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소아 3%가 고혈압… 어린이도 정기적으로 혈압 측정해야

홍유미 헬스조선 기자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윤지호(14·가명)군은 얼마 전 친구들과 지하철역에서 자동혈압계로 혈압 측정을 했다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 친구들보다 혈압이 월등히 높아서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를 말하자 놀란 부모는 윤군을 데리고 근처 소아청소년과를 찾아 혈압을 쟀다. 윤군의 혈압은 170/90㎜Hg로 부모보다도 훨씬 높았다. '소아 고혈압'으로 진단 받은 윤군은 매주 병원을 방문해 영양 상담사에게 저지방·저염분 식품들로 구성된 식단과 영양상담을 받고 운동 처방사에게 운동 처방도 받고 있다.

고혈압 환자가 급증하면서 성인들의 건강에서 혈압 관리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혈압 관리는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 소아 고혈압 유병률은 계속 올라가고 있으나 소아 혈압관리의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정상 혈압치도 최근에야 만들어졌다. 어린이들이 혈압을 측정해볼 기회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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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가 소아용 혈압계로 혈압을 재고 있다
■어린이 100명 중 3명이 고혈압

국내에서 아직 소아 고혈압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전문가들은 약 3%로 추정한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년이 올라갈수록 유병률이 더 높다. 소아 고혈압 유병률이 19%에 이른다는 외국의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일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종국 교수는 "외국의 연구들을 보면 비만이 증가하면 소아 고혈압도 같이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비만률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소아 고혈압 유병률도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소아 고혈압도 비만이 주 원인

소아 고혈압의 원인은 6세를 기준으로 차이가 난다. 6세 미만의 고혈압은 대개 신동맥 협착, 심장 기형 등 선천적인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6세 이상의 고혈압은 뚜렷한 원인이 없는 2차성 고혈압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10년 새 비만 아동이 급등하면서 6세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에서 '2차성 고혈압', 즉 성인과 같은 형태의 고혈압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평균 혈압도 미국이나 일본 어린이들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2005년 대한소아과학회와 질병관리본부 만성병 조사팀이 공동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남자 아이들의 수축기 혈압 평균은 142㎜Hg로 미국보다 11㎜Hg, 일본보다도 6㎜Hg 높았다. 이종국 교수는 "측정방법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 특히 남자 아이들의 심각한 비만율이 혈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고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장기영 교수는 "음식의 영향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단에는 원래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는 짠 음식들이 많은데 최근 어린이들의 패스트푸드 소비량까지 늘어 고혈압에 노출될 위험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의사들도 소아 고혈압의 심각성 몰라

소아 고혈압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부족은 일반인뿐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해당된다. 고려대의대 소아과학교실이 국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159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2%만이 소아 환자를 진찰할 때 혈압을 잰다고 말했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등 3차례 실시되는 건강검진 항목에도 혈압 측정이 들어있으나, 실제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홍영미 교수는 "과거에는 서울시 학교보건원에서 일률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했지만 현재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병원을 선택해 건강검진을 받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혈압계가 없는 병원도 많고 혈압을 재는 방식도 병원마다 모두 다르므로 서로의 혈압을 비교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3세부터 모든 소아가 매년 혈압을 측정한다.

장기영 교수는 "대학병원에서조차 아이들을 진료할 때 혈압을 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나이와 키 등에 따라 별도의 혈압계를 써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혈압계를 진료실마다 비치해 놓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은 혈압을 잴 때 움직이거나 우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는 몇 번씩 재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소아 고혈압 증상 없는 것이 문제

어린이 고혈압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특별한 증상이 없다는 점이다. 윤군의 경우처럼 우연히 혈압을 쟀다가 알게 되는 경우나 다른 질환으로 병원에 갔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홍영미 교수는 "소아 고혈압은 눈에 드러나는 증상은 없어도 좌심실 비대나 말단 기관의 손상 등 장기의 변화는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고혈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뇨병과 고지혈증과 동반되는 대사증후군으로도 진행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도 3세 이상의 어린이들은 병원을 방문하면 혈압을 재도록 해야 한다. 특히 비만이거나 부모가 고혈압인 아이들은 고혈압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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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고혈압의 기준은?

어른들은 정상 혈압의 기준이 120/80㎜Hg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나이와 성별, 키 등에 따라 정상 혈압의 기준이 다르다. 따라서 어릴 때 한 번 혈압을 잰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며, 나이가 들면서 수시로 혈압을 재봐야 한다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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