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추억을 찾아 떠난 눈의 나라

한 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해를 넘기는 아쉬움이 점점 더 절실해지는 나이이기에 좋은 추억 하나 더 만들고 싶었다. 2014년의 마무리는 온 세상이 하얀 눈에 덮인 일본 니가타와 아키타의 은빛 설국을 찾기로 하고, 헬스조선의 힐링여행을 신청했다. 

예년에 비해 추위가 일찍 닥친 2014년 12월15일 새벽. 김포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 하니 오전 11시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마중 나온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도쿄와 군마 현을 거쳐 니가타 현의 최남단에 위치한 에치고 유자와 온천지대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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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일본 유자와의 설경. (사진=헬스조선DB)
온천지가 하얀 눈에 덮인 고요하고 아늑한 마을. 이곳이 바로 ‘설국(雪國)’이다! 이 지역은 북동쪽으로는 바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해와 접해 있고, 동남쪽으로는 연봉으로 가로 막혀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겨울이면 산을 넘지 못한 바다의 수증기가 엄청난 양의 눈이 되어 대지를 감싸 안는다. 2~4m에 달하는 눈이 쌓이는 것은 예사다. 날이 그리 춥지 않아도 쌓인 눈이 워낙 많아 잘 녹지 않아 설국이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엄청난 눈과 따뜻한 온천은 한 편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바로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설국》이다. 유자와는 소설의 제목만큼 투명하고 영롱한 정경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의 무대로 삼고, 직접 머물며 소설을 썼던 ‘다카한 료칸’에 첫날 여장을 풀었다. 여관의 시설은 대단치 않지만 지금까지도 대(代)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니 그도 대단하다. 

가와바타 씨가 머물고 집필활동을 하던 방은 2층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전시장으로 꾸민 그 방을 둘러보니 어디선가 사각사각 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쪽 벽이 모두 창으로 되어 있어 삼나무 숲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창 앞에는 책상과 화장대가 놓여 있고 방 가운데 ‘이로리(불을 피워 놓은 붙박이 화로)’와 천장에 걸어 놓은 옛 에도시대 주전자 그리고 사진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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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 《설국》을 집필했던 다카한 료칸의 객실은 전시실로 꾸며놓았다. (사진=헬스조선DB)
첫 날 저녁은 고급 가이세키 요리로 눈과 입이 즐거웠다. 헬스조선의 힐링멘토로 동행한 서진 소설가와 일행이 모두 모여 《설국》에 대해 조촐한 좌담회를 열었다. 소설의 여운이 사라질까 아쉬워 ‘설국’ 영화 감상도 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몸을 담갔을 온천에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으로 첫 날 일정을 마쳤다.  


국경의 긴 터널을 통과하다

다음 날 아침은 니가타를 향해 출발했다. 니가타로 가려면 군마 현과 니가타 현을 가로막은 아주 험한 에치코 산맥을 통과해야 한다. 다행히도 일본에서도 제일 긴 13km의 터널이 있어 한층 수월하다고 한다. 소설 《설국》의 인상적인 첫 구절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니 설국이었다”로 시작한다. 비록 같은 터널은 아니지만, 터널을 빠져나오자 펼쳐지는 환상적인 설국 풍경을  직접 보니 소설의 문장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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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와에서 니가타로 향하는 길. 어디를 둘러봐도 새 하얀 눈의 나라다. (사진=헬스조선DB)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북방 문화 박물관’. 이곳은 이토 家의 대저택이다. 이토 가문은 에도시대 중기에 농업으로 성공해 막대한 부를 쌓고, 메이지시대를 거쳐 쇼와시대 현 내의 제일 부호로 명성을 떨쳤다. 이 크고 화려한 저택은 메이지 15년에 건축을 시작해 8년 만에 완성됐다. 65개의 방 개수가 말해주듯 주거시설로는 일본 내에서 제일 큰 저택이다. 부호의 저택을 유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쇼와 21년인 1946년 ‘사적문화진흥회’란 법인을 설립해 기증했다고 한다. 1949년 북방 문화 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꿨고, 2000년에는 유형문화재로 등록됐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은 옛 모습이 그대로 건물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토 가문의 생활상이 곳곳에 스며있어 둘러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우리 일행은 관람 후 박물관 내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소개하는 사람 말로는 식당이 옛 이토 가문의 부엌에 딸린 광방 구석이었단다.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뜻하지 않은 즐거움, 미야코와스레

이번 여행의 원래 일정은 북방 문화 박물관을 나와서 하꾸산 공원이 있는 니가타 시내에서 여유롭게 오후 시간을 보낸 뒤 니가타 시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악천후가 예상돼 여차하면 아키타로 향하는 기차가 운행하지 못할 것이란 소식이 들렸다. 어쩔 수 없이 하루 먼저 아키타로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갑작스런 스케줄 변경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이끄는 인솔자가 일사불란하게 일처리를 해내서 무사히 밤기차에 몸을 실었다. 안타깝게도 밤기차의 3시간 30분이란 시간은, 동해의 풍광과 설경을 집어 삼켜버렸다. 여행이란 계획대로 되지 않음조차 즐길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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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와 아키타 현을 잇는 기차, 특급 이나호. (사진=헬스조선DB)
깊은 산속 다자와 호숫가에 있는 ‘미야코와스레’ 료칸은 고급 별장 같은 분위기다. 10개 밖에 없는 객실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름도 남달랐다. 1호실, 2호실 대신 낭만적인 단어로 이름 지었다. 우리 부부가 묵은 방 이름은 ‘고모래비’였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란다. 남쪽으로 난 테라스 앞에는 산과 호수가 펼쳐지고, 단독 노천탕이 딸려 있었다. 아침 개별 노천탕에 앉아 삼나무 숲 설경과 맑은 호수를 감상할 생각에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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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코와쓰레의 고급스러운 내부 모습. (사진=헬스조선DB)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17세기 에도시대에 형성된 사무라이 마을을 들러,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비밀 온천으로 발길을 옮겼다.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츠루노유’ 온천 마을이 목적지다. 츠루노유 노천탕에서 이색적인 온천욕을 즐겼다. 사냥꾼이 상처 입은 학이 이 온천탕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보고 온천의 이름을 ‘츠루노유’로 지었다 한다. 해가 서산에 기울 때까지 한 마리 학이 되어 온천에 몸을 담갔다.




드디어 마지막 날. 아침 일찍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신대호 설경 산책을 했다. 눈과 마음에 잊지 못할 설국을 담기 위해서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새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깊게 새기며, 설국에서의 낭만 여행을 마무리했다.  


* 글을 쓴 황금주 씨는 지난해 12월 헬스조선의 ‘설국으로 떠나는 낭만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1월 5일과 23일에 걸쳐 총 세 차례 진행됐다. 2015년 12월에도 소설 《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와 아키타현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전화 1544-1984(헬스조선 여행힐링사업부)로 문의하거나 홈페이지(tour.health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황금주(주부) | 사진 헬스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