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염
피부 칙칙한 옷 벗었지만…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08/06/17 16:34
피부개선 효과 '홈 필링 화장품' 인기
화상·흉터 등 피해사례 수천 건 추정
그러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참다 못해 피부과를 찾아 갔더니 "빨리 병원에 오지 않고 왜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 있었냐"며 '화학적 화상'이라고 진단했다. 보송보송한 피부를 꿈꾸며 무심코 바른 필링 젤 때문에 박 씨는 한 달 넘게 피부과 치료를 받아 겨우 증상이 완화됐지만 피부는 오히려 그 전보다 더 지저분해졌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필링(peeling)에 '필(feel)' 받았다. 필링이란 인위적으로 피부 각질을 벗겨내 새로운 표피세포가 돋게 만드는 시술. 각종 문제성 피부를 개선하기 위해 시행되는데 여드름, 기미, 주근깨, 잔주름은 옅어지고 피부와 각질이 쌓인 칙칙한 피부는 매끈해지는 효과가 있다. 일명 '화장 빨' 잘 받는 시술로 20~30대 여성에게 인기를 끌더니 이젠 청소년, 40~50대, 심지어 70~80대 노인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필링을 받는 남성들도 꾸준하게 증가해 요즘은 전체 필링 환자의 약 10%가 남자다. 초이스피부과 최광호 원장은 "흔히 필링과 박피를 같은 의미로 쓰지만 박피는 더 깊이 벗겨내는 시술인 반면, 필링은 얕게 하는 박피로 보면 된다"며 "값비싼 레이저 시술보다 저렴하고 피부개선 효과도 좋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필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홈 필링 화장품, 3000억 시장 고속성장
필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화장품이 개발되면서 '피부과 필링' 시대에서 '홈 필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피부과에 가지 않고도 필링 젤, 필링 팩, 필링 크림, 필링 에센스 등을 사서 바르기만 하면 '보송보송한' 얼굴을 만들 수 있다. 2~3년 전만해도 300억~400억원 수준이던 필링 화장품 시장은 작년 3000억~4000억원 수준으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이 중에서도 불필요한 피부 각질을 제거하는 '글리콜릭산' 성분 화장품이 특히 인기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글리콜릭산'은 화학적 박피성분인 'AHA(alpha hydroxy acid)'가 피부의 각질 표피를 고르게 떨어지게 한다. 주로 피부과에서 여드름, 기미, 잡티, 노인성 반점, 잔주름 등을 치료하거나 피부를 개선할 미용 목적으로 이용돼 왔는데, 화장품 회사들은 병원용보다 농도가 낮고, 집에서 사용해도 안전한 AHA 3~10%대 제품을 주로 선 보이고 있다. 대개 필링제, 중화제, 진정제 세트로 판매하며 가격은 5만~30만원까지 다양하다. 최근엔 미량의 글리콜릭산을 기초화장품인 스킨로션, 아이크림에 넣어 매일 바를 수 있는 '데일리 필링' 제품까지 나와 있다.
■홈 필링 부작용 속출
필링 화장품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부작용도 덩달아 늘고 있다. 여성의 피부가 멍들고 있는 것이다. 피부과의사회가 집계한 소비자 피해사례의 18~20%가 필링 부작용이었을 정도다. 접수되지 않은 부작용까지 환자만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의료계에선 추산한다. 테마피부과 임이석 원장은 "집, 피부관리실 등에서 홈 필링 제품을 쓰다가 화상, 고름 등 부작용을 호소하며 병원에 오는 환자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피부과의사회 한승경 회장도 "병원에서 필링을 받아도 부작용이 생기는데, 심지어 개인이 자신의 피부상태도 모른 채 사용하는 것은 피부를 망치는 행위다. AHA 10% 이상 농도의 필링제를 사용해서 개인이 '화학필링'을 하면 화상, 흉터, 색소침착, 표피 벗겨짐, 진물, 감염, 홍반, 피부위축과 같은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화장품 회사 마케팅 담당자는 "여름을 앞두고 필링 제품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지만, 그만큼 부작용 때문에 항의하는 소비자 때문에 골치다"며 "그러나 부작용 때문에 항의하는 소비자의 80~90%는 명시된 주의사항과 사용법을 지키지 않은 사례"라고 했다.
이지함피부과 지혜구 원장은 "필링을 하면 인위적으로 피부를 감싸고 있는 피부 각질층이 없어지는데, 이때 피부를 보호하던 방어막도 없어지므로 위험한 외부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며 "지나치게 고농도 성분을 사용하거나 사용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