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라이프

‘한 지붕 5가구 13식구’의 가족 외식(外食) 수칙 “집에서 8km 밖에 있는 식당을 찾자”

기고자: 이근후 | /월간헬스조선 11월호(138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이미지

(일러스트=유사라)

일가를 이룬 4남매 가족과 한 지붕 아래 12년째 살고 있다고 하면, 모두 대단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이런 시선에는 ‘분명히 가족 구성원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권리를 주장함과 동시에 협력하면서 행복하고 진정한 ‘가족’으로 살고 있다.

그 비결 중 하나가 지난호에 소개한 ‘예띠의 집 헌장’이다. 우리 가족공동체의 ‘헌법’ 격인데, 핵심은 상호존중과 불간섭주의다. 여기에 우리 집의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수칙’이다. 예띠의 집헌장이 ‘정신’을 강조한 것이라면, 수칙은 구체적인 행동강령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인터폰이나 예고 없이 서로의 집에 들어가지 않기, 각자의 집 비밀번호는 서로에게 공개하지 않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식사에 관한 수칙도 있다. 우리 부부는 평소 아침 식사를 가볍게 해결하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점심은 직원들과 함께 외식으로 해결한다. 문제는 저녁이다. 퇴근 후 힘든 몸으로 저녁식사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저녁 식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큰아들 집에서 해결한다. 밖에서 회의가 있거나 누구를 만나는 일이 있으면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하지 못한다는 연락만 미리 하면 된다.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식사는 큰아들을 제외한 형제들이 책임을 진다. 3남매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저녁 식사를 차려 준다. 큰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은 나와 한 달에 한 번 정도 식사하기 위해 만나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저녁 식사를 자녀들과 함께 하는 것이니 행복하고 편하다. 우선 저녁 식사 걱정을 안 해서 좋고, 저녁마다 돌아가면서 자녀와 손주들을 볼 수 있어 더 좋다. 저녁 식사만 뚝딱 해치우고나올 것인가, 조금 더 눌러 앉아서 손주들과 노닥거릴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이런 수칙이 있다고 하면, “가족 간에 너무 각박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 식사 해결해 드리는 것을 무슨 순번을 정해서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매끼 누군가의 식사를 차린다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고, 우리는 이를 아주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갈등과 분쟁 요소, ‘나만 희생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없으니 더 돈독해진다.

대신 우리는 외식(外食) 수칙을 한 가지 정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가족모두 외식을 하고, 5가구 13식구 모두가 외식을 나갈 때는 반드시 집에서 8km 이상 떨어진 식당을 잡자’는 것이다. 식당은 어떤 식당이라도 좋다. 내가 옵션으로 걸어 둔 8km란 거리는 실제 8km라는 거리가 규정이 아니다. 온 가족이 차를 타고 가능 한 멀리 갈수 있는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외식을 위해 이동하는 차 안의 가족들은 모두가 화목하고 기쁘다. 어떤 음식을 먹게 될 것인지 함께 기대하면서 대화하는 시간은 길수록 좋다. 5가구가 각자 차를 갖고 가면 의미가 없겠으나 우리 내외는 차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식구들과 함께 차 타고 가면서 많은 얘기를 나눈다.

가족 모두 동의했다. 가족 모두 검색을 잘 이용하니 8km 밖의 맛집을 잘 찾아낸다. 내가 어디를 가자고 제안하기보다 그들이 검색해서 찾아낸 식당으로 가면 신선한 경험도 된다. 우리 부부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가 묻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손주들이 즐겨 먹는 음식에 동참하고 싶어서 이날만은 식당 선택을 일임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젊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접할 수 없지 않은가. 어쨌든 젊은 사람이나 어린 손주들의 입맛에 동참해 보는 일은 나쁘지 않다. 그들의 입맛을 통해 소통도 잘 된다. 손주들이 사용하는 일상용어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 자리는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도전을 받는 자리도 된다. 가족 모두가 식사하는 자리라고 하면 나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즐거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정작 식사할 때 손주들은 모두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엄지손가락으로 날렵하게 음식을 찍고 있다. 셀프 카메라를 찍으면서 혼자 웃기도 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열심히메신저를 보내고 답장이 금방 오지 않으면 불안해하기도 한다. 이제 밥상머리 교육이란 끝난 것인가. 이제 나도 손주들과의 소통을 위해 고집스럽게 사지 않던 스마트폰을 사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곁에서 그런 손자녀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마치 재롱을 보는 것 마냥 즐겁다.





이미지



이근후 교수

이화여대 교수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을 가르쳤다. 지금은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운영하며, 청소년 성상담, 부모 교육 등을 펼치고 있다.








�ъ뒪議곗꽑 �쒕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