하고 안전한 혈액검사 대신 고통스런 조직검사만을 받을 수 있다. 환자들은 “혈액검사와 비교해 조직검사가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고통을 받아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지난 22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타그리소 투여를 위한 혈액검사법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액검사법이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환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조직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혈액검사를 받으려면 건강보험 급여 기준상 650만원에 달하는 타그리소 치료비를 비급여로 전액 부담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혈액검사를 요구하더라도 현행법상 불법인 ‘임의비급여’에 해당하기 때문에 혈액검사가 불가하다고 안내한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은, 내성이 발생한 환자에게 쓸 수 있는 항암제 타그리소의 경우 이미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됐다는 점이다. 항암제는 급여화가 됐지만, 정작 이 항암제를 사용하기 위한 혈액검사는 급여화가 되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혈액검사가 급여로 인정되지 않은 이유는 비교적 최근에 신의료기술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가 타그리소의 급여기준을 결정했던 시점은 작년 5월. 당시에는 혈액검사의 적정성 연구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에야 혈액검사의 적정성이 의학적으로 인정됐다. 이로 인해 타그리소의 급여 협상과는 별도로 급여 협상 절차를 밟아야 하는 시간차가 생겼다.
뒤늦게 정부가 타그리소 혈액검사의 급여화를 위한 서면결의안을 건정심 위원에게 돌렸지만, 끝내 안건으로는 상정되지 못한 채 현재의 상황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 달 건정심 안건 상정이 예상되지만, 상정된다고 해도 처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암질환심의위원회가 혈액검사의 유효성을 인정한다는 의견을 내놓더라도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에 그치기 때문이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김혜련 교수는 “혈액검사의 결과가 조직검사의 결과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며 “그렇다고 조직검사가 100% 정확하고 혈액검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조직검사가 틀릴 수도, 혈액검사가 틀릴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직검사와 혈액검사는 정확성에 큰 차이가 없다”며 “조직검사와 혈액검사가 불일치하는 경우는 보통 20% 내외로 보는데, 이때는 조직검사뿐 아니라 혈액검사를 병행해서 유전자 변이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이 암이 뇌로 전이됐거나 폐 깊숙한 곳에 전이된 환자의 경우 조직검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현행 급여체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