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1-11

첫눈의 설렘, 아직 갖고 계시군요

요즘 많은 분들이 첫눈을 기다립니다. 사실 첫눈의 설렘은 눈이 오기 전, 기다리는 동안에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첫눈 뿐 아니라 첫 키스, 첫 출근, 첫날 밤 등등 유독 ‘첫’이란 말이 앞에 붙는 순간, 감정의 동요가 생깁니다. 영화는 개봉일에 봐야 하는 관객, 그 시즌의 ‘잇 백’을 제일 먼저 팔에 걸고 다녀야 하는 쇼퍼홀릭,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식당을 찾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식도락가들도 ‘첫’이란 단어의 마술에서 자유롭지 못한, ‘첫’에 중독된 사람들입니다. ‘첫’이란 단어에는 어떤 마법의 주문이 걸려있는 것일까요?

첫 경험은 백지장 위에 처음 줄을 긋는 것과 같습니다. 그 줄을 따라서 막막한 백지 위를 걸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내 마음 안에 길을 새로 개척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 키스의 순간, 혹은 새로운 직장에 처음 들어설 때, 사람의 머리는 그 이전에는 세팅돼 있지 않았던 새로운 공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미지의 영역 앞에서 흥분하게 되고요. 아무리 작은 오솔길이라도 ‘이런 길도 있구나’라는 가능성을 발견하면 참 신나지 않습니까.

이런 새로움이 주는 쾌감은 큽니다. 성격적으로 유독 금방 싫증을 내고, 첫 시도에서 겪는 불가피한 실수와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남들보다 빨리, 맨 처음 해내고, 자랑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지겨움과 뻔함입니다. 첫눈 내린 마당에 자기 발자국을 찍고 싶은 욕구는 강해도, 며칠 내내 눈이 내려 갇혀 버리면 견디기 힘들어할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안 가본 길을 개척하는 기쁨은 크지만 반복적으로 같은 길을 오고 가는 일상에 쉽게 지루해합니다. 익숙함을 권태와 연결시킵니다. 권태를 호환 마마보다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험을 하거나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중년에 바람을 피우거나, 잘 다니던 직장에 염증을 느낀다며 부업을 알아봅니다. 첫사랑의 짜릿함을 잊지 못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합니다. 블루오션 개척 공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립니다.

첫 경험의 짜릿한 자극을 쫓아만 다닌다면 쪽박을 찰 수도 있습니다. 노인들의 고관절 골절이 대부분 첫눈 오는 날 아침에 생긴다고 합니다. 오늘은 한번 창고에 모셔두었던 기억을 되살려 기름 치고, 나사를 꼭꼭 조여 보세요. 인생에는 ‘첫 경험’ 보다 지루하긴 하지만 안정적인 익숙함이 필요할 때도 있답니다.

/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 본 기사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