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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델만 제공

와파린은 혈액을 응고시키는 비타민K의 활동을 막아 혈액을 묽게 만드는 혈전 방지제다. 지난 60년간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혈전 방지제로 자리매김했지만 부작용 사례는 끊임없이 보고돼왔다. 와파린의 복용량을 조금만 줄이거나 늘려도 뇌졸중이나 뇌출혈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와파린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항응고제(NOAC)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약물들의 부작용은 고령 환자의 신장 기능의 저하를 초래하거나, 복용 후 약간의 속 쓰림을 유발하는 정도다. 약물의 효과를 낮추는 시금치·상추·깻잎 등 비타민K 식품을 피해야 했던 와파린과 달리, 음식을 가려 먹지 않아도 된다.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하면 돼 간편하다는 이점도 있다. 우리나라에 출시된 새로운 항응고제에는 자렐토(바이엘), 프라닥사(베링거인겔하임), 엘리퀴스(BMS)가 있다.

지난 11월 한국을 찾은 독일 하이더베르그 대학 베르너 하케 교수(現 독일 뇌졸중학회 회장)<사진>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항응고제는 와파린에 비해 뇌출혈 위험을 훨씬 줄일 수 있다"며 "뇌출혈 유발 인자인 고혈압이 아시아인에게 유독 잘 생기기 때문에 한국 역시 와파린보다 새로운 항응고제를 쓰는 게 맞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와파린의 효능이 듣지 않는 사람만 새로운 항응고제를 쓸 수 있도록 보험 적용이 되어 있다.이에 덧붙여, 베르너 하케 교수는 "임상 시험에서 와파린과 새로운 항응고제군을 비교 분석한 결과, 새로운 항응고제군이 뇌졸중 예방 측면에서는 와파린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안전한 정도이지만, 뇌출혈 예방 측면에서는 와파린보다 훨씬 우수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항응고제, 혈액 속 농도 측정 필요 없어
와파린은 복용하고 나서 주기적으로 채혈을 해 피가 얼마나 응고되고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일정 시간 내에 혈액 속 약의 농도가 70% 이상으로 유지되면 '항응고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를 INR 검사라 하는데, INR 수치가 높으면 출혈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고, INR 수치가 낮으면 혈전 생성 위험이 높아 뇌졸중 발병 위험이 커져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항응고제는 이러한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 베르너 하케 교수는 "새로운 항응고제는 혈액 응고 최종 단계에서 작용하는 '트롬빈'이라는 물질의 생성을 직접 억제한다"며 "약을 한 번만 먹어도 이 경로가 차단되기 때문에 와파린처럼 여러 가지 검사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독일 심방세동 환자, 대부분 새로운 항응고제 써
심장이 빠르거나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 환자는 와파린 사용을 더욱 주의해야 한다. 심방세동이 있으면 뇌졸중 위험이 5~20배 더 높다. 여기에 뇌졸중·뇌출혈 부작용이 있는 와파린까지 복용하면 질환의 발생 위험이 더 커진다. 베르너 하케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독일에서 심방세동으로 초진 받는 환자의 대다수는 새로운 항응고제를 처방받고 있다"며 "와파린 사용량을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무조건적 와파린 사용,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와파린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에 한 해 항응고제를 처방받게 돼 있는 우리나라 제도에 대해, 베르너 하케교수는 "차 사고가 난 후 에어백을 설치할 수 있게 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지금 제도대로라면 와파린을 사용하다가 뇌졸중·뇌출혈이 발생한 다음에야 새로운 항응고제를 쓰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베르너 하케 교수는 "약제 비용 발생 때문에 정부가 새로운 항응고제 보험 적용을 안 해주는 것"이라며 "이는 뇌졸중으로 입원하는 환자들에게 발생하는 비용은 고려하지 않은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