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의사
복부대동맥류 파열 이겨낸 조병흔 씨 & 주치의 송석원 교수
큰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충격받지 않는 환자는 없다. 이때 환자와 보호자를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주치의다. 주치의와 잘 소통하며 깊은 신뢰를 쌓은 환자·보호자는 병을 이기는 힘이 강해진다. <헬스조선>은 환자와 의사를 한자리에서 만나 이들의 역경 극복 스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일곱 번째 주인공은 복부대동맥류 파열을 이겨낸 조병흔 씨와 아내 배영은 씨, 주치의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송석원 교수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던 9월 초순,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작은 회의실에서 조병흔 씨(67)와 주치의 송석원 교수를 만났다. 함께 들어오는 두 사람 뒤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한 여성이 따라 들어왔다. 조병흔 환자의 아내이자 보호자인 배영은 씨였다. 처음 병원에 가게 된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조병흔 씨는 말이 없었고, 아내 배영은 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조병흔 씨는 “제가 그때 20일간 혼수상태여서, 그 이야기는 아내가 더 잘 안다”며 멋쩍게 웃었다. 실제로 배영은 씨와 송석원 교수의 대화에서는 상당한 신뢰가 느껴졌다. 쓰러져 사경을 헤매던 조병흔 씨의 아내 배영은 씨를 즉석에서 섭외해 함께 이야기를 듣게 됐다.
헬스조선: 언제 처음 교수님을 찾게 되었나요?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배영은 씨 작년 8월이었죠.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즈음 해서 남편이 생전 잘 마시지도 않던 콜라를 자꾸 찾더라고요. 소화가 안 된다고 밥 먹으면 콜라를 마셨어요. 약국에서 파는 소화제도 늘 가지고 다녔죠. 커피도 입에 달고 살고…. 그러던 어느 날 딸 생일을 맞이해 가족이 다 같이 저녁을 먹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자꾸 등이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밤 12시쯤이었나, ‘배 아파 죽는다’고 하면서 쓰러졌어요. 112에 신고했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배 아프다는 말을 계속했죠.
조병흔 씨 저는 기억이 없어요. 정신줄을 놔서(웃음). 배가 아프다는 말을 한 기억도요. 쓰러진 이후, 병원에 갔다가 수술이 끝나고 한참 뒤의 기억뿐입니다. 아내와 선생님이 고생 많이 했죠.
배영은 씨 구급차를 탔고 평촌에 있는 한 대학병원으로 갔는데 그곳에선 치료를 못 한대요. 구급차 안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어요. 다들 안 된대요. 선생님이 없다, 자리가 없다, 치료를 못 한다…. 그런데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오라고 했어요. 마침 수술 끝내고 나온 선생님이 계신대요.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기분이었습니다. 그 길로 달려갔어요. 그리고 송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송석원 교수 환자분은 복부대동맥류 파열이 일어난 상태였습니다. 복부대동맥류는 복부 안에 있는 큰 혈관인 대동맥이 약해져서 늘어나는 질환입니다. 원래 직경이 2cm 정도여야 하는데 5cm가 넘으면 치료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환자분은 혈관이 압력을 못 이기고 직경 9cm 정도까지 늘어난 상태였어요. 큰 증상이 없다보니 모르고 있다가 병을 키운 거죠.
※복부대동맥류란?
복부에 있는 큰 대동맥이 정상보다 늘어나는 질환이다. 심하면 혈관이 파열된다. 대동맥 벽의 동맥경화 등, 노화가 원인인 경우가 많지만 원인 불명일 때도 있다. 흡연, 음주, 고지혈증 등이 위험 요인이다.
헬스조선: 질환명이 조금은 생소한데요.
송석원 교수 옛날에는 이런 병이 있는 줄 모르는 분이 많았어요. 발견하는 경우도 잘 없었죠. 요즘 건강검진을 많이 하면서 초음파나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로 발견되고 있어요. 그전에는 그냥 배가 아파서 죽는다고 생각했죠. 파열 전까지는 수술·시술로 잘 치료됩니다. 최근에는 파열되는 경우가 드물어요. 복부대동맥류 파열이란 전화를 받으면 대부분의 의사들이 꺼려요. 촌각을 다투는 질환이고, 절반 이상이 사망해요. 급히 오다 도로 위에서 사망하는 분도 많아요. 병원에서 수술이 잘 되어도 죽을 수 있고요. 외과의 수술 성적과도 관련이 있다보니, 맡고 싶은 수술은 아니죠. 그래서 아마 환자분이 여기저기서 거절당했을 겁니다. 제가 아는 한 강남세브란스는 복부대동맥류 파열 환자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제 담당이기도 하고요. 365일 24시간, 상태 상관없이 환자를 받습니다.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좋은 거니까요. 그래서 조병흔 씨도 받았습니다.
배영은 씨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어요. 응급실 도착 11분 만에 수술실로 갔으니까요.
송석원 교수 혈압이 유지 안 되고, 혈관이 터진 상태였죠. 복강 안에 피가 2~3L로 가득 차서 배가 남산만큼 불러 있었어요. 보자마자 가능성이 많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영은 씨 교수님이 저를 불러서, 설명했어요. 이미 피가 고여 있는 상태라 수술해도 잘못될 가능성이 95% 정도 된다고 하셨죠. 그런데 이상하게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어느 병원도 받아주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여기서 오라고 했고, 차분하게 말씀하는 선생님이 믿음이 갔어요. 저도 남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요.

헬스조선: 수술 후 경과는 어땠는지 자세히 말해주세요.
송석원 교수 보호자분의 믿음이나 의지가 대단했어요. 저도 힘을 내서 수술했죠.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혈압이 낮은 상태로 오래 있었단 겁니다. 그러다보니 소장과 대장이 많이 부어 있었어요. 수술이 성공적이어도 복부대동맥류 파열 환자가 사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장기가 부어서입니다. 장기가 부어 있으면 혈액이 제대로 가지 못해요. 조병흔 환자는 평소 고혈압이 있었는데, 혈압이 60~70mmHg인 상태로 5~6시간 있었어요. 이렇게 되면 평소 장기로 가는 혈액의 3분의 1`에서 4분의 1만 가게 되죠. 게다가 장기가 너무 부어서 배를 닫을 수 없었어요. 배를 열어둔 상태로 수술을 종료했습니다.
배영은 씨 장기가 부어서 배를 닫을 수 없다고 하면서, 남편 배 부분에 투명한 막 같은 걸 씌운 채 나왔어요. 그 사이로 장기가 다 보여요.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하는데 그때 어찌나 안쓰럽고 눈물이 나던지…. 그래도 일단 살아서 나왔구나, 수술한 선생님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술하고 이틀이 지나서 부기가 가라앉았다며 배를 봉합했어요.
조병흔 씨 그러고 나서 저는 20일쯤 뒤에 의식을 되찾았어요. 집에서 쓰러졌을 때 바로 다음 기억이 병원에서 제가 온갖 링거·관을 주렁주렁 달고 누워 있는 거였으니까요. 어리둥절해하는 저에게 아내가 천천히 자초지종을 설명해줬죠.
배영은 씨 20일간 매일 송 교수님이 찾아오셨어요. 한번 오면 30분씩 계셨습니다. 오실 때마다 남편의 몸 상태를 상세히 설명해주셨어요. 오늘은 혈압이 좀 떨어졌다, 오늘은 큰 문제가 없다…. 교수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어요. 그 와중에도 제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항상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환자도 많을텐데 매일 30분씩 남편을 보는 모습에 ‘정말 감사한 분이다’라고 생각했죠. 남편이 눈을 뜬 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교수님의 실력과 정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죠. 저에겐 교수님이 하나님 같은 분입니다.
송석원 교수 환자분이 살려는 의지가 강했어요. 복부대동맥류 파열 환자 치고 나이도 젊으셨고요. 그리고 보호자가 무척 헌신적으로 돌봐주시고, 치료에도 협조해주셨습니다. 의사를 신뢰하고 따르는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면 의사도 더 열심히 하게 돼요.
헬스조선: 응급실에 방문하신지 두 달하고도 일주일 만에 퇴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긴 기간인데, 그 사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조병흔 씨 배를 수술하다보니 음식을 못 먹었습니다. 튜브로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는 상황이었고요.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더군요. 그런데 아무것도 못 먹으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배영은 씨 지나가는 사람들이 빵이라도 먹고 있으면 그걸 사오라고 생떼를 부렸어요(웃음). 못 먹게 하는 게 힘들었죠. 교수님 말씀이 중환자실에 오래 있으면 일시적으로 섬망이 오기도 한대요. 안절부절못하는 거죠. 거기에 음식에 대한 욕구가 더해지니 오죽했겠어요. 입원하고 45일 정도 됐을까, 교수님이 드디어 음식을 먹어보자는 말을 꺼내셨어요. 음식은 바나나였습니다. 처음 바나나를 먹던 순간은 감격이었죠. 동영상으로도 남겨뒀습니다.
조병흔 씨 송 교수님과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바나나를 먹는데, 맛도 미쳐 못 느낄 정도로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한 달 반 만에 먹는다는 행위를 경험하는 게 참 행복했지요.
배영은 씨 퇴원 후에는 매일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갈비를 해 먹였어요. 수십 kg 먹었을 거예요. 밤에 기름을 빼서 푹 고아놓으면, 혼자 새벽에 일어나서 슬쩍 꺼내 먹어요. 일어나 보면 없어.(웃음)
송석원 교수 환자에 대한 아내분의 애정이 각별하다는 걸 느낄 수 있지요? 환자에게는 보호자의 보살핌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어요. 저도 감탄했죠. 결과적으로 환자가 잘 회복되어서 두 분께 참 감사합니다. 아내분은 의료진을 신뢰하고 말을 따르며 환자를 보살피고, 환자는 회복되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배영은 씨 교수님 덕도 크죠. 교수님이 젊은 나이지만, 참 존경스러워요. 깜깜한 바다에 등대 같아요. 숙식도 병원 근처에 집을 얻어서 하신다고 하던데, 자신의 모든 걸 바쳐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는 의사의 모습을 느꼈습니다.
조병흔 씨 살아난 게 기적이라고 다들 그러니, 건강관리는 교수님 말을 철저하게 따릅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담배를 이젠 전혀 안 해요. 과거 하루에 담배 두 갑씩, 소주는 한 병씩 달고 살았지만, 여러 사람이 살려준 목숨인데 소중히 하려고요. 모임 가도 콜라나 사이다를 마십니다.
헬스조선: 이번 치료를 통해 느낀 점이나 같은 질환을 가진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송석원 교수 복부대동맥류는 파열되기 전 치료하는 게 최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검진을 제때 잘 받아야 해요. 배꼽 근처를 초음파로 살펴보면 금방 진단됩니다. 보호자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병흔 씨는 평소 병원을 멀리했대요. 크게 아픈 곳이 없다며 정기검진도 받지 않았다네요.
조병흔 씨 이번일로 건강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죠. 지금은 정기적으로 병원도 가고, 몸에 좋다는 걷기 운동도 꾸준히 합니다. 남들이 보면 큰 수술 했는지 모를 정도로 잘 지내고 있어요.
배영은 씨 예전의 남편은 검사받으라고 잔소리해도, 병원 근처에 가는 게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병을 키운 거겠죠. 독자들에게 건강을 과신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송석원 교수 남자는 여자 말을 잘 듣는 게 건강비결일 수도 있습니다.(웃음)
송석원 교수가 알려주는 복부대동맥류 예방 수칙
1 흡연은 복부대동맥류의 가장 큰 위험 요소다.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2 평소에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을 관리하자.
3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복부대동맥류의 원인이 되므로, 가능한 마음을 편하게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4 65세 이상 남성의 약 5%에서 복부대동맥류가 발견되므로, 65세 이상이라면 한번쯤 복부초음파를 해보는 것을 권장한다.
5 복부대동맥류를 진단받았다면 혈압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6 직경의 크기가 작은 복부대동맥류는 관찰하며 경과를 살펴도 되지만, 5cm 이상 커지면 빨리 스탠트도관삽입술이나 수술 치료를 해야 한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파열의 위험이 있으니 주치의와 시기를 잘 상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