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도에서 마주친 이 교수는 150㎝쯤 돼 보이는 키에 조금 말라 보였다. 이렇게 자그맣고 힘도 없어 보이는 여자가 시체를 만지고 자르고 파헤치는 해부학을 전공하고 또 학생들의 해부학 실습을 어떻게 지도할까 싶었다.
이 교수에게 "해부학 교수의 건강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건강하게 살려면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해요. 현대인의 멀티 태스킹이 건강의 가장 큰 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대 도시인들은 밥 먹으면서 회의하는 것을 자랑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건강에는 최악이에요. 뇌는 혈액의 5분의1을 사용하는데, 회의를 하면 혈액이 뇌로 몰리는데 그 상태에서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고 위장장애가 생깁니다."
해부학 교수가 아닌 소화기내과 교수같은 답변이어서 이번에는 "죽은 사람의 몸을 들여다보면서 산 사람들에게 도움될 만한 건강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인체는 너무 지나치게 써도 문제지만 제대로 안 쓰는 것은 더 문제입니다. 몸의 기관도 안 쓰면 '잊혀진 존재'가 되죠. 근육을 쓰지 않으면 퇴화돼 주변 혈관이 쪼그라들어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요. 당연히 심장 기능도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 교수는 "해부를 해보면 건강하게 산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혈관의 두께가 일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건강하지 않았던 사람의 혈관은 두꺼웠다 얇았다 일정치 않다고 한다.
이 교수가 중시하는 건강의 척도는 몸의 '균형'이다. 혈관, 근육, 지방 등이 적재 적소에 적당한 크기와 모양으로 잘 배치돼 있는가, 그리고 잘 분배돼 사용됐는가가 건강의 관건이란 것이다.
해부학의 '달인'인 이 교수는 시체를 해부하다 보면 과거에 그 사람이 달리기를 잘했는지, 젓가락질을 잘 했는지를 맞출 수 있다고 한다. 달리기나 젓가락질을 잘 하게 하는 손발의 근육, 크기, 뼈의 구조, 혈관의 모양 등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
이 교수가 해부학 외길 인생을 걷게 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의과대학생 시절, 선배인 인턴·레지던트들이 밥 먹듯이 하는 야간당직을 해낼 체력에 자신이 없어 임상 의사의 길을 깨끗이 단념하고 기초의학을 택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오기로 똘똘 뭉친 그는 기초의학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해부학의 길로 들어섰다.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실습실만큼 에피소드가 많은 곳도 드물다. 해부학 교수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의사들도 많다. 해부학에 낙제해 의대 졸업이 1~2년씩 늦어진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 교수도 연세대 의대생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해부학 교실에서는 의대생들을 무척 터프하게 다룹니다. 해부학을 배우는 것은 의사가 되기 위한 문턱을 넘는 것과 같기 때문이거든요." 이 교수는 "요즘은 의대를 나오고도 인체 구조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