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의 음악과 함께하는 건강 산책 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나단조 작품 64 ‘비창’

하지만 그는 집에서 친구와 친지들의 문병을 받았고 가족과 의사, 사제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또 콜레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은 아연으로 된 관으로 밀봉해 바로 매장해야 하는데 차이코프스키 시신은 당시 관습대로 관에 넣은 채 이틀이나 공개되어 조문객을 맞았다.

차이코프스키와 조카의 열애를 알아챈 투르모프 공작이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 사실을 당시 부검찰총장인 야코비에게 알린다.
차이코프스키와 법률학교 동급생인 야코비는 학교의 명예와 차이코프스키의 명성을 지켜 주기 위해 그 고발장을 황제에게 제출하지 않고 명예재판을 소집해 차이코프스키를 소환한다. 명예재판에 소환된 차이코프스키는 친구들에게 사형선고를받은 다음날 보내온 독약을 마시고 사망했다는 설이다.
두 번째 설은 자살설이다.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으며 교향곡 제6번 ‘비창’까지 헌정한 조카 보비크와의 동성애 사실이 드러나자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런 유년기의 영향은 훗날 그의 음악에도 드러나 동시대 작곡가들 모임인 러시아 5인조와 비교해 서구적인 음악을 만든 배경이 되었다. 그의 음악 인생 내내 러시아적인 것과 유럽의 사조를 반복하며 실험하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한편 그는 어머니 쪽의 신경쇠약과 우울증이라는 유산도 함께 물려받았다. 한편 심리학자들은 그의 동성애적 경향이 아버지의 부재(不在)로 보고 있다. 일 때문에 자식들과 떨어져 지내는 일이 잦았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타인 같은 존재였고, 그로 인해 남성으로 성숙되지 못한 차이 코프스키의 자아가 바로 동성애적 경향의 시작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강요로 법률학교에 들어가면서 당시 학교에 만연하던 동성애에 빠져들고 열네 살 때 어머니가 콜레라로 사망하면서 그 경향이 심화된다.

인생에의 공포, 절망, 패배 등 모든 인생을 부정하는 정서를 나타내고 있으나, 표제악적 내용은 결코 특정한 사건이나 개인의 감정은 묘사하지 않았다. 인간이 갖는 비극의 정서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탄식과 절망을 담고 있는 이 교향곡의 ‘비창’이라는 부제는 작곡자 자신이 붙인 것이다. 이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차이코프스키의 편지에서 드러난다. 1889년 어느 날 그는 “나의 창작의 최후를 장식할 장중한 교향곡을 작곡하려고 한다”고 글을 썼다.

이 표제는 완전히 주관적이다. 나는 여행 도중에 이 표제와 악상을 생각하면서 방황하고, 눈물을 수없이 흘렸다. 놀라운 정열로 제1악장을 단 4일 만에 마쳤고, 다른 악장의 구상도 끝났으며 제3악장의 절반이 빠른 속도로 완성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작곡한 어떤 음악보다도 이 교향곡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의 최후의 교향곡이 완성을 본 것과 그리고 진혼곡과도 비슷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하는 느낌은 나로서는 적지 않게 당혹케 된다”라고 조카에게 글을 남겼다. 이 작품은 애처로운 정서를 추상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선율의 아름다움과 균형 잡힌 형식의 관현악 처리가 이 교향곡을 더욱 인상적으로 보이게 한다.

오재원
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국제이사. 한양대 의대 ‘키론오케스트라’ 지도교수이며, ‘오재원 교수의 오페라 이야기’ 블로그를 운영한다. 여러 매체에 클래식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고전음악의 이해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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