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천연은 좋고 합성은 나쁘다?
입력 2017/05/16 08:30
모든 약이 천연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자연을 사랑한다. 무엇이든 그 앞에 ‘자연’ 또는 ‘천연’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면 왠지 더 믿음이 간다. 한국 사람만 유별난 게 아니다. 미국소비자연맹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열에 아홉이 식품 라벨에 ‘자연(natural)’이란 문구가 있으면 그 제품을 안전하다고 믿는다고 한다.
때때로 천연에 대한 이런 믿음에 맹목적이며 근거가 없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자연에 대한 신뢰가 저절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수도 없이 자연치유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나이 지긋하시던 양호선생님은배 아프다고 찾아온 학생들에게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말씀하시는 걸로 유명했다. 선생님 뒷담화만큼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약은 안 주고 똥만누라는 선생님이 어디 있냐’며 반 친구들이 키득거린 기억이 선하다. 그런데 사실 그게 효과가 있었다.
살살 아프던 배가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면 말짱해진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느덧 중년이 된 요즘은 배 아플 때가 드물다. 그래도 감기에 걸릴 때마다 자연치유를 경험하곤 한다. 콧물, 기침으로 고생할 때는 도대체 언제 나을까 싶다가도 일주일쯤 지나고나면 나도 모르게 증상이 사라진다. 인체의 자연치유력은 경험할 때마다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다. 배 아플 때 화장실에 가기만 하면 다 낫는 것도 아니고, 감기가 항상 저절로 낫는 것도 아니다.
자연치유력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모든 치료를 자연에만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필요할 때는 의학적 개입을 해주어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폐렴에는 항생제가 필요하고, 궤양성대장염 증상을 가라앉 히려면 항염증 약, 스테로이드, 항생제 같은 다양한 치료약이 때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이 부자연적이라고 의심하며 반대하는 독감예방주사를 맞지 않아서, 자연적으로 독감에 걸렸다가는 자연치유는 커녕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자연에 대한 맹목적 믿음보다는 장단점을 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이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된다.
“자연치유력을 과신하진 않겠다. 그래도 기왕 약을 쓰려면 천연이 좋은 게 아닌가?”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실제로 비타민과 관련해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천연비타민이 낫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네덜란드의 항해사이자 탐험가 빌럼 바렌츠가 활동하던 16세기로 돌아가보자. 비타민의 존재는 고사하고, 유럽의 북쪽에 뭐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모르고 있을 때였다. 바렌츠는 유럽의 북쪽을 탐험하는 데에 많은 일을 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딴 ‘바렌츠해’라는 바다가 있을 정도다. 바렌츠 일행은 1596년 북동항로를 탐험하다 조난당하고 말았는데, 이때 일행 다수는 북극곰의 간으로 만든 스튜를 먹고 전멸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선원이 모두 고열, 어지럼증과 함께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었고, 그중 세 명은 온 몸의 피부가 벗겨지며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비타민A 때문이다. 북극곰의 주식은 비타민A가 풍부한 물범인데, 물범을 잡아먹는 과정에서 북극곰의 몸에는 비타민A가 축적된다. 특히 북극곰의 간에는 인간의 간에 비해 비타민A가 40~60배 더 들어 있는데, 이 정도면 30~90g만 먹어도 몇 시간 안에 죽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이다.
북극곰은 고농도의 비타민A를 간에 저장하는 방법으로 비타민A의 독성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그 간을 먹은 선원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치사 위험에 처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북극곰의 간에 들어 있던 비타민은 천연일까, 합성일까? 당연히 천연이다. 그러나 비타민이 천연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16세기 선원들이 천연의 비타민A를 먹고 죽을 뻔했던 것처럼 천연이라는 수식어가 비타민 앞에 붙는다고 해도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천연과 합성의 경계도 생각보다 애매하다. 페니실린으로 처음 사람을 치료한 것은 아직 100년도 되지 않았지만, 천연물로 사람을 치료한 지는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게 천연이 안전하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다. 그런데 실은 최초의 페니실린도 화학합성 약은 아니었다. 푸른곰팡이에서 만들고 추출한 약이었다. 충분한 양을 얻기 어려운 생산 방식으로 인해, 약이 금방 떨어졌고, 페니실린을 투약 받은 최초의 환자 앨버트 알렉산더는 불가피한 치료 중단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장미 덤불에 얼굴을 긁힌 가벼운 상처가 감염되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 역시, 자연치유가 실패했을 때 약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결과다.)
이렇게 미생물에게 대신 부탁해서 약을 만드는 것을 ‘생합성’이라고 한다. 미생물을 통째로 쓰지 않고 약성분만 추출하는 것은 물론 안전을 위한 것이다. 페니실린 대신 푸른곰팡이를 약으로 쓰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효모와 같은 미생물을 통째로 넣어 만든 비타민 알약은 과학자들의 눈에는 전혀 자랑할 만한것도, 안전한 것도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천연 여부가 아니라 양이다. 어떤 비타민이건 적당히 섭취하면 도움이 되고, 과잉이 되면 독이다. 천연의 비타민A라도 과잉이면 바렌츠 일행처럼 죽음의 위험에 처할 수 있지만, 반대로 비타민A가 모자라면 눈이 건조해지는 안구건조증이나 밤에 잘 보지 못하는 야맹증이 나타날 수 있고, 겨울철 폐렴 같은 호흡기 감염에도 취약해진다. 골고루 다양한 음식으로 섭취하면 더 좋지만, 인공 비타민 알약을 먹어야 할 때도 있다. 자연과 인공 사이에서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거리 구분이 아니라 균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