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나쁘고 어려운 소식 ‘잘’ 주고받기
기고자 박일환
입력 2014/09/22 16:05
소통의 기술을 키우자 ②
환자와 의사는 불통(不通)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소통이 안 된다. 1차 의료 진료현장에서 진행된 한 연구를 보면, 환자는 의사에게 호소하기 원하는 내용의 절반 정도를 의사가 수용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50%의 경우에서 진료를 마치고 나서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 의사에게 제대로 관리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심리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부분에서는 더 실패다. 오직 6%에서만 의사와의 관계에서 “심리적 일치를 보였다”고 답했다.환자만 이러한 것이 아니다. 의사들은 모일 때마다 서로 하소연한다. “병력을 들어주고, 진찰도 해주고, 설명도 해줬는데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말이다. 이렇게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관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의사나 환자나 동일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질병을 제대로 예측하고, 예방법을 찾고, 질병을 환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맞춤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 말이 통해야 한다.
진료실 소통의 한계
그러나 진료실에는 소통에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이 너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좋은 얘기보다는 나쁜 얘기가 더 많이 오가는 곳이라는 점이다. 의사와 환자는 처음부터 좋은 말을 하기 위해 만나는 사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쁜 얘기가 늘 부담스럽다. 혹시 중증 진단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환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돼있다. 거기에 낯선 환경, 의사의 어려운 용어는 거부감을 더한다.
최근 전자의무기록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의사가 진료 시 환자 얼굴이 아닌 모니터를 바라본다. 환자는 기분이 나쁘다. 눈한 번 맞춰 주지 않는 의사가 나를 싫어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와 눈을 맞추기 싫어서라거나, 환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단지, 의무기록을 틀리지 않게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이 역시 진료실 소통의 단적인 한계다.
최근 SNS나 인터넷을 이용한 환자와의 소통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말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글로 쓸 수 있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의사입장에서 환자를 직접 볼 수 없고, 환자 개개인 특성별 병력청취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의료법상 한계도 있어 SNS로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가까운 전문의를 찾아가 진료를 받으라”는 말밖에 덧붙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환자와 의사 모두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만 이어지기 일쑤다.
나쁜 소식 전달법
이렇듯, 진료실 대화를 어렵게 하는 두 가지는 나쁜 소식과 어려운 소식이다. 중증질환에 대한 부담이 나쁜 소식이고, 어려운 의학용어 등에 대한 어려운 소식이 그것이다.
환자에게 아무리 사소한 병명을 통보한다고 해도 환자는 의사의 병명 통보를 두려운 마음으로 듣는다. 그런데 말기암과 같이 위중한 병명을 환자에게 통보해야 하는 경우에는 진단명을 전하는 의사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의사가 진단명을 먼저 알게 되기 때문에 의사가 먼저 스트레스를 느끼고, 이후에 병명 통보 과정을 통해 환자나 가족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러므로 나쁜 소식을 잘 전하는 방법을 알아둬야 한다.
이는 비단 의사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다. 환자나 보호자도 최선의 치료를 위해서 ‘나쁜 소식’을 어떻게 전달 받는게 필요한지 알아둬야 한다. 우선 나쁜 소식을 누가,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 나쁜 소식은 수련 의사나 간호사보다는 담당주치의가 직접 전해야 한다. 나쁜 소식일수록 권위가 있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나쁜 소식은 바로 전해야 한다. 의사도 진단명을 알았을 때 즉시 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장소 선택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바쁜 외래 중에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데 서둘러서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환자의 비관만 심어 주는 방법이다. 입원 환자의 경우 회진 시 얘기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듣고 있으므로 이 또한 좋지 않다. 나쁜 소식은 생각할 시간을 주고,비밀리에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성으로 미리 알리고, 나쁜 소식에 대해 직접 더 듣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다른 가족과 함께 듣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다른 가족에게 설명해 주기를 원하는지 의향을 물어보는 것이 좋다.
그 다음 고려해야 할 것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다. 의사도 병명 통보에 스트레스를 느끼므로 말을 조금 돌려서 전하기 쉽다. 하지만 “위에 혹 같은 것이 보입니다”보다는 “위내시경검사를 했는데 위암 소견이보였습니다. 확진을 위해 조직검사가 필요합니다” 라고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때로는 환자나 상대방이 당황하고 더 이상 이야기를 듣기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잠시 휴지기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의사가 일방적으로 병명의 진단, 치료계획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환자의 정서적 반응을 살피고, 충분히 공감해 주고, 환자가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질문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왜 이러한 질병이 나에게 생겼는가, 나는 이제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가 등과 같은 질병의 원인이나 예후에 관한 관심이 앞선다. 의사가 앞으로의 치료계획에대해 너무 급박하게 서두르며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아야 한다.
“의사가 환자가 아닌 모니터만 쳐다본다면서 불만을 제기하는 환자가 많다. 하지만 이는 전자의무기록 때문이다. 환자에 대한 내용을 혹시나 잘못 입력할까 봐 의사는 잔뜩 긴장한 채 모니터에 집중하는 것이다.“
어려운 말 쉽게 설명하기
환자와 의사의 건널 수 없는 강을 느낀 사례가 있다. 어느 날 환자가 “가슴이 아프다”면서 찾아왔다. 필자는 환자에게 심장질환 병력과 가족력 등을 묻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 등을 확인하는 검사를 했다. 당연히 ‘흉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환자는 ‘유방’을 말한 것이었다. 아주 간단해 보이는 불통이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뻔했다.
이는 매우 쉬운 언어의 중의적 의미 때문에 발생한 사례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다 보면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환자에게는 어려운 단어들이 참 많다. 이때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역시 일반인의 경우도 동일하게 적용되니 참고해 두자.
바로 ‘체험 내러티브 방식’이다. 이런 체험 내러티브 방식은 매우 효과적인 의사 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치료 방법에 대해서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라면, 이 환자와 동일한 경우의 환자가 일반인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썼던 글을 읽도록하는 것이다. 자신과 동일한 입장에 처한 일반인의 글이기 때문이 이해가 쉽고, 공감도 빨리 된다. 진료 시 환자가 의사에게 가졌던 불만이나 원하는 바를 정리해 의사들과 서로 공유하는 방법도 좋다.
환자 입장에서도 이는 중요한 기술이다. 환자는 진료실에서 자신이 생각하는바,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는 대화의 주도권이 자신이 아닌 의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사가 어쩔 수 없게 쥐게 되는 대화의 주도권의 과정을 미리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의사가 설명하는 데에는 과정이 있다. 우선 ‘질병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그 다음에 ‘진찰’을 한다.
그 다음에는 ‘진단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처방과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얘기한다. 이 프로세스에 맞게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정리해 두면 좋다. 질병과 증상 이야기를 처음에 못했다고 나중에 하려고 하거나, 진단명에 대해 얘기하는 데 치료 경험을 얘기하는 등의 대화 방식은 소통에 방해가 된다. 그러므로 이 흐름에 맞게 미리 할 말을 준비해 두자.
나쁜 소식 듣는 기술 따로 있다
하지만 질병과 건강상태, 앞으로의 치료 계획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들어야 하는 때이므로 정신을 잘 가다듬자. 우선, 횡설수설하지 말고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한 뒤 한숨을 돌린다. 이 때 현재 머릿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과 자신이 마음 속에 느끼는 것이 말로 잘 표현될 수 있도록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나쁜 상황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객관적인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지내면서 국내에 의료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홍보하는데 앞장서 왔다.
월간헬스조선 (90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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