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은 의학과 예술의 만남
감정의 표출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가장 솔직하게 표출되는 부위가 얼굴이다. 또 감정은 말이라는 표현에 앞서 느끼는 즉시 표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거짓이 없는 솔직한 의사소통의 통로다. 따라서 사람들 간의 사귐에서는 비언어적 소통의 지름길로 매우 중요시된다.
쾌(快)와 불쾌(不快), 그리고 정서
감정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관여되어 복잡하지만, 우선 ‘쾌(快)’와 ‘불쾌(不快)’로 나눌 수 있는데 짧게 지속되는 감정은 정서(情緖, Emotion)라 한다. 즐거움과 슬픔 등이 이것에 해당된다.
예술작품의 탄생에서 감정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정서는 어떤 감정을 느꼈지만 그것이 약하거나 이를 억제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강할 경우에는 순식간에 나타났다. 짧은 시간 내에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예술적인 감각으로 감지하지 못하면 놓치게 된다. 그런데 이 정서 표정을 잘 살려 표현한 화가의 작품이 있어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억제된 슬픔, 이 여인은 누구인가
러시아 화가 크람스코이(Ivan Nikolaevich Kramskoi 1837~1887)의 작품 <잊을 수 없는 여인>(1883)이라는 그림을 보면, 한 아름다운 여인이 마차를 타고 지나가며 깊은 수심과 슬픔에 잠겨 차갑고 무표정한 눈으로 밑을 내려 보고 있다.
여인이 무표정하게 보이는 것은 자신의 슬픈 감정을 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옷차림과 표정에서 풍기는 모습으로 보아 상류층 여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편 어떻게 보면 좀 퇴폐적이라는 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를 퇴폐녀(退廢女)로 몰아붙이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가 이 매력적인 여인이 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고 싶어질 것이다. 이 여인의 신분에 대해서는 미술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황제 알렉산도르 3세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설, 그 지방 부호의 여식이라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화가가 당시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과 또 화가가 초상화를 그릴 때 그 시대의 사회상을 암암리에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 여인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표현했거나, 시대적 사회성을 표현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와 대립해 고독과 싸우던 안나 카레니나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림을 보면 그녀의 얼굴을 확대하여 보지 않을 수 없게된다. 우선 오른쪽 눈에는 없는 눈물이 왼쪽 눈에는 촉촉이 고여 있다. 즉 슬픔을 강한 의지로 억제하기 때문에 슬픔의 표정이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의 표정은 대부분이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짧은 시간 내에 사라지기 때문에 그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는 수가 있다. 실제 얼굴의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아직 뚜렷한 형태를 보이지 않은 상대의 표정을 희미표정(稀微表情, Micro-expression)이라 하며, 표정이 얼굴의 한 부분에만 나타나는 표정을 부분표정(部分表情, Partial Expression)이라고 한다. 이 두 표정은 표정이 나타나는 과정에 있거나, 아니면 나타나는 표정을 억제하는 힘이 강할 때 보이는 것으로 이에 대한 경험이 없으면 놓치는데 화가는 그림으로 잘 표현했다.

웃음과 울음, 거짓과 진실
우는 표정과 웃는 표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눈에 나타난다. 즉 웃는 표정일 때는 눈꺼풀이 이완되어 눈알을 덮게 되는 데 반해, 우는 표정에서는 눈 주위에 분포되는 근육이 수축되어 이맛살을 잡게 되며 그것도 모자라면 이마에 있는 전두근(前頭筋)에 의해 커다란 가로 주름이 잡힌다.
즉, 우는 표정은 주로 얼굴의 상반부 근육이 강하게 작용하는 데 비해 웃는 표정에서는 얼굴의 하반부 근육이 강하게 작용해 이를 손으로 가리는 동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두 표정은 뇌에 의해서 지배되는데, 두 표정은 밀접한 관계에 있어 때로는 두 표정이 눈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것을 나타내는 말로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다’가 있다.
사람이 웃을 때나 울 때를 막론하고 눈물이 나오는 것은 가슴의 횡격막근(橫隔膜筋)과 배의 복직근(腹直筋)이 같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웃을 때는 횡격막근이 먼저 수축하고 다음에 복직근이 수축하는 데 비해 울 때는 복직근이 먼저 수축되고 다음에 횡격막근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만세를 부를 때 두 손을 드는 것은 횡격막근의 작용을 활발히 하기 위함이고, 슬퍼서 울 때 땅을 치는 것은 복직근의 작용을 활발히 하여 더 슬프게 울게 하기 위함이다.
격한 감정으로 인해 횡격막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가슴과 목에 영향을 미쳐 호흡은 흐느끼게 되며 흡기(吸氣, 들숨)는 빨라지고 호기(呼氣, 날숨)는 느려지며, 입술은 이완되어 아래턱은 처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눈썹은 구각과 더불어 입의 움직임에 따라 상하로 실룩거리게 된다.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의 표정에서 진정으로 기쁘고 즐거워서 웃을 때는 얼굴의 표정근과 횡격막근이 연계해서 작용하며, 울 때는 얼굴의 표정근과 복직근이 연계해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거짓으로 웃거나 울 때는 이러한 횡격막근이나 복직근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표정이 형식적이며 소극적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또 사람은 표정을 나타내는 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인 학습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이를 하품이라는 현상을 이용해 설명하기로 한다. 하품이란 자기의사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심호흡으로, 정신적·육체적으로 피로하거나 졸음이 올 때 일어나는 몸의 증상이다. 또 실내 환기가 나쁘면 심호흡을 크게 하여 위축된 폐포를 확산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생활반응이며 의식적으로는 할 수 없다.
이러한 하품이 일의 피로와 관계된 선천적인 감정현상임을 잘 표현한 그림이 있다. 프랑스 화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의 <세탁소 여직공들>(1884~1886)을 보면 그림 중에는 다림질하는 세탁부와 그 옆에서 하품하며 서 있는 두 여인이 있다. 다림질하는 여인 옆의 여인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고 있는데 손에는 포도주병을 들고 있다. 몸의 피곤함을 잊으려고 포도주를 한잔 마셨는데 오히려 하품만 나오고 피곤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다.
드가는 이러한 두 여인의 몸짓언어의 대비로 그림은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조화를 표현하고 있다. 마치 하품을 피곤감정에서 우러나는 선천적 행위임을 설명이라도 하기 위해 그린 그림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문국진
문국진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회원,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대한민국학술원상,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 문화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