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붙이고 만들기 20년… 국내 최초 '팔 이식' 도전
돈맛에 취할까 봐 미용 성형은 생각도 안 해
발가락을 손으로 이식 수술 성공률 95%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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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수부(手部)전문병원인 W병원 우상현 원장이 손가락 접합 수술을 하고 있다. /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의사 한 명이 10분 정도 만에 '해 치우는' 쌍꺼풀 수술 비용은 50만~150만원 선이다. 집도의사, 보조의사, 마취과 의사, 간호사 등 네댓 명의 의료진이 짧아도 서너 시간, 길면 예닐곱 시간씩 걸려 잘린 손가락의 뼈와 혈관과 힘줄과 신경 등을 붙이고 받는 비용(보험수가)이 87만원. 성형외과 의사들이 '재건(再建)성형'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미용성형에만 몰리는 이유다.

대구 W병원 우상현 원장은 성형외과 레지던트 시절, 은사로부터 "재건성형만큼 보람된 일도 없다. 참 의술을 하라"는 얘기를 듣고, '수부(手部)외과 외길인생'을 결심했다. 기계에 손가락이 싹둑 잘려 실려오는 노동자가 많았지만 당시만 해도 잘린 손가락을 제대로 붙여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곳이 많지 않았다. "거창한 사명감 때문이라기보다 남들 안 하는 것을 하면 나중에 빛을 볼 것이란 계산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1994년 영남대의료원 성형외과 교수에 임용됐으며, 2003년 사표를 내고 400병상 규모의 대구현대병원으로 옮겼다. "산재환자들에게 대학병원은 문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현대병원에 대구경북지역 최초의 '수부외과 센터'를 개설한 그는 하루 24시간, 원 없이 '손가락 붙이고 만들기'를 했다. 손가락 수술을 한 달에 300~400건 할 정도로 환자가 많았다. 그런데도 경영난 때문에 현대병원은 2007년 문을 닫았고, 그는 또 다른 병원에서 1년 6개월 '월급의사'로 있다, 2008년 9월 '드디어' 자기 병원을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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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역에서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대구 경기(景氣)를 물으니 '전국 최악'이라고 했다. W병원 근처 성서공단이 텅텅 빈다고 했다. 쉬는 공장이 많으면 손가락 절단 환자도 감소할 텐데 큰 병원 지어놓고 어떻게 운영할까, 은근히 걱정이 됐다. 택시기사는 그러나 "그 병원은 환자가 북적거린다. 서울, 부산 등 전국에서 환자가 오는 모양이더라"고 말했다.

우 원장을 만나 인사 삼아 병원 사정부터 물으니 개원 한 달 만에 150 병상이 다 찼다고 했다. 손가락 절단 환자는 줄었지만 기형 환자가 전국에서 몰려와 항상 '풀 베드(full bed)' 상태라는 것. "그런데도 보험수가가 형편 없어 한 달에 300~500명 수술해도 겨우 직원 월급 주고 병원 운영할 정도"라고 했다. 경영을 위해 미용성형도 함께 해야 한다고 주위에서 충고하지만 한번이라도 쉽게 돈 버는 맛을 보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아 미용성형은 생각도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은사님 가르침대로 '최고' 수부 외과 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한 눈 팔지 않겠다"고 했다.

우 원장은 이미 '최고'에 근접해 있다. 특히 발가락 일부를 떼서 손가락을 만들어 붙이는 '족지(足指) 전이술'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지금껏 시술한 족지전이술 500여건의 성공률이 95% 이상이라고 했다. 최근 미국서 발간된 '수부외과 교과서(Hand & Upper Extremity Reconstruction)'의 제20장 '엄지재건술'을 그가 집필한 것도 이런 뛰어난 임상성적 때문이다. 절단수지 접합수술 및 기형교정수술 임상결과를 담은 논문들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해마다 대한미세수술학회, 대한수부학회, 등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또 매년 1~2명의 '수부외과 세부 전문의'를 수련시키고 있다. 우 원장은 "수부외과 분야에서 끊임 없이 임상 논문을 발표하는 개원 의사는 아마 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제 학회에서 인정을 받아 의사들이 환자를 많이 보내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주엔 엄지 손가락에 암이 생긴 모 대학병원 외과 교수의 발가락을 잘라 손가락을 만들어 줬고, 어제는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우울증 때문에 자기 손가락을 물어 뜯어버린 40대 여성을 보내줘서 발가락으로 손가락을 만들어 줬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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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원장의 '마지막 꿈'은 국내 최초로 팔을 이식하는 일이다. 1999년부터 1년 반 동안 미국 루이빌대학 '클라이넛 수부·미세수술센터'에서 '임상교수(clinical fellow)' 자격으로 근무할 당시 우 원장은 미국 최초의 팔 이식수술을 곁에서 경험했고, 그것은 그의 뇌리에 가장 인상적인 '사건'으로 아직도 자리잡고 있다. 그가 요즘 영남대의료원과 공동으로 '팔 이식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이유다.

팔 이식 자체가 기술적으로는 그리 어렵지는 않다고 그는 말한다. 뭉개지면서 절단된 팔도 붙이는데, 뇌사자 팔을 깨끗하게 잘라 붙이는 것은 오히려 쉽다고 했다. 남의 조직이어서 면역이 문제가 되지만, 간이나 신장 같은 다른 장기 이식에 필요한 정도의 면역억제제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국내 의료법상 '신 기술'로 인정 받는 절차와 면역억제제 등에 대한 보험 적용 등의 문제만 해결되면 곧바로 뇌사자 팔 이식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들 안 하는 골치 아프고 돈도 안 되는 일에 왜 그리 매달리느냐?"고 물으니 "팔 없는 사람의 고통을 생각해 봤느냐? 수부외과 의사가 할 수 있는 최고 의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20년 '외길 인생'을 걸어 실제로 빛을 봤냐"고 물었더니 "머지 않아 수부외과도 빛을 볼 테니 젊은 의사가 많이 지원해 달라고 기사에 꼭 써 달라"고 당부했다. 육손이 등 기형 환자도 많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수근관증후군(손저림증) 환자나 손 변형 환자도 많아지고 있으니, 수부외과가 빛을 보는 세상이 머잖아 올 것이라는 것. 그는 "수술 잘한다고 소문 나면서 최근 손 저림 환자나 변형 환자들이 많아져 나도 조금 재미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