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밥은 곧 보약’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밥에 어떤 영양소가 들어 있는지 가늠하는 말이 아니다. 밥을 짓는 데 들어가는 정성, 밥 그 자체에 담긴 따뜻함과 건강함까지 의미한다. 외식이 잦은 현대인은 밥을 주로 사 먹다 보니 ‘밥 정성’이 퇴색된 면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몸에 좋은 재료를 넣어 정성껏 지은 ‘약밥’을 보면 건강함이 느껴진다. 올 가을에는 약밥으로 건강과 정을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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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살림 요리)

약밥은 왜 검은색일까?

최근에는 다양한 종류의 약밥이 많이 나와 있지만, 예전에 흔히 먹던 약밥은 주로 검은색이었다. 밥 지을 때 검은 설탕을 넣어 밥 색깔을 검게 했다. 이는 단순히 밥을 달콤하게 만들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유가 있다. 약밥의 기원인 《삼국유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던 중 까마귀가 날아와 봉투를 떨어뜨리고 갔다. 두 가지 봉투가 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 ‘당장 환궁하여 내전 별실에 있는 금갑(쇠붙이로 만든 갑옷)을 쏘라’라고 써 있었다. 급히 환궁해 내전 별실을 가보니 역모를 꾀하던 왕비와 신하가 있었고, 바로 잡혔다.

소지왕은 역모를 예방하도록 도와준 까마귀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까마귀를 닮은 검은 색을 띤 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또 그 밥은 까마귀에게 먹이로 주었다고한다.




[More tip]

밥 맛있게 짓는 법

쌀 씻을 때 쌀겨 냄새가 배지 않도록 빨리 헹군다. 쌀 표면의 맛있는 부분이나 영양소까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무르듯이 씻는다. 쌀불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면 쌀겨 냄새가 나고 밥알 모양도 뭉개져 밥맛이 떨어진다. 여름엔 30분, 봄·가을엔 한 시간, 겨울엔 두 시간 정도가 좋다. 어디에 밥을 하느냐도 중요하다. 국립중앙과학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무쇠솥›돌솥›압력솥›전기밥솥›냄비’순으로 밥맛이 좋다고 한다.


약밥의 종류

약밥은 밤, 대추, 잣 등 몸에 좋고 고소한 재료들을 잔뜩 넣어 지은 화려한 밥이라고만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재료를 섞어서 지은 밥은 모두 약밥이다. 조선시대 문헌을 살펴보면 우리 조상이 언제 어떤 종류의 약밥을 지어 먹으면서 건강을 지켰는지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 남아 있는 다양한 약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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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성 질환에 좋은 도라지밥(사진=농협중앙회 식사랑농사랑 추진위원회)
◇ 염증성 질환에 좋은 도라지밥

도라지밥은 흉년이 들었을 때 서민의 건강을 지켜 주는 대표적인 약밥이었다. 조선 현종 1년에 심한 기근이 들었는데, 이때 백성 구제를 위해 펴낸 서적《신간구황촬요》에 도라지밥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다. 도라지를 무르게 삶아 자루에 넣어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후 짓이겨 밥에 섞어 먹었다고 한다.

기근이 들어서 밥을 잘 못 먹으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다양한 염증성 질환이나 폐렴 등이 생기기 쉽다. 우리 조상은 항염증 효과가 있는 도라지밥을 통해 이런 문제를 피해간 것이다. 도라지밥 지을 때는 무를 함께 넣으면 좋다. 도라지의 아린 맛이 줄어들고 달콤해지면서 식감도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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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활한 배뇨·배변 위한 옥정반(사진=농협중앙회 인삼특작부)
◇ 원활한 배뇨·배변 위한 옥정반

멥쌀에 연근과 연꽃씨인 연밥을 넣어 지은 밥을 옥정반(玉井飯)이라고 한다. 조선후기에 우리전통음식 80여 가지를 재현해 정리한 《임원십육지》에 옥정반에 대한 기록이 있다. 멥쌀밥을 끓이다가 껍질을 벗겨 잘게 썬연근과 연밥을 넣어 밥을 짓는다. 연근은 달고 독이 없으며 토혈을 그치게 한다.

연밥은 맛이 쓰지만 급성위장염을 다스린다고 알려져 있다. 연근과 연밥은 특히 배설과 관련한 효능이 있다. 소변이 잘 안 나오거나 변비가 있는 경우 도움이 된다. 옥정반을 지을 때 비타민D가 풍부한 표고버섯을 함께 넣으면 뼈가 튼튼해져 겨울철 관절 건강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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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필수영양소 가득 감자밥(사진=한살림 요리)

◇ 밥에 필수영양소 가득 감자밥

멥쌀이 반쯤 익을 때 감자를 넣고 함께 쪄서 뜸을 들이면 감자밥이 된다. 19세기 조리서 《조선요리제법》에 따르면, 감자 껍질을 벗겨 도토리 크기로 썬 후 쌀에 섞어 밥을 짓는다. 이때 손가락 두 마디까지 물을 부으면 맛있는 감자밥이 된다.

감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구황작물로 꼽히는데, 건강 유지에 필요한 필수영양소가 들어 있는 ‘웰빙식품’이기 때문이다. 감자 한 덩어리에는 수분 75%, 녹말 13∼20%, 단백질 1.5∼2.6%, 무기질 0.6∼1%, 비타민C 10~30mg이 들어 있다. 감자에 들어 있는 비타민C는 감자의 녹말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가열해도 거의 파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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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식으로 여긴 보리밥(사진=군산흰찰쌀보리명품화 향토사업추진단)
◇ 별식으로 여긴 보리밥

보리밥이 무슨 영양밥이냐고 하겠지만, 보리밥은 원래 별식 중 하나였다. 쌀이 부족했던 시절 서민들이 쌀밥 대신 보리밥을 먹어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밥처럼 여겨지지만, 영양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 농서인 《증보산림경제》에 따르면, 보리 낱알이 여물되 아직 누렇게 되기 전에 베어다가 햇볕에 말린 후 보리쌀을 만들어 멥쌀과 섞어서 밥을 지으면 맛이 매우 좋다고 기록돼 있다.

열무김치를 넣고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보리의 서늘한 성질이 고추장의 더운 성질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에 좋다. 가을에는 찹쌀보리에 시래기와 마늘을 넣어 솥밥을 지어 먹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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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현
심기현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전통식생활문화전공 교수·이학박사·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 연구원.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식재단, 농협중앙회 등 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한식의 과학화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10월호(64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