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진실을 말하게 하는 주사 '아미탈요법'
글 박영민
입력 2014/10/16 10:37
신체를 지배하는 무의식 속 상처를 꺼내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진실을 말하게 하는 주사라면서 ‘아미탈요법’을 관심 있게 다뤘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신기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이 주사 한 방만 맞으면 환자가 기억하기를 거부했던 사실,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에 대한 진실을 술술 털어놓으니 말이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성인기에 나타난 정신적 문제들이 결국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다. 그런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강력한 억압이나 두려움 때문에 쉽게 트라우마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다양한 면담 기법을 개발해 환자에게 적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유연상기법이다.
긴 의자에 편히 누워 이완된 상태로 면담을 진행하는 방법인데, 이는 환자가 갖고 있는 강력한 억압을 풀어내 무의식까지 접근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아미탈 인터뷰도 같은 맥락이다. 아미탈 인터뷰가 임상에 도입된 것은 무려 100년도 넘은 일이다. 1904년 블렉웬이라는 의사가 정신질환자들에게 아모바비탈 소듐이라는 약물을 주사한 뒤 면담해서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아미탈 인터뷰는 증상은 지속되는데 환자 스스로의 정신적 억압이 심해 증상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 환자도 자신의 갈등 요인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 시행한다. ‘아미탈 소듐’이라는 진정 및 마취 효과를 가진 주사제를 놓아 환자를 수면이나 최면 유사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최면 유사 상태에 빠진 환자들은 방어기제가 풀려 자신의 갈등이나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수면내시경을 시행할 때 자신은 기억을 못하지만 보호자나 의료진이 볼 때 환자가 잠꼬대처럼 말하는 경우다. 비몽사몽 간에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환자에게 질문을 하면 어떨까? 이런 상태라면 모르는 사람이 질문하더라도 수월하게 답을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미탈 인터뷰다.
이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와 증상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환자가 그동안 숨겨 왔던 것을 ‘말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미 큰 치유의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정신건강의학상으로는 ‘토킹 큐어(talking cure)’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아미탈과 같은 바비트레이트 계열의 약물보다 더 안전하다고 알려진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을 많이 사용한다. 바비트레이트를 과량 투여하면호흡 저하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미탈 인터뷰에도 한계는 있다. 사람마다 주량이 다르듯, 약물에 대한 반응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많은 양을 주사해도 전혀 최면이나 수면 유사 상태에 빠지지 않아 면담이 진행되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은 소량만 주어도 잠에 빠져들어 전혀 면담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환자의 면담내용이 현실적인 내용인지, 환자의 소망이나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따라서 아미탈 인터뷰는 드라마에서처럼 신비롭고 극적인 기법이 더 이상 아니기 때문에 제한된 범위에서만 이용되고 있다. 물론 과거 전쟁 포로들이나 적대국 첩보원들을 대상으로 이런 약물을 이용해 정보를 캐내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아미탈보다 더 앞선 면담기법이나 심리검사기법이 발전돼 환자의 심리적 갈등을 더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생물정신의학의 발전으로 심리적인 원인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더라도 약물 치료, 자기장 치료, 전기 치료 등으로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게 돼 점점 아미탈 인터뷰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아미탈 인터뷰가 ‘트라우마나 심리적 갈등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확인시켜 준 의미 있는 치료 방법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를 치유로 연결시킨 ‘전설적인’ 면담 기법임에도 분명하다.
아미탈요법에 대한 자료를 찾고 글을 쓰다 보니 트라우마가 많은 요즘 세상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프로이트는 ‘평생에 걸쳐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라했다. 생후 6세까지의 경험’이 전 일생에 걸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 학대 같은 트라우마를 만났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우울증, 조울병,불안 장애, 조현병 등 정신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고 보았다.
나 또한 우울증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어린 시절 지속적으로 신체적ㆍ정서적ㆍ성적 학대나 방치 등의 트라우마를 경험한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자살을 많이 생각하고, 실제 자살 시도도 많으며, 충동적인 성향과 심한 기분의 기복이 있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이는 트라우마가 뇌에 이상을 일으켜 기분을 조절하는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 시스템 자체를 고장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문득 과도한 선행학습, 세계에서 가장 적은 수면 시간,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이 트라우마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남는다. 행복한 기억이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데 말이다.
“아미탈 요법은 의사가 환자의 증상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환자는 자신의 상처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치유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박영민
인제의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수면의학회, 우울조울병학회, 조현병학회 임원 등을 지내면서 우울증 약물치료와 조울병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10월호(118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