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쇼핑중독’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안 산다” 해놓고 또… 조절안돼
애정 결핍을 사는 행위로 보상
우울증 동반… 스스로 인정안해
온가족이 터놓고 함께 풀어야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온 주부 A씨(55). 치료를 받는 것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가족들이 5000만원 가량의 빚을 갚아준 끝에 찾은 병원이다.

폐경 이후 줄곧 우울했다는 A씨는 어느 순간 쇼핑에 맛을 들였고, 어느덧 집안은 A씨가 사놓은 물건에 파묻힐 정도가 됐다. 가족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기를 1년. 카드빚은 또 다른 카드빚을 낳았고, 가족회의 끝에 결국 A씨는 상담 치료를 받게 됐다.

‘쇼핑 중독’. 미국에선 물건 사들이기에 집착하는 쇼핑 중독자가 10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보건당국이 쇼핑 중독을 정신질환 목록에 포함시키는 문제도 검토할 정도라고 한다.

갱년기뿐만 아니라, 유방암 자궁암 등으로 인한 제거 수술로 ‘여성성’을 잃었다며 공허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또 다른 고통, 바로 ‘쇼핑 중독’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은 과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왜 샀을까’ 후회, 결국엔 죄책감까지

여의도 성모병원 정영은 정신과 전문의는 “물건을 사고 나서 ‘왜 샀을까’ 후회한다거나 ‘다음엔 안 사야지’ 했는데도 조절이 안 된다, 안 사면 못 참겠다거나 하는 경우도 중독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이 ‘쇼핑 중독’ 증세를 보일 경우 보통 심리적 요인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갱년기 여성의 경우 원인이 다각적으로 오기 때문에 ‘저러다 말겠지…’ 하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정영은 전문의는 “갱년기 여성에게 오는 쇼핑중독의 전 단계인 우울증의 경우, 호르몬 변화나 뇌 분비 호르몬 부족 등 내인성 요인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있고, 불안감이나 가족 내부에서 오는 갈등 등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내인성의 경우는 겉으로 뚜렷한 문제가 없어 보여도 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절대 간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각종 자가 테스트와 임상 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사랑받고 싶어요”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들은 보통 심리 검사에서 스트레스나 우울, 불안, 긴장감 지수가 일반인보다 상당히 크다”며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등 무언가 ‘허전하다’고 느낄 때 시작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다 커버려 자신의 품을 떠났을 때 느끼는 공허함도 상당하다는 설명.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 박사는 “일반적으로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걸 돈을 주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정 결핍을 사는 행위로 보상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란 설명. 남자들이 쇼핑 중독 증세를 보일 경우엔 마치 전쟁 중 ‘신무기’를 구입하듯 좋은 자동차나, 고급 오디오 등 기계에 열광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의 경우 결국 쓰레기통으로 갈만한 자질구레한 것들만 자꾸 사들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난 ‘중독’이다”로 받아들이자

문제는 가족들에게 거짓말하고, 빚으로 빚을 메우고, 도저히 물건을 살 여력이 없는 지경에 빠지는 순간에도 무언가 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순간까지 도달하더라도, 스스로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윤세창 교수는 “개인 파산을 당하고, 가정 파탄이 난 사람도, 어쩌다 ‘사고’를 쳤을 뿐이지, 이 시기만 지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윤세창 교수는 “우선 병원행을 두려워해선 안 되고, 약물 처방을 받는 것도 꺼릴 필요가 없다”며 “갱년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면 자주 정신과 상담을 받는 등 대화의 창구를 많이 열어두면 우울증이나 각종 중독 증세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쁜 중독’ 대신 ‘좋은 중독’으로

서울대 곽금주 교수는 “우선 가족들과, 혹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개인 문제로 볼 게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난부터 하게 되면 감정의 골이 깊어져 오히려 중독을 심화시킨다고 덧붙였다.

김병후 박사는 “행동치료 요법이나, 필요하면 우울증 처방 등 약물 치료도 병행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다른 ‘좋은’ 행위로 대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술 대신 담배가 아니라, 등산이 생각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쇼핑 말고 어떤 부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지 기호를 파악한 뒤, ‘보상’을 통해 ‘좋은 중독’을 유도해야 한다.


/ 최보윤 기자 spic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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