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2-19
호흡 생리
한 번이라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 본 사람이라면 ‘수술방은 춥다’고 느낄 것이다.
수술을 앞둔 두려움도 원인이겠지만 실제 수술방은 기온을 낮게 유지한다. 포근하고 따뜻하면 좋을 텐데 왜 수술방 온도를 낮게 유지할까? 높은 온도를 좋아하는 세균을 막기 위해, 의료진의 편의(땀)를 위해 차갑게 유지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욱 ‘생리학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있다.
1. 산소 운반과 헤모글로빈
혈액 내 산소(O2)는 ‘혈장에 직접 용해’와 ‘적혈구와 결합’이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조직과 세포로 운반된다. 산소는 거의 모두 적혈구를 구성하는 단백질인 헤모글로빈(Hb)과 결합(98%)하여 운반되며 혈장에 녹아서 운반되는 산소는 약 2%에 불과하다.
헤모글로빈은 철(Fe)을 품고 있는 헴(heme) 그리고 단백질 사슬의 일종인 글로빈(globin)으로 구성되어 있다. 형태는 4개의 글로빈 단백질 사슬이 각각 하나씩의 헴(heme)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이다. 각 헴의 중심에 있는 철(Fe) 원자는 1개의 산소와 결합할 수 있으므로, 헤모글로빈 한 분자는 4개의 산소와 결합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2. 산소분압과 산소해리곡선
운반되는 산소의 양은 적혈구 주위의 ‘혈장 내 산소분압(PO2)’과 ‘적혈구 내의 헤모글로빈 수’에 의해 결정된다. ‘혈장 내 산소분압(PO2)’은 바로 ‘산소농도’를 의미한다. 헤모글로빈 수는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결국, 운반되는 산소의 양은 혈액 내의 산소농도에 의해 주로 영향을 받는다. 산소와 결합한 헤모글로빈은 산화헤모글로빈(oxyhemoglobin, HbO2)이라 한다. 헤모글로빈 결합반응인 Hb + O2 ↔ HbO2 은 ‘질량 작용법칙’을 따르므로 산소농도가 증가하면 더 많은 산화헤모글로빈이 만들어져서 산소의 운반량이 많아진다. 그러나 실제 인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산소분압(PO2)과 헤모글로빈의 산소포화도(%, 얼마나 많은 산소가 헤모글로빈에 결합하는지) 사이의 물리적인 상관관계를 나타낸 것이 바로 ‘산소해리곡선(oxygen dissociation curve)’이다. 이 곡선은 완만한 ‘S자 모양’으로 산소분압이 높은 곳에서는 더 이상 산소분압이 높아져도 헤모글로빈과 산소의 결합이 증가하지 않는다(기울기가 완만하다). 하지만, 산소분압이 낮은 곳에는 약간의 산소분압 변화에도 헤모글로빈과 산소의 결합은 크게 변하는(기울기가 가파르다) 특징이 있다.
3. 산소해리곡선에 영향을 주는 환경
혈장 pH(산-염기)가 낮아지거나, 체온이 올라가는 등의 생리적 변화들은 모두 산소해리곡선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이런 변화들은 헤모글로빈의 단백질 구조를 변화시켜 산소와 쉽게 결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를 트럭이라 생각했을 때, 짐을 실어야 하는 짐칸의 모양이 틀어져서 짐을 실을 수 없는 상황과 같다.
체온이 상승하면 헤모글로빈 산소포화도는 감소돼 산소해리곡선이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감염이나 염증처럼 대사가 활발한 상태에서는 산소가 좀 더 쉽게 헤모글로빈에서 떨어져 나온다. 임상적으로 ‘체온이 올라가게 되면 조직은 산소가 많이 필요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폐렴으로 열(fever)이 있는 환자의 경우 호흡수와 심박동수의 증가를 흔히 볼 수 있다. 열이 나면 산소요구량이 많아진다. 적혈구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산소요구량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호흡수와 심박동수(한 번 더 숨 쉬고, 한 번 더 뛰는)가 증가하는 것이다. 마치 100m 달리기를 끝낸 사람처럼.
반대로 저체온이라면 어떨까? 의료진에 의해 실시간으로 활력 징후들을 조절할 수 있는 수술방이라면 짧은 시간 동안의 낮은 체온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저체온은 수술받는 동안 조직의 ‘산소요구량을 떨어뜨리고 조직을 안정’시켜 환자에게 유리하다. 예를 들어, 심장 수술(개흉술)은 체외심폐순환기(cardiopulmonary bypass; CPB)를 심장과 주요 혈관에 연결하고 심장을 정지시킨 후 수술을 진행한다. 심장을 정지하고 CPB를 가동하는 경우 환자의 심장과 뇌를 보호하기 위해 체온을 약 25도~30도까지 낮춘다. 어떤 경우는 20도 미만의 극저체온요법이 보조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인체생리학을 기반으로 인간에게 각종 질환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기전을 알기 쉽게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