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이 인류를 항상 윤택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그렇다. 기획재정부 통계에 따르면 아이코스로 대표되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지난해 5월 출시 후 7개월 만에 8000만갑이나 팔렸다. 담뱃값 인상과 경고그림 도입 등 사회 전반의 금연 움직임 확산에 찬물을 끼얹었다. 웃는 건 아이코스의 제조사인 필립모리스뿐이다.
아이코스 논란은 유해성 여부로 귀결된다. 태우는 방식이 아닌 찌는 방식이 과연 덜 해롭냐는 것이다. 필립모리스는 물론 기존 담배보다 훨씬 덜 해롭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반영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허가를 신청하기도 했다(아이코스는 미국에서 판매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주장에 대한 FDA의 잠정적인 답변이 나왔다. 현지시각 25일 FDA 자문위원회는 “흡연 관련 질병 위험을 줄인다는 필립모리스의 주장은 정당하지 않다(not justify)”라고 발표했다. 자문위원 9명 중 8명이 필립모리스의 주장에 반대했고, 1명은 기권했다. 아이코스가 ‘유해성 절감 제품’으로 판매되는 것에 대해서는 9명 전원이 반대의견을 냈다. 자문위원회 의견은 FDA의 아이코스에 대한 최종 허가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상황을 보자. 아이코스가 판매를 개시하는 시점에서 미국처럼 유해성을 판단하는 절차는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없었다. 관련 규정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2009년 연방법 개정을 통해 담배 상품 출시 전 FDA로부터 허가를 받도록 했다. 반면, 한국은 담배사업법에 따라 시판 여부를 결정하는데, 주무부처가 기획재정부인 이유로 미국과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유해성 판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법 규정의 미비가 정부 실책의 면피용 카드가 될 수는 없다. 한국에 앞서 일본·영국·이탈리아 등 20여개국에서 아이코스가 먼저 판매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2014년 11월 일본에서 처음 판매된 뒤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1년 반이나 되는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관련 규정을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식약처는 8000만갑이나 판매된 뒤에야 유해성을 판단하겠다고 나섰다. 엄밀히 따지면 유해성 검사가 개시된 것도 아니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최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아이코스의 유해성을 밝히기 위해 발암물질 9종의 검사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고민’만 하는 식약처다.

심지어 이 고민에는 “국회에서 요구가 높아지면”이라는 조건도 붙어 있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국회에서 요구가 높아지기 전에 유해성 검사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식약처가 국회가 아닌 국민의 눈치를 보면 안 되는 걸까. 애초에 의약품을 허가할 때처럼 꼼꼼하고 신중한 절차를 거쳐 아이코스의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걸까. 아무렴 의약품도 아닌 백해무익하다는 담배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