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의 고장’ 유자와·아키타로 떠나는 낭만여행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쿄 하네다공항까지 간 뒤, 그곳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니가타현의 유자와(湯澤)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믿음직한 가이드 이철구씨와 헬스조선 나주리 과장의 인사가 있었다. 나도 간단히 인사를 했다. “요즘엔 어딜 가면 선배 취급을 많이 받는데, 여기서는 여러분을 인생 선배로 편하게 모실 소설가 서진입니다.”
당초 신청한 사람은 스무 명이 훨씬 넘었는데, 최종 참가자는 열두 분…. 눈을 많이 구경하려면 1~2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서로 알고 있는 노부부가 두 쌍, 티격태격하지만 사이좋은 중년 커플, 친구 사이인 여성두 분, 신혼여행이라고 오해를 살 만큼 사이좋은 중년 커플, 그리고 각각 혼자 온 남녀 여행객이 있었다. 도쿄는 맑고 따뜻했지만 우리가 향하는 유자와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요시라는 작은 마을의 휴게소에 들러 라멘 등으로 점심을 먹고 버스는 일본의 서북쪽을 향해 달렸다. 도시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멀리서 높은 산과 흐린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멈춰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은 유명한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국경’은 나라의 국경이 아니라 군마현과 니가타현의 접경지를 말한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터널을 지나가지만 우리는 11km의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갔다. 신칸센을 타고 터널을 통과하는 것보다 훨씬 소설의 분위기와 가깝다고 가이드가 설명해줬다.
터널을 통과하자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터널 전과 후가 마치 다른 세상이라고나 할까? 유자와에 다다르자 집과 스키장이 보였다. 30cm는 족히 쌓인 지붕 위의 눈이 신기했다. 눈이 더 내리면 길 양쪽으로 치운 눈이 1층 높이 정도의 눈벽을 만든다. 이 동네 사람들은 겨울이 힘들겠지만 관광객에게는 눈요깃거리다. 유자와는 스키장과 온천으로 유명하지만, 최근 일본의 경기침체로 스키장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다카한 료칸에 체크인을 했다. 이 료칸은 야스나리가 《설국》을 집필할 때 머물던 곳이다. 2층에는 《설국》 관련 전시실이 있고, 《설국》영화를 비디오룸에서 상영해 준다. 아담하고 정겨운 다다미방은 1960년대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했다. 창문을 열면 눈 내린 산 전체가 나를 삼킬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다미방 위에서 창밖을 보면서 뒹굴고 싶을 정도였다.
그날 밤 다다미방에 앉아 ‘소녀’가 쓴 글을 읽었다. 《설국》에 어울리는 밤이었다.
달리는 기차에서 눈 내리는 바다를 보다
다카한 료칸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니가타로 가는 길에 평원에 쌓인 눈을 봤다. 하얀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예뻤지만, 집과 주차해 놓은 차 위에 쌓인 눈을 보니 이런 곳에 사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가타현의 최대 지주던 이토가(家)의 대저택을 방문했다. 느티나무로 만든 대현관과 아름다운 정원, 길이 30m의 삼나무 도리가 있는 다실 등 이토가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화려한 건축양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예전에 된장을 담아 저장해 놓던 곳이 식당으로 바뀌었는데, 그곳의 점심식사가 꿀맛이었다. 아직까지 8대손이 생존해 있는데 5, 6대손이 세계여행을 다니며 수집한 물건이 많았다. 100년 전의 세계여행은 어땠을까? 요즘에는 비행기만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때는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건너 낯선 대륙을 여행했을 것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더욱 정취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인들도 동양에서 온 여행객이 무척 신기했을 것 같다.
원래 계획은 니가타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키타로 기차를 타고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돌풍이 예상되어 기차가 운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일정을 변경해서 니가타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아키타로 기차여행을 했다. 돌발상황에 코디네이터가 영민하게 대처했다. 하마터면 운행하지 않는 기차 안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뻔했다.
기차는 육지를 통과해서 동해안으로 달렸다. 어둑해지는 바다로 눈이 쏟아졌다. 세 시간쯤 달려 아키타역에 도착했다. 시내 근처에서 대게 요리로 저녁을 먹었다. 마침 결혼 60주년 커플이 있어 자연스럽게 축하 분위기도 겸했다. 저녁을 먹고 미야코 와스레(都わすれ) 료칸으로 향했다. 아키타시에서 차로 1시간 20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비포장 도로를 8km나 달려야 하는 산속에 살포시 자리 잡고 있는 료칸에 도착하고 나서야 ‘도시는 잊어 주세요’라는 료칸 이름이 이해됐다.
“도시는 잊으세요”… 미야코와스레의 추억
“요즘엔 장례식에 가기 싫어져요.”
올해 여든 살이 된다는 박 선생님이 온천 목욕탕에서 말했다. 이번 여행 중에는 밤에도 목욕, 아침에도 당연한 듯이 목욕이다. 장례식에 가기 싫은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했다.
“잠이 잘 안 오면 아름다웠던 시절을 생각한답니다.”
“그게 언제쯤입니까?"
“십대 초중반이지요. 그때 함께 놀던 친구들은 대부분 저세상으로 가버렸지요. 고향이 강원도라 눈이 많이 왔어요. 창밖의 설경이 멋있긴 하지만 늘 봐왔던 것이라 그리 감흥은 없네요. 눈이 많이 올 때는 동네에 불씨가 하나밖에 없는 적도 있었습니다. 옆집과의 길이 눈으로 막혀있어 새끼를 미리 이어 놓은 다음에 둥글게 둘러서 길을 만들었지요, 허허.”
나에게는 상상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는 사이좋게 부인과 여행을 왔지만 더이상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들여다볼 기회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아서다. 내 나이를 물어봐서, 딱 마흔이라고 답해 줬다. 박 선생님의 딱 절반이다.
“마흔, 정말 좋은 나이지요.”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좀 늦은 거 아닌가요?”
말도 안 된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10년을 배우면 도가 트는데 여든 살까지 네 번은 새롭게 시작하겠네요. 저는 이제 그냥 물 흐르듯이 살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는 “정신은 점점 성숙하기 때문에 몸만 젊어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문제란다. 나는 스무 살로 돌아가면 무얼 할 수 있을까? 훌륭한 일을 하기보다는 천하의 바람둥이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말했더니 ‘후훗’ 웃으셨다.
어그적거리면서 버스에 오른 보람이 있었다. 근처에 있는 다이노유 온천의 노천탕에 갔는데 풍경이 장관이었다. 눈과 바람이 적절히 섞여 내리고 바로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하반신은 따뜻한 물에 담그고 있는데 눈이 머리로 떨어지니 신선놀음하는 기분이었다. 어르신들은 실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노천탕에서 목욕하면 신체 나이가 젊어질 수도 있다고 박선생님에게 권했지만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점심식사로 마로 빚은 경단이 들어간 된장국과 산천어 구이를 먹었다. 캠핑하는 것처럼 숯불로 굽고 그 위에 된장국을 올려놓았다. 눈이 잠시 그쳐서 창밖에는 하얀 눈이 나뭇가지에 쌓여 있었다. 지난밤에는 결혼 60주년 커플이, 이번에는 가장 젊은 40대 후반 커플이 청주를 사서 여행객에게 서비스했다. 아키타는 곡창 지역이라 예로부터 유명한주조장이 있었다. 청주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에서 청주의 다양한 맛에 눈 뜬 것 같다. 아키타의 흰 눈처럼 알싸하고 부드럽다. 마시고 나면 몸이 따뜻해진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을 때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거센 바람도 잦아 들어 사뿐사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개인 노천탕에서 그 풍경을 감상하다 바깥으로 산책을 나갔다. 료칸 입구에서는 제설차가 분주히 길을 트는 중이었다. 혼자 밖으로 나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을 서걱서걱 소리내며 걸었다. 앞서 산책을 나간 서너 명은 료칸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료칸 진 입구를 돌아 저수지 쪽으로 향했다. 사진 찍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나뭇가지에 온통 눈꽃이 피어 있었다.
아침을 먹고 정든 료칸을 떠났다. 직원들은 끝까지 손을 흔들면서 배웅해 주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카쿠노다테에서 아오야기가(家)의 사무라이 콜렉션을 감상하고 이나니와 우동으로 점심을 먹었다. 아키타공항에는 국제선 노선이 인천으로 가는 대한항공 딱 하나뿐이라고 했다. 어쩐지 다시 한 번 아키타를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늦은 봄에는 눈과 신록을 동시에 구경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일행과 아쉽지만 작별을 했다. 박 선생님과는 사진을 찍고 연락처도 교환했다. 시를 봐 달라고 부탁한 어르신에게는 청주 한 병을 선물받았다. 언제 다시 뵐지 알 수 없지만 함께 여행한 모든 분들은 하얗고 눈부시고 따뜻하게 한 해를 마감했을 거라고 믿는다.
소설가. 197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하트브레이크 호텔’. 여행 에세이 ‘뉴욕, 비밀스러운 도시’,‘청춘 동남아’ 등을 썼다. 제 12 회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 여름엔 제주, 겨울엔 하와이나 동남아에 머물면서 글을 쓰고 있다. http://3nightson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