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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맛은 마블링 아닌 숙성이 좌우

에디터 김련옥 | 글 =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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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쇠고기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마블링이 잘 된, 그러니까 살코기 사이에 지방이 골고루 박힌 쇠고기가 높은 등급을 받는 제도다. 1990년대 중반 이 등급제가 시작될 때부터 이게 정상적인 쇠고기 섭식 방법은 아니다 싶었다.

"소는 원래 풀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위가 4개나 있고 되새김질을 한다. 풀을 먹는 소는 마블링이 생기지 않는다. 마블링이 생기게 하려면 곡물을 먹여야 한다. 소에게 적당한 곡물은 괜찮지만 마블링 생산을 위한 과다한 곡물은 독일 수 있다. 그렇게 키운 소의 고기를 두고 맛있다 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주위에 던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마블링 맛있잖아. 말 만들기 하지 마"였다. 2000년대 들어 신대륙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소 사육 문제를 지적하는 저작물들이 번역돼 나왔다. 그러나 이는 신대륙의 문제, 지구 환경의 문제로만 봤지 한반도의 한우 문제로까지 확대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확대를 방해하는 세력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우 고기의 대외 경쟁력이 마블링에 있다고 보고 이런 홍보에 집중했으며, 언론 또한 아무 비판 없이 따랐다. 특히 방송은 기름이 촘촘히 박힌 쇠고기를 보여주며 "최고예요"를 외쳐댔다. 그 와중에 마블링 문제를 지적하면 '그건 네 입맛이고'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때 생각한 것이 '아, 우리나라 사람은 쇠고기 맛을 제대로 본 적이 없구나' 였다. 당시 고급 호텔에서는 수입 숙성육을 쓰고 있었으며, 그 고기에는 마블링이 없었다. 붉은 살코기의 짙은 육향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극히 적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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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먹을 때 아직도 마블링 타령을 한다면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먹자.
숙성의 두 가지 방법,
웨트 에이징(Wet Aging)과 드라이 에이징(Dry Aging)

그때 혹시나 하고 한우 숙성육을 찾아봤다. 1990년대 말 유일하게 '천현한우'(경기도 광주 소재)가 있었다. 천현한우의 숙성육은 확연히 맛있었다. 나는 마블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숙성에 있다고 봤고, 이를 틈나는 대로 알렸다.

2010년대에 들어 숙성육이 차츰 번지기 시작했고, 최근 언론에서 마블링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방송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뤄주고 있다. 마블링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티핑포인트에 이른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머지않아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해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세대 후면 붉은 살코기를 앞에 두고 아마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옛날에 말야, 기름이 잔뜩 낀 쇠고기를 맛있다고 먹은 적이 있었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하하." 쇠고기를 0~4℃에서 보관하면 카텝신이란 효소가 작용해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새로운 맛을 더하게 되며, 소화가 잘 되는 고기로 바뀐다. 이를 숙성이라 한다.

고기의 숙성은 크게 웨트 에이징과 드라이 에이징 두 방식이 있다. 앞에 소개한 천현한우는 웨트 에이징 방식을 쓴다. 웨트 에이징은 쇠고기를 진공포장해 숙성하고, 드라이 에이징은 어떠한 포장도 없이 쇠고기가 공기에 노출돼 있는 상태에서 숙성을 한다. 웨트 에이징은 진공 포장으로 외부와 차단돼 있으니 다소 단순한 숙성 방법이라면, 드라이 에이징은 쇠고기가 공기 중에 노출돼 있는 상태이므로 관리가 까다롭다.

드라이 에이징은 예부터 쇠고기를 많이 먹는 유럽인에 의해 개발된 방법이다. 쇠고기 덩어리를 걸어놓기만 해도 숙성되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적용되는 숙성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칫 부패균이 붙으면 쇠고기가 상해 먹을 수 없게 되니 유럽인들은 숙성의 조건을 하나하나 찾아 체계화했다.




숙성육으로 쇠고기 본연의 맛을 명확히 느끼다
우리나라에서 드라이 에이징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곳은 충남 부여의 '서동한우'다. 서동한우 유인신 대표는 어디에서도 드라이 에이징 기술을 배운 적이 없다. 쇠고기를 숙성하면 맛있어진다는 말만 듣고 이런저런 방법을 혼자서 궁리하고 실행해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쇠고기 덩어리의 크기, 온도와 습도 조절 방법, 숙성고 내 쇠고기 거는 높이와 간격, 숙성 기간 등은 오롯이 그만의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다. 서동한우의 숙성고에 가까이 가면 독특한 발효 냄새가 코를 때린다.

달큰한 유지방 냄새에 고소한 치즈 냄새가 겹쳐졌다. 보통의 쇠고기 저장고에서 맡을 수 있는 비릿한 고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유 대표는 이 현상을 두고 "그냥 드라이 에이징이라 하지 말고 '발효숙성'이라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동의했다.

서동한우에서는 고기 부위에 따라 3주에서 10주간 숙성 한다. 웨트 에이징과 달리 숙성 기간에 수분이 빠져나가 중량이 줄고 겉면이 마른 것은 잘라 버려야 한다. 게다가 숙성고의 온도와 습도 조절을 위해 여러 기계를 계속 가동해야 하니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서동한우는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동한우의 발효숙성육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쇠고기임이 분명하다. 5㎝ 넘게 두툼하게 발라 강한 불에 겉면을 슬쩍 익히고 속살은 촉촉한 채로 큼직하게 썰어 한 입 크게 씹으면 쇠고기의 본디 맛을 명확히 느낄 수 있다. 천현한우, 서동한우 외에도 숙성육을 내는 업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전북 정읍의 '행복한우'도 웨트 에이징한 숙성육을 내는데 천현한우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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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황교익

국내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
농민신문사에서 10여 년간 일하며 농산물과 향토음식을 취재했다. 2002년부터 향토지적재산본부에서 지역 특산물 취재 및 발굴, 브랜드 개발 연구를 했다. 저서로는 <서울을 먹다> <한국음식문화 박물지> <미각의 제국> 등이 있으며, 현재 tvN <수요미식회>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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