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최고의 예술품’ 발을 사랑한 화가 드가

글 문국진 박사

사람 몸은 의학과 예술 만남의 장소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화가가 되고서 처음에는 신화나 역사, 혹은 자연을 소재로 한 인물화를 주로 그렸다. 그러다가 기존 인물그림에서 벗어나 당시 부르주아 계층이 즐겨 관람한 발레와 서커스, 경마 등을 소재로 사람의 동작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한 뒤 여러 번의 드로잉을 거쳐 작품을 완성했다.

19세기는 발레의 황금기여서 발레는 당시 문화예술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발레를 보고 2차 창작을 하는 예술가도 많았다. 드가도 발레하는 무희를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인간 형상의 선을 강조하는 신체 예술인 발레는 드가와 같은 미술가에게는 더없이 매혹적인 소재였다. 그는 무대 위에서 발레하는 장면보다 무대에 오르기 전 리허설이나 무대를 마친 후 휴식하는 상황을 그리는 걸 선호했다.

발레는 대개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춰 강인한 발레 기술의 체계가 확립되었는데, 발은 온몸의 체중을 지탱해주는 부위로 피로가 가장 많이 쌓이기 때문에 특히 무희 지망생은 맹훈련으로 다리와 발의 통증을 호소했다. 드가는 신체의 선을 강조해 인간의 순수한 미를 표현하는 데 몰두하였지만, 무희들이 고통을 겪는 발과 다리의 모습도 놓치지 않고 그렸다.

 




발은 인체공학상 최고의 걸작품
드가의 작품 <외발 서기(Les Pointes, 1877~1878)>를 보면 예쁘게 몸치장한 무희가 화려한 무대 위에서 한쪽 다리를 수평으로 높이 들고 다른 한쪽 다리로 섰는데, 무대 바닥에 닿은 것은 그 무희의 발바닥이 아니라 발가락이다. 이 모습은 발레하는 동작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미지인 발끝으로 서는 기술인 포인트(Point)다. 이를 본 관객들은 마치 무희는 토슈즈를 신고 “체중 없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몸이 만들어내는 조형미와 빛에 포착된 발레리나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 드가도 이 동작을 놓칠세라 포착해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림과 같은 동작을 연속적으로 연출하는 무희들은 다리와 발에 심한 무리가 가해져 통증을 느끼게 된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람 몸 면적의 불과 2% 밖에 되지 않는 발로 98%의 몸무게를 견디어내야 하는 발을 가리켜 일찍이 “인체 공학(工學)상 최대의 걸작이자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발의 구조와 기능만 봐도 알 수 있다. 한쪽 발에만 뼈 26개, 관절 33개, 근육 64개, 인대 56개로 이뤄져 있으며, 근육은 발의 움직임 전반에 걸쳐 작용하며, 인대는 격렬한 긴장과 비틀림을 견뎌내게 된다. 또 발 관절에 각 근육의 기능을 연결시켜주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에 나온 명언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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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드가의 <수평봉에 발을 올린 무용수들>, 필립스 미술관. / 우)드가의 <외발 서기(Les Pointes)>, 개인 소장.

드가 사후에 발견된 <수평봉에 발을 올린 무용수들>
드가의 작품 <수평봉에 발을 올린 무용수들(1888)>은 드가가 1870년대 중반부터 발레 연습용 바(Barre)에 다리를 올린 무용수를 모티브로 그리기 시작한 시리즈 중 후기 작품으로 드가 사망 당시 작업실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다른 발레리나 작품에 비해 사이즈가 크며 파스텔이 아닌 유화 작품이라는 점과 그림의 배경이 주황색과 노란색 붓 터치로 처리돼 다른 발레리나 작품보다 미적 감각이 있기 때문에 더 가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두 무용수는 서로 반대쪽을 바라 보며 각자 다른 쪽 다리를 스트레칭하고 있다.

스트레칭은 몸을 곧게 쭉 펴서 근육이 늘어나게 하는 몸의 움직임으로, 부상방지와 피로회복이 되는 한편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운동이다. 특히 무희들이 스트레칭을 자주 하는 것은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가동 범위를 넓혀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무희들은 연기를 전후해서 스트레칭을 필수적으로 행하게 된다. 근래에 와서는 정신노동의 피로회복에도 스트레칭이 유효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드가가 발레 장면 그리기에 전념한 것은 무희의 연습용 손잡이와 거울이 그 방의 가장자리인 벽에 붙어 있어 황반변성(黃斑變性)이라는 눈질환이 있어 화면의 중심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 그가 불편 없이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일명 ‘발레리나 화가’라는 칭호를 얻은 것이다. 결국 그의 눈장애가 그를 유명한 발레화가로 탄생시킨 셈이다.

드가는 젊은 무희들의 생기 넘치고 발랄한 동작을 주로 작품으로 남겼다. 그러나 <두 발레 무희의 휴식>(1879)은 고된 일과를 잠시 멈추고 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지친 모습의 무희를 그렸다. 아마 힘에 넘칠 정도로 과도한 연습을 한 모양인데, 드가가 마치 스케치하듯 그린 거침없는 파스텔의 흔적이 완연히 드러나 보인다. 인체의 윤곽선은 자유스러운 선으로 간략하게 묘사되었다.

드가를 흔히 ‘데생의 천재’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그는 그림 속에 섬세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세밀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드가의 작품에 등장한 주인공들은 대부분이 발레리나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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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두 발레 무희의 휴식>, 미국 버몬트 쉘부른 미술관

지친 무희의 숨소리까지 스케치
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쉬는 두 무희의 모습을 보면 지친 무희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드가는 단지 움직이는 사람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멈춘 무희에게서도 그녀들이 나타내는 어려움과 아픔의 호소를 그대로 표현하였다. 무희는 예술을 하는 스포츠인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발가락으로 온몸을 지탱하는 동작이 많고, 점프도 해 다리와 발을 많이 쓰기 때문에 다리와 발 관리를 소홀하면 무용을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인체는 약 206개 뼈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발에만 양쪽 합쳐 52개 뼈가 있어 몸 전체 뼈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이뿐만 아니라 발과 다리에는 몸에서 가장 굵고 강한 근육이 발달돼 있으며, 우리 몸에서 인대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부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발과 다리에는 수많은 혈관이 분포돼 있어 발과 다리를 ‘제2의 심장’으로 부른다. 실제 발은 1km를 걸을 때마다 12t의 압력으로 피를 심장으로 다시 보내는 한편 발은 몸을 설 수 있게 하여 두 손을 자유롭게 해 인류문명을 발달하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드가의 작품 <두 발레 무희의 휴식>에서 오른쪽 무용수는 발목과 무릎관절을 만지고 있으며, 왼쪽 무용수는 양손으로 양 종아리 근육의 긴장과 아픔을 풀고 있다. 말할수 없이 고된 훈련과 연습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쳐 통증을 느껴야만 하는 지경에 빠지게 된 모습을 표현한 그림으로, 대체로 무희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인 듯.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드가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잘 묘사했다.

드가는 무희들을 모델 삼아 자기의 예술적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반면, 무희들의 아픈 고통을 알리는 데도 자기의 기량을 아끼지 않은 그야말로 참된 발레리나 화가였음을 여실히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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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
문국진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회원,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대한민국학술원상,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 문화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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