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고, 호르몬이 아우성치는 계절이 돌아왔다. 사랑의 화살이 여기저기서 휙휙 날아다니지만 그 화살촉에는 어쩌면 호르몬이라는 마법의 약이 묻어 있는지도 모른다. 복근열풍과 마초맨들이 브라운관을 점령해 버린 요즘, 남자를 더욱 남자답게 만들어주는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정체를 파헤쳐본다.
◆ 60세가 되면 30세의 절반만 분비
테스토스테론은 스테로이드계 유기화합물로 성인 남성의 경우 혈액 1mL당 10~45ng(나노그램)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남성을 남성답게 만들어주는 호르몬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우리 몸 속에서 끊임없이 분해되기 때문에 체내에서는 이 남성호르몬을 계속 생산해내야 한다. 따라서 24시간마다 4~10mg의 테스토스테론이 고환에서 새로 생긴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생성되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20배나 더 많이 분비된다.
나이가 들면 신체에서 생산해내는 테스토스테론의 농도는 점차 떨어져, 남성은 35세 이후 매년 1%씩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한다. 남성이 60세가 되면 서른에 비해 평균 절반가량만 생산해낸다. 하지만 여성들이 폐경이 되면서 에스트로겐 분비가 끊어지는 것에 반해 남성은 80세 노인이 되어도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완전히 중지되지는 않는다.
◆ 흥분도 시키지만 진정도 시키는 테스토스테론
테스토스테론은 흥분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시합이나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 특히 더 높아진다. 운동경기나 게임을 마쳤을 때 이긴 사람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진 사람보다 높게 나타난다. 또한 테스토스테론의 상승폭이 클수록 더 도전적으로 변한다. 일례를 들면 재판중인 검사보다 변호사가, 전업주부보다 직장여성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더 높다.
또한 테스토스테론은 통증을 감소시키는 역할도 한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통증을 덜 느끼는 것도 이 호르몬의 영향이 크다. 이는 테스토스테론이 중추신경계로 전달되는 통증을 막으면서 통증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약지가 검지보다 더 긴 남자는 ‘마초?’
엄마 뱃속에서의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손가락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데,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될수록 약지가 검지에 비해 길다. 그래서 약지는 ‘테스토스테론의 손가락’ 검지는 ‘에스트로겐의 손가락’이라고도 부른다. 검지와 약지의 길이 비는 ‘D2-D4비’ 라고 하는데, 이 비율이 낮은, 즉 약지 길이가 긴 남성일수록 운동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낼 뿐 아니라 육체적인 면에 있어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손가락 길이가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5% 정도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성장기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이 성격을 더 좌우한다.
◆ 테스토스테론은 공격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흔히 ‘공격 호르몬’이라는 악명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을 남성답게 만들 뿐 아니라 공격성을 높인다고 믿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발표된 많은 논문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한편에선 이러한 믿음은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네이처’지에 발표된 취리히대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 그룹은 투여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게임 규칙을 더 잘 지키는 등 공정한 행동을 할 뿐 아니라 협동 같은 상호작용을 더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스토스테론이 많은 사람이 다 공격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성들에게 있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으면 갈등 상황에서 화를 잘 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전화상담원이 상담에 실패한 뒤 수화기를 내려놓는 힘을 측정해 테스토스테론 수치와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수화기를 내려놓는 힘이 세고 욕을 많이 하는 그룹일수록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았다.
◆ 중년남성 ‘러브 핸들’의 주범은 테스토스테론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떨어지면 성욕감퇴나 발기부전 등의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내장비만이나 복부 비만과도 관련 있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을수록 남성의 배 둘레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2007년 대한가정의학과지에 발표된 서울대의대 가정의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40세 이상 성인남자 2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테스토스테론이 낮은 그룹은 대사증후군 유병률도 높았다. 그렇다고 해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인위적으로 높여주면 이러한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을까?
이성원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사람에게 호르몬제를 쓰면 뱃살이 줄어들고 근육량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지만 전립선암 위험도 증가하므로 무턱대고 쓰면 안된다”고 말했다.
참고서적 = 호르몬은 왜?(프로네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