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누렇게 하늘을 뒤덮은 어느 서울의 아침, 9시 10분. 출근시간이 지나 한적한 삼성본관 로비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청량한, 다년생 음지식물로 인테리어를 한 호텔같은 공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5년 만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지난 1일 국내 최대 규모로 문을 연 강북삼성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말이다. 지금까지 직장에서 건진을 받은 건 여러 번 되지만 제대로 된 건진을 받기는 처음이다. 미소로 반겨주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미리 작성해 간 문진표와 채변 검사 키트를 제출하고 나니, 전자식 열쇠로 된 탈의실 키를 건네준다. 이 탈의실 키는 나중에 각종 검사실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100% 유기농 코튼으로 만들었다는 핑크색 환자복을 입고, 헐렁한 옷이 벌어져 가슴이 들여다보이는 민망함을 막기 위한 취지로 고안된 듯한 가운까지 걸치고 나니 마치 고급 호텔의 스파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다. 예전에 모 검진센터에서 남자 직장인들 틈에 끼어 검사받으면서 헐렁한 상의 틈새가 벌어질까봐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역시, 고객은 사소한 것에 감동한다니까…’
첫 시작은 초음파 검사였다. 겔을 미리 데워놨는지, 배 위에 뿌리는 초음파용 겔이 하나도 차갑지 않았다. 상복부초음파 검사에서 담낭용종이 발견됐다.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크기가 작아서 1년에 한번 정도씩 추적관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자세를 바꿔 갑상선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최근 갑상선암 책을 기획해서 펴내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요즘 갑상선암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어서였는지 다소 겁이 났다. 자세히 영상을 들여다보던 의사는 1~3mm 정도의 결절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미세한 결절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채혈과 신체계측 등을 하고 나니, 그토록 두려워했던 위내시경 차례가 돌아왔다. 꼬불꼬불 길을 돌아가니 마치 갤러리처럼 벽면에 미술작품들을 걸어둔 내시경실이 나왔다. 거품제거제와 또 다른 물약을 먹고 잠시 기다렸다. 돈을 더 내고 수면내시경으로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밤 9시 이후 아무것도 먹지 말라던 규정을 어기고, 10시 30분쯤 먹은 자몽 한쪽 때문에 검사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
목구멍 마취 후 길다란 호스를 입 속에 쑥 집어넣을 때의 느낌이란! 폭탄주를 연거푸 마신 뒤 위가 울컥하고 뒤집히는 느낌보다 10배 정도 강한 구역감의 쓰나미가 몰려왔지만 눈물을 찔끔 흘려가며 참았다. 이제 그만 좀 하지, 더는 못하겠다 싶을 때쯤 목구멍에서 호스가 나왔다. 첨단 의학장비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요즘, 내시경 장비가 좀 더 가늘어질 순 없는지….
난생 처음 해 보는 위내시경의 충격 때문이었는지, 아침을 못먹어서 기운이 없어서 그랬는지 폐활량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검사는 물 흐르듯이 매끄럽고 순조롭게 진행됐다. 채혈실, 신체계측실 등 각각의 검사실 앞에는 전광판이 있어서 탈의실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전자 키를 갖다 대기만 하면 모니터의 대기자 순서에 이름이 떠서, 앞에 몇 명이 기다리고 있는 쉽게 알 수 있었다. 혹여라도 검사실을 못찾아 머뭇거리면 코디네이터가 신속하게 달려와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드디어 여성들을 떨게 만드는 유방촬영(맘모그램)이 다가왔다. 팔이 달린 큰 기계로 상하좌우로 유방을 눌러 X-선을 촬영을 하는 것으로, 암을 발견할 확률은 60~87%다. 의사 앞에서 상의를 훌러덩 벗어야 하고, 유방을 누른 상태에서 수 분간 참아야 하기 때문에 ‘필요악’이라 할 수 있는 검사다. “안받아봤으면 말을 마. 유방으로 떡을 치더라. 어찌나 아프던지 소리를 꽥 질렀다니까.” 몇 년 전 친구가 유방촬영을 받고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사실 몇 번의 기회가 있긴 했지만 겁이 많아서 차일피일 미뤄 왔었다. ‘그냥 예전에 받았다고 하고 건너뛸까?’
“유방암은 조기 발견만 하면 얼마든지 완치도 가능합니다. 40대도 코앞이신데 아직 한번도 유방촬영을 한 해보셨으면 한번 받아보세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큰 맘 먹고 받고나니, 위내시경보다는 참을만 했다.
드디어 검사가 끝났다. 마치 잘 짜여진 한편의 연극처럼 의사는 의사대로,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수검자는 수검자대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건강검진 자체가 고통의 순례길이 아니라, 마치 삼림욕을 하는 것처럼 기분좋은 체험으로 만들기 위한 병원측의 세심한 배려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동선이 꼬인다던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긴다던지 하는 일 없이 1시간 40분 만에 십 여 가지의 알찬 검사들이 모두 종료됐다.
검사가 끝나고 나니 안도감과 더불어 공복감이 심하게 몰려왔다. ‘아참, 검사 후에 죽을 먹고 가랬지!’ 죽집에서 인삼닭죽을 먹었다. 누군가 건강검진을 가리켜 ‘비 올 때를 대비해 우산하나 챙겨가는 것’이라고 비유했던 말이 생각났다. 게을러서 만 40세에 실시하는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놓친 남편, 가정주부로 살아오면서 제대로 건강검진 한번 못받아봤을 언니들, 부모님 얼굴도 떠올랐다.
“아직도 검진을 미루고 계시는 주부님들! 명품 가방보다 더 자신을 사랑하고 자녀 과외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방법, 바로 건강검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