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계족산 중턱에 오르자, 허름한 등산복을 입은 한 중년 남자가 맨발로 저벅저벅 걸어와 악수를 청한다. 주섬주섬 점퍼 안주머니에서 코믹한 캐리커처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익살스러운 명함을 내민다. (주)선양의 조웅래 회장이다. 조 회장은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자, 앉아서 막걸리 한잔 드시죠!”라며 반갑게 첫인사를 건넸다. 오랜 비 끝에 맑게 개인 5월의 어느 날, 조 회장과 맨발로 함께 걸으며 ‘건강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맨발의 청춘
조웅래 회장을 만나기 위해 대전 계족산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작은 돗자리 위에는 돼지껍데기무침과 말린 멸치 등이 오른 조촐한 막걸리 한상이 펼쳐 있었다.
“이곳은 맨발로 올라야 좋은 곳입니다. 맨발로 앉으시죠.”
모두 맨발인 것을 보고 머쓱해져 양말을 벗고 쭈뼛대며 돗자리에 오르니 조 회장이 막걸리 한 사발을 손수 따라 주며 묻는다. “산이 아주 좋지요? 대한민국을 다 뒤져도 14km 황톳길을 걸을 수 있는 산은 계족산뿐입니다. 주류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잦은 비즈니스 모임으로 과음할 일이 종종 있지만, 과음과 스트레스로 피곤해질 땐 이곳에 오릅니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걷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청량해지니까요. 요즘처럼 날씨가 쾌청할 땐 매주 월요일 임원회의도 계족산에서 할 만큼 제 황톳길 사랑은 유명합니다. 말하자면 이곳은 제 헬스장인 동시에 집무실인 셈이죠(웃음).”
주식회사 선양의 조웅래 회장은 정감 어린 경상도 억양으로 계족산 예찬론을 이어 갔다. 선양그룹은 38년 동안 대전·충청 향토소주를 만들어 온 주류회사다. 6년 전 기업이념인 ‘에코힐링(Eco-Healing)’ 사업의 일환으로 대전 계족산에 14km 황톳길을 조성해 마사이마라톤과 맨발걷기 캠페인, 숲속음악회 등 다양한 에코힐링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5월 13~15일, 3일간 ‘계족산 맨발축제’를 개최했다. 계족산에 황톳길을 깐다고 공표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조 회장의 무모한 도전에 우려와 반대를 표했다. 어떤 이는 ‘공유림 산길에, 그것도 사비로 수십억원을 들여 황톳길을 왜 깔아?’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우연히 걷게 된 계족산 숲길을 모두에게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지난 6년간 20억원 이상을 들여 맨발로 걷기 좋은 황톳길을 조성한 결과, 이제 계족산은 멀리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도 찾아오는 대전의 명소가 되었다.
“주변의 무관심과 극심한 반대에도 계족산 황톳길에서 ‘마사이마라톤 행사’를 처음 무사히 마쳤을 때, 수많은 참가자들의 웃음띤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하면 되는구나!’ 하는 성취감과 머리로 하는 일은 가슴으로 하는 일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황토예찬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마신 후 조 회장과 황톳길 걷기에 나섰다. 맨발에 느껴지는 황토의 촉감이 이렇게 촉촉할 줄 몰랐다. 그늘진 숲길에서 밟는 황토는 점토처럼 쫀쫀하고 차가운 질감이지만 양지에서 밟는 황토는 따뜻하고 포근했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 불리는 황토, 그 길 위에는 도심에서 보지 못한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한다. 여기저기 커다란 장수풍뎅이가 황토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고, 《곤충도록》에서 봤을 법한 아름다운 나비가 숲길 곳곳을 누빈다. 처음에는 나란히 걷나 싶던 조 회장과의 거리가 어느 순간 한참 멀어졌다.
“제 걸음이 좀 빠르지요? 걷는 게 생활이 돼서 그럽니다. 걷기만큼 마라톤도 좋아해요. 걷는 것이 생활운동이라면 마라톤은 전문성을 요하는 운동입니다. 지금까지,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38회 완주했어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란 말 아시죠? 마라톤 선수들은 뛰다 보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엄청난 희열을 느끼고, 그래서 또 뛰게 되지요. 저도 마라톤을 통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합니다. 매번 완주 후엔 큰 성취감을 느끼고 또 다른 삶의 활력을 얻으니까요. 마라톤을 완주한 다음 날 제 얼굴을 보면 자부심으로 빛이 번쩍번쩍 납니다(웃음).”
(주)선양엔 재미난 입사 규정이 있다. ‘달리기 10km를 정해진 시간 안에 완주하는 사람만 정식사원이 될 수 있다’는 규정이다. “개인적으로 건강은 모든 일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소주회사 직원이라면 기본체력이 튼튼해야지요(웃음). 10km 달리기는 신입사원의 기본체력은 물론 패기와 열정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예요. 함께 뛰는 동료, 선배들과 돈독한 사우애를 쌓을 수 있으니 회사생활 출발로는 이보다 좋은 게 없지 않겠습니까?”
조 회장의 부인은 황톳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10년 더 젊어진 ‘동안’ 피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조 회장은 술을 마셔도 끄덕없는 강철체력을 갖게 됐다. 그에게서 황톳길을 걸으면 좋은 점에 대해 들어 보았다.
“흔히 발을 ‘제2의 심장’이라고 하지요? 심장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발까지 도달한 혈액이 다시 심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발근육이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발을 잘 관리하면 혈액순환 개선은 물론 소화기능 개선, 두통 해소, 당뇨 예방, 치매 예방, 피로 해소, 기억력 향상, 불면증 개선, 아토피 개선 등의 효과가 있어요. 특히 자연 속에서 황톳길을 걸으면 불면증 해소에 참 좋습니다. 여성은 제 아내처럼 다음날 피부에 반짝반짝 윤이 나고요(웃음).”
잘 다니던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2000만원으로 전화정보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단 한 명의 직원과 무선호출기(삐삐) 컬러링 서비스 ‘5425’ 브랜드를 만들었을 때도, 계족산에 수십억원을 들여 황톳길을 깔았을 때도 조 회장은 언제나 ‘이상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무모하다’ ‘어리석다’ 손가락질했지만 그 덕에 그는 한국의 ‘리처드 브랜슨’이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목숨을 건 기구여행을 즐기고, 브랜드 광고를 위해 각종 퍼포먼스로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은 기발함과 창조적 괴짜성의 대명사로 통하지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함께 가장 창조적인 경영자로 손꼽히는 그와 닮았다니 얼마나 기분 좋습니까? 괴짜인데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다는 점도 그렇고, 특히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슨 일을 할 지 즐거운 생각을 갖고 산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도 같습니다(웃음).”
조 회장이 계족산 마라톤대회뿐 아니라 저 멀리 인도양 서부 마다가스카르 북동쪽 섬나라 세이셸에서도 매년 마라톤대회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알면 그의 엉뚱함에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 부부가 선택한 허니문 여행지로 유명한 세이셸에서 그는 벌써 4년째 마라톤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물론 세이셸과의 인연도 이 황톳길에서 시작됐다. 우연한 기회로 한국을 찾은 세이셸 외무장관이 계족산 황톳길에 감탄하며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세이셸을 찾은 조 회장은 아름다운 해안가를 뛸 수 있는 마라톤대회를 제안, 후원해 주고 있다.
“또 쓸데 없이 수억원 쓴다고 욕 많이 먹었습니다(웃음). 민간외교가 뭐 별겁니까? 덕분에 세이셸 대통령이 방한해 계족산 맨발걷기를 체험하고, 세이셸 알바브라 육지거북도 한 쌍 대전동물원에 기증했으니 이 얼마나 훈훈합니까? 무엇보다 세이셸을 종종 방문해 한국문화를 알리는 게 가장 뿌듯하지요.”
매 순간 남보다 앞선 생각, 남들과 다른 생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그는 남의 시선보다 자신을 믿고 열정을 모두 쏟아 부으면 항상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뒤따라온다고 믿는다.
“제 좌우명은 ‘불광불급(不狂不及)’입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열정과 도전은 ‘불광불급’ 정신이 아니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삶의 90%, 계족산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맨발걷기 후에 먹는 밥은 효과 빠른 보약이지요. 전날 과음했어도 이른 아침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걸은 후 맛있게 밥을 먹으면 정신이 맑아집니다. 아, 계족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나요? 그만큼 제 생활의 90%는 계족산에서 이루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계족산을 찾아 맨발로 걸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그래서일까?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떠올릴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조 회장은 항상 웃고 있었다. 빠른 발걸음으로 산길을 걸을 때도, 거리의 외국 설치미술가들과 인사를 나눌 때도, 지나가는 등산객들과 눈인사를나눌 때도, 막걸리를 마실 때도 웃고 있었다. 웃음 띤 얼굴로 간간이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산이 참 좋지요?”
물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쏴아~쏴아’ 바람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만 귓가를 스치는 조용한 산중턱을, 조금은 질퍽한 황톳길을 꼭꼭 눌러 밟으며 걸었다. 도심에서 흐트러진 마음이 차분해졌다. 두 시간여의 황톳길 산행을 마치고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앉아 발을 씻었다.
“이리 와서 막걸리 한잔 하이소.”
나무 벤치에 앉은 그가 또다시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권한다.
“산이 참 좋지요?”
먼 산을 바라보며 묻는 조 회장의 말 속엔 그의 열정만큼 뜨거운 계족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진하게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