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곶감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되니 고궁이나 시골집에 가면 탐스럽게 익어가는, 주렁주렁 달린 감을 볼 수 있다. 감하면 생각나는 옛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옆집 감나무 가지가 담장을 너머 제 집 안으로 뻗어 자라자 그 가지에 달린 감을 냉큼 따 먹고는, 자기 집으로 넘어온 것이니 자기 것이라 우긴다. 그러자 옥신각신 말다툼 대신 창호지를 뚫고서 방문 너머로 한쪽 팔을 쑥 내밀며 “그러면 이 팔은 누구 것이요?”라고 되물었다는 한 옛 성인의 이야기와, 호랑이 이야기를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곶감” 했더니 울음을 뚝 그쳐 호랑이가 곶감에 겁을 먹고 도망갔다는 전래동화다.
감은 가을철 과일 중 하나이지만, 변비에 대한 염려와 떫은 맛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해서 먹으면 건강에 한결 도움이 된다. 이맘때가 제철이니 시기를 놓치지 말고 먹어두면 좋겠다.
색깔마저 황홀하게 먹음직스러운 주홍빛 감은 항산화 작용과 항암효과가 뛰어난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노화방지와 특히 폐암 예방에 좋다. 또 비타민C도 귤의 2배나 들어있기 때문에 이 역시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며, 지금 같은 환절기와 겨울에 기승을 부리는 감기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예방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중풍(뇌졸중)이나 심장병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의 떫은 맛은 ‘탄닌’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변비를 일으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탄닌은 수렴작용(수분흡수)이 강한 편인데, 장에서 수렴작용이 나타나면 수분을 빨아들여 변비가 쉽게 생기게 된다. 하지만, 하루 한 개 정도는 염려할 만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반대로 검사상으로는 아무 이상도 없는데, 만성적으로 설사를 반복하는 사람이 꾸준히 먹으면 오히려 설사가 줄어 큰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변비가 걱정된다면 탄닌 성분이 많이 줄어든 홍시를 먹거나, 곶감을 잣과 함께 먹으면 문제 없다. 다만, 탄닌 성분은 우리 몸에서 철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빈혈이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피하는 것이 좋겠다.
감은 숙취 제거에도 도움이 된다. 술을 마신 후 감을 먹으면 술이 빨리 깨고, 숙취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작년 음주 후에 감을 먹은 사람들과 물만 먹은 사람들을 비교하는 실험을 한 결과 숙취 해소 효과를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술 안주로 감을 활용하는 것도 술이 주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건강도 지키면서 피부 미용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아이디어다. 그렇다고 감만 믿고 무작정 술을 마셔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아내와 함께 잘 익은 감을 한번 나눠 먹어보면 어떨까. 필자도 이 원고를 쓰기 직전에 홍시 하나를 아내와 함께 반씩 나누어 먹었다. 부드러운 빨간 홍시 속살을 같은 숟가락으로 한번씩 떠 먹으면서 부부의 ‘애정(?)’도 확인하고...
/기고 : 이승남(강남베스트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