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D MED] 세계적인 의료 컨퍼런스 테드 메드(TED MED) 지상중계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하거나 부모로부터 방치되는 것 등은 끔찍한 일이다. 소아과 의사인 나딘 버크 해리스(Nadine Burke Harris)는 이러한 경험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이 성인 이후 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테드 메드(의학 관련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세계적인 의료 컨퍼런스) 강연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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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십시오. 전부 생각해낼 수는 없지만,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몇몇 기억이 있을 겁니다. 특히 힘들고 두려웠던 일일수록 더 잘 기억나기 마련이죠. 어린 시절 겪는 힘든 일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정신적인 상처를 받게 만듭니다.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극심한 심리적 외상을 입는 것입니다. 여기서 트라우마는 시험에서 낙제하거나, 운동경기에서 졌을 때 경험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가족이나 어른들에 의한 학대와 방치, 무관심,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알코올·약물에 의존하는 부모에게서 자라는 것처럼 극심한 위협들입니다. 이러한 위협에 맞닥뜨렸을 때 입는 심리적 외상은 전 인생에 걸쳐 영향을 줍니다.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뇌의 발달과 면역 체계, 호르몬 체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로 인해 심장병·폐암 등의 신체적 건강에도 위협이 됩니다.

 

간염 발병 2.5배, 자살 확률 12배 더 높아

미국질병관리본부(CDC)의 밥 안다(Bob Anda)박사와 빈스 펠리티(Vince Felitti) 박사가 진행한 ACES(Adverse Childhood Experience Study·유아기 학대경험 연구) 연구결과는 아동기 트라우마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게 해줍니다. 이 연구에서는 1만75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구체적인 점수(ACE 점수)로 측정했습니다.

육체적·정신적·성적인 학대, 신체적 또는 정신적 방치, 정신병, 약물의존, 감옥 수감, 부모의 별거나 이혼, 가정폭력 등이 구체적 항목입니다. 각 항목에 ‘예’라고 할 때마다 1점씩 ACE 점수에 더해졌습니다. 이렇게 집계한 ACE 점수와 건강상태에 대한 연관성을 비교했습니다. 찾아낸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우선 ACE로 살펴본 트라우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외로 흔하다는 점입니다. 전체 대상자의 67%는 적어도 ACE 1점 이상이었습니다. 심리적 외상이 한 가지 정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전체의 12.8%는 ACE가 4점 이상이었습니다. 게다가 점수가 높을수록 신체적 건강이 더 나빴습니다. ACE 점수가 4점 이상인 사람은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걸릴 상대적 위험도가 ACE 점수가 0점인 사람보다 2.5배 더 높았습니다. 간염에 걸릴 확률도 2.5배 높았고, 우울증은 4.5배 높았습니다. 특히 ACE가 7점 이상인 사람이 자살할 확률은 ACE가 0점인 사람에 비해 12배 높았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면역·호르몬 시스템에 나쁜 영향 줘

아동기에 심리적 외상을 입으면 신체적 건강이 나빠지는 이유는 언뜻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면 술·담배를 빨리 배울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건강도 나빠지는 거겠지.”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역경과 건강 사이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죠.

답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뇌와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을 담당하는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극한의 상황이 올 때 작동합니다. 산속을 걷다 곰 한 마리를 봤다고 가정해볼까요? 시상하부가 뇌하수체에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는 부신에 전달됩니다. 그 결과 아드레날린이나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호르몬이 급격히 분비됩니다. 곰을 싸우거나 곰한테서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이죠.

아주 가끔씩 위협에 맞닥뜨렸을 때 이러한 신체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범주에 속합니다. 문제는 아동기에 겪는 학대, 부모로부터의 방치 등의 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이 시스템이 반복해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반복적인 스트레스 시스템 작동에 대해 굉장히 예민합니다. 아이들의 두뇌와 신체는 이제 막 발달하고 있는 단계니까요. 그래서 반복적인 심리적 외상은 뇌구조와 기능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발달 중인 면역 체계 및 호르몬 시스템에 영향을 미칩니다.

아동기 심리적 외상은 일생 동안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위협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지역, 극심한 빈곤을 겪는 다른 나라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억을 떠올려 주변인들을 생각해보세요. 매일 같이 술을 마셔대는 알코올 중독이 있는 부모나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말을 믿는 부모가 있었는지를요.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도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건강을 지키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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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딘 버크 해리스는?

소아과 의사인 나딘 버크 해리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청소년복지센터(The Center for Youth Wellness)의 센터장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겪는 트라우마가 성인기 이후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강승미 헬스조선 기자 | 사진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