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길병원 인공지능 '왓슨' 암환자 진료현장 취재, 10개 항목 입력, 10초 만에 진단 끝~
황인태 헬스조선 기자 | 사진 김지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7/06/22 08:30
의료 지식은 쏟아지고 있지만 인간이 이를 모두 습득하기란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은 넘치는 의료정보 속에서 환자에게 꼭 맞는 정보만을 골라낸다. 사망원인 1위인 암을 치료하기 위해선 각각의 암환자마다 맞춤치료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은 최신의 의료정보를 기반으로 환자의 정보를 녹여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낸다. 과거엔 꿈으로만 생각했던 일이 현재 우리 눈앞에서 이뤄지고 있다. 실제 의료현장에 적용된 인공지능 '왓슨'의 진료현장에 가봤다.
"불과 한 달 만에 대장암이 재발했어요. 딸아이가 오더니 한국에서 치료하자고 말하더군요. 한국에 인공지능 왓슨이 있는데, 저에게 최적의 치료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말했어요. 딸아이의 말을 믿고 비행기에 올라탔죠. 약 10시간을 날아서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재발성대장암 환자인 리즈베코프(Rysbekov, 66세) 씨는 왓슨 진료를 받기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가천대 길병원을 찾아왔다. 대략 지구 둘레의 3분의 1을 날아온 셈이다. 리즈베코프 씨는 "왓슨의 진료를 꼭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한 차례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한 달 만에 재발돼 한국행을 택했다.
리즈베코프 씨가 길병원 왓슨 다학제 진료실을 찾은 날 운이 좋게도 진료현장을 참관할 수 있었다. 리즈베코프 씨가 진료실에 들어서자 간호사와 코디네이터가 안내를 했다. 리즈베코프 씨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표정은 담담했다. 진료실로 들어와 자동문이 한 번 더 열리고 왓슨 다학제 진료실이 눈앞에 들어왔다. 진료실에는 테이블이 삼각형 형태로 놓여 있었고, 소화기내과, 대장항문내과, 영상의학과, 혈액종양내과의 전문의가 자리했다. 리즈베코프 씨가 대형 모니터 3대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자 브리핑이 시작됐다.
혈액종양내과 전문의가 입을 열었다. "한 차례 대장암 수술을 한 환자입니다. 현재 복막 전이가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리즈베코프 씨의 질환과 함께 병력(病歷)에 대한 설명이었다. 3개의 대형 모니터 중 2개에는 리즈베코프 씨의 MRI와 CT 영상이 보여졌다. 또 다른 전문의는 "즉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병원 소화기내과 백정흠 교수는 "수술 경력이 있는 대장암 환자에게서 전이가 발견됐다면 항암치료를 먼저 하는 것이 표준치료"라고 답했다.
의료진과 왓슨이 같은 진단 내려
의사들의 다학제 진료 결론을 들은 리즈베코프 씨는 "왓슨의 답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대형 모니터 3개 중 1개에는 왓슨의 해답이 있었다. 왓슨은 1차 치료로 항암제 치료를 권고했다. 전이성대장암 환자에게 효과적인 폴피리(FOLFIRI, 이리노테칸 기반의 화학요법) 항암화학요법이었다. 리즈베코프 씨도 알고 있는 치료법이었다. 의사들과 왓슨의 치료가 일치하자 리즈베코프 씨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백정흠 교수는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해달라"고 했다. 리즈베코프 씨는 "좋은 치료를 해달라"고 말한 뒤 "스바씨바(CПaCИбO)"라고 답했다. 러시아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카자흐스탄은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를 함께 쓴다. 딸아이와 함게 진료실을 찾은 리즈베코프 씨는 왓슨 다학제 진료실을 나서며 "왓슨의 빠르고 정확한 진료에 놀랐다"고 말했다. 왓슨이 리즈베코프 씨에게 항암제 치료를 권하기까지는 불과 10초를 넘지 않았다.
PART 1 왓슨 진료, 이렇게 진행된다
왓슨 진료는 정확한 환자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이, 성별, 몸무게와 여성의 경우 폐경 여부, 암세포 타입, 피 검사, 과거 수술력 등 최소 10개부터 최대 80개까지 환자의 의료 정보를 입력한다. 리즈베코프 씨의 경우는 ▲나이 ▲성별 ▲암 수술 여부 ▲천공 발생 여부 ▲장 폐색 여부 ▲항암치료 경험 여부 ▲(항암제 치료 시) 사용한 항암제 ▲항암 치료 후 전이 여부 ▲전이된 곳 개수 ▲전이 부위 수술 가능 여부까지 총 10가지 항목이 입력됐다.
입력방식은 간단하다. 스크롤 형태로 선택하는 경우와 빈칸을 직접 입력하거나 체크하는 형태 등 총 3가지 입력방식이다. 백정흠 교수는 "각 환자의 질환이나 병력에 따라서 입력하는 의료 정보의 수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환자 정보 입력에는 5~10분이 소요된다. 하지만 왓슨 다학제 진료실에 환자가 들어서면 이미 정보가 미리 입력됐기 때문에 바로 왓슨의 해답을 확인할 수 있다.
치료법부터 치료기간, 항암제 종류까지 제시
리즈베코프 씨는 한 차례 대장암을 수술 받은 후 재발했다. 더욱이 복막 전이까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재발성 4기 대장암 환자다. 왓슨은 리즈베코프 씨의 입력 정보를 토대로 항암치료를 추천했다.
추천하는 항암제는 폴피리 항암화학요법 하나였다. 전이성대장암에 효과가 좋은 항암치료제로 꼽힌다. 추천하는 항암제는 녹색 바탕에 표시됐다. 이어 권장하는 항암제는 주황색 바탕에 표시됐다. 표적항암제 베바시주맙(Bevacizumab), 항종양제 이리노테칸(Irinotecan), 표적항암제 세툭시맙(Cetuximab) 등 9가지 항암제가 권장 항암제에 속했다. 마지막은 추천하지 않은 항암제였다. 빨간색 바탕에 표시됐다. 추천되지 않는 항암제에는 5-플루오로우라실(5-fluorouracil), 류코보린(Leucovorin) 등 16가지 항암제를 비추천했다.
왓슨은 일반적으로 치료법부터 치료기간, 항암제 종류까지 3가지 답변을 내놓는다. 하지만 모든 암에 있어서는 아니다. 아직 업데이트 중이기 때문이다. 리즈베코프 씨는 4기 대장암이다. 왓슨은 현재 4기 대장암의 경우 항암제에 대해서만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백정흠 교수는 "실시간으로 IBM에서 업데이트가 이뤄지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까지 모든 암종의 85%까지 치료법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PART 2 왓슨이 치료법을 내놓을 수 있는 암은?
가천대 길병원 왓슨(지난 5월 기준)에서 치료법을 내놓을 수 있는 암은 위, 대장, 직장, 폐, 유방, 자궁경부, 난소까지다. 이런 암의 초기는 전부 치료법을 내놓을 수 있다. 진행암도 대부분 가능하다. 하지만 국소 부위에 재발된 암은 아직 치료법이 업데이트 중이다. 전이암 중 3기인 유방, 위, 자궁암의 경우도 치료법이 업데이트 중이다. 하지만 그 외 경우는 대부분 치료법과 치료기간, 항암제 종류가 추천되고 있다.
수술법은 간단하다. 가장 위 칸에 표시된다. 예를 들어 '항암화학요법 후에 내분비 치료와 방사선 요법을 써라(chemotherapy followed by endocrine therapy and radiation therapy)'는 식이다. 치료법 밑에는 바로 치료기간이 표시된다. 막대 그래프로 표시되는데 그래프 밑에는 1년 단위로 시간이 나눠진다. 치료법에 따라 나눠지는데 첫 번째가 항암화학요법, 두 번째가 내분비 치료, 세 번째가 방사선 치료다. 예를 들면 항암화학요법의 막대그래프가 0부터 1 사이까지 있다면 '항암화학요법이 6개월 추천된다'는 뜻이다. 마지막이 항암제 종류 추천이다. 환자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1~3가지가 추천되는데, 건강보험 적용 여부 등 판단해 의사가 환자에게 권유하고, 환자가 선택한다.
왓슨은 길병원에 없다?
왓슨은 치료 전 과정에 참여하지만 아쉽게도 모습을 볼 수 없다. 환자의 정보를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왓슨은 미국 IBM 본사에 있다. 길병원에서는 왓슨의 결과물을 인터넷을 통한 클라우드 방식으로 모니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왓슨 암센터의 다학제 진료실에는 대형 모니터 3개와 모니터 조명 등을 컨트롤할 수 있는 중앙제어시스템 등으로 구성돼 있다. 왓슨의 암진단을 위해 입력된 환자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천대 길병원에서 데이터를 보관한다.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왓슨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PART 3 왜 인공지능 왓슨인가?
쏟아지는 의료 지식, 인간두뇌론 한계
2015년 한 해에만 전 세계적으로 약 4만4000편에 달하는 암 관련 논문이 의료 학술지에 발표됐다. 이는 매일 122편의 새로운 논문이 발표된다는 의미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의료 지식은 이미 인간의 능력으로 따라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2011년 당시 90개 서버,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2880개를 갖춘 왓슨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는 기술로 인간을 앞섰다. 더 이상 수많은 정보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 역할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암치료는 개인 맞춤치료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항암제만 해도 과거에는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항암제를 썼다. 그 때문에 치료 효과를 보는 환자는 10명 중 3명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암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표적항암제를 사용하면 10명 중 6명 이상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맞춤치료는 치료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인다. 맞춤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인공지능이 필요하다. 암환자의 경우 환자 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의료기록과 유전정보 등 환자가 가지고 있는 암 관련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 뒤에는 효과가 우수하고 검증된 다양한 치료법 중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야 한다. 인공지능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매우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더욱이 최신의 데이터와 연구 논문을 기반으로 종합적인 의견도 제안한다. 개인 맞춤치료를 위해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일 필요하다. 암치료를 위해 각 전문진료과목이 모여 의견을 공유하는 다학제가 주목받는 것도 그 이유다. 백정흠 교수는 "인공지능은 다학제의 뛰어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