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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오남용은 테러만큼 위험합니다
취재 이현정 헬스조선 기자 | 사진 김지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5/09/30 16:00
영국 정부 최고의료책임자 샐리 데이비스 교수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는 일명 '슈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슈퍼박테리아 발생의 주요 원인인 항생제 오남용에 대해 영국 정부 최고의료책임자 샐리 데이비스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테러만큼 위협적인 항생제 오남용
"항생제 오남용은 기후변화나 테러만큼 위협적인 문제입니다." 지난 9월 9일 막을 내린 '제2차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 고위급 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영국 정부 최고의료책임자 샐리 데이비스 교수가 항생제 오남용 문제를 '시한폭탄'에 비유하며 심각성을 강조했다. 병원성 세균 죽이는 역할을 하는 항생제를 오남용하면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란다.
"항생제를 필요 이상으로 복용하면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균까지 죽일 뿐 아니라, 항생제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병원성 세균이 유전자 변이를 통해 기존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됩니다. 결국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새로운 슈퍼박테리아가 생기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1987년 리포펩타이드를 마지막으로 약 29년간 새로운 항생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신종 항생제 개발에 드는 비용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고, 빠른 속도로 등장하는 새로운 슈퍼바이러스의 속도를 항생제 개발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이비스 교수는 "특히 한국은 항생제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28.4DDD로 OECD 평균20.3DDD보다 약 1.4배 높다. 그 이유는 감기 등 급성 상기도감염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데 있다. 감기는 보통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으로, 박테리아(세균)에 의한 질환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경우가 아니면 항생제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다. 항생제는 박테리아에 의한 질환 치료제로 바이러스성 질환에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병원에서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비율은 55%에 달한다.
"항생제 오남용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당장 강력한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했을 때 해결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의 의료 수준은 19세기 초 상황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동안 항생제가 해결해온 수술 후 감염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항생제 내성 문제 대응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 필요해
항생제 오남용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의사, 환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데이비스 교수는 "항생제의 불필요한 사용을 줄이기 위해 항생제 처방에 대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신종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감시체계를 마련해 슈퍼박테리아에 신속하게 대응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환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움직임도 강조했다. 환자들이 '항생제를 먹으면 빨리 낫는다'는 잘못된 인식 탓에 무조건 의사에게 항생제 처방을 요구하는 것도 무분별한 항생제 처방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협력 역시 중요합니다. 지난해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전염병은 국경을 넘나들며 빠른 속도로 전파됩니다. 슈퍼박테리아 또한 빠른 대응을 위해 국제정보공유 시스템을 구축해야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셀리 데이비스(Sally Davies) 교수
영국 정부 최고의료책임자(CMO)로서 영국정부에 보건·의료정책에 조언을 해주고 있다. 데이비스 교수는 2010년 CMO가 생긴 이래 최초의 여성 CMO다. 2009년 의학분야에 대한 공로로 영국 2등급 훈장(DBE)을 받았으며, 2014년 5월에는 영국왕립학회의 전임의에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