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2-01
지난 주에 내 외래를 방문한 A씨는 37세 남자이다. 약 2 주전에 숨이 찬 증상이 있어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더니 “말기 신부전증이고, 입원해서 투석치료를 해야 한다” 는 진단을 받고 혈액 투석을 4회 시행 한 후 내 병원을 방문하기 하루 전에 퇴원하고, 본인의 병 상태에 대해서 확신이 들지 않아서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자 내 진료실을 방문하였다.
A씨는 혈색이 약간 창백하고 피부가 건조해 보였다. 말기 신부전증은 혈액 검사와 신장 초음파 검사에서 보이는 소견이 매우 명백하므로 오진의 가능성이 드물다. 하지만 A씨는 “2주 전까지 별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투석치료를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신장이식이 가장 궁극적인 치료가 될 정도로 중한 말기 신부전증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었다. 우리 병원에서 시행한 신장 초음파 검사에서 양쪽 신장이 모두 작게 수축되어 있었고, 신장 기능을 대변하는 혈청 검사 결과인 크레아티닌 (cr) 농도가 8.7 mg/dL로 매우 높았다 (정상 값은 0.8-1.2 mg/dL). 초음파 검사에서 신장이 작다는 것은 신장에 흉터가 생기고 수축되었다는 듯으로 신장 질환이 오랫동안 진행했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혈청 cr농도는 회복이 가능한 급성 신장질환에서도 올라갈 수 있지만 A씨와 같이 초음파에서 신장의 크기가 눈에 띄게 작아져 잇는 경우에는 만성 신부전증이고 그 중에서도 투석치료를 하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운 만성 신부전증의 5 단계, 즉 말기 신부전증으로 진단한다.
통계에 의하면 투석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말기 신부전증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받는 정신적인 충격은 말기 암으로 진단받는 거나, 배우자는 자식 등 직계 가족의 사망에 비교될 만큼 크다고 한다. 이렇게 중한 질환으로 진단을 받으면 환자의 반응은 약 3단계로 진행한다. 1단계는 “부인”의 단계이다. “나한테 그런 중한 병이 생겼을 리가 없어, 의사의 오진일 꺼야, 혹은 투석이 꼭 필요하지 않는 단계인데 의사가 그렇게 몰아 붙히는 거야”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다. A씨도 유명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많은 검사를 하고 진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고, 투석을 임의로 중단하고 약만 먹으면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2단계는 “자포자기”의 단계이다. “그런 병인지 모르나, 내 몸은 내가 안다. 내 방식대로 살다가 죽겠다” 하는 마음이고, 약물치료, 식이요법, 투석 치료를 모두 게을리 하면서 분노를 느끼는 단계이다. 3단계는 1,,2 단계를 모두 거친 후에 “순응” 하는 시기로 치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환자 스스로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시기이다. 지난 20여년 말기 신부전 환자를 치료해온 내 경험에 의하면 말기 신부전증으로 갑자기 진단을 받는 환자는 거의 예외없이 3단계를 모두 거치게 된다. 이 때 환자와 의사 사이에 신뢰가 있으면 1단계와 2단계를 짧게 거쳐서 안정적으로 치료하는 3단계에 안착하게 되는데 만일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면 1단계와 2단계가 길어져서 여러 가지 합병증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은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
A씨에게는 초음파 소견, 혈액 검사 결과 그리고 대학병원에서 복사해 온 검사 결과를 놓고 질병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2주 전까지 아무 증상이 없었다고 하던 A씨는 “1년 전 건강검진에서 단백뇨가 있다는 결과를 통보 받았으나 무시했고, 또 평소에 수면 장애와 만성 피로가 있었고, 또래 동료들에 비해서 체력이 약하게 느꼈다”고 했다. 오랜 상담 끝에 A씨는 적어도 1년 이상 신장질환의 모호한 증상이 있었음을 자각하고 신장이식을 비롯한 장기 치료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만성 신장질환은 자각 증상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자각증상이 없는 환자에서 소변 검사에서 단백뇨, 또는 혈뇨가 있는 경우가 많다. 소변검사는 일반적인 건강검진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는 것이 자각증상이 없는 신장질환을 조기 발견하는데 유용하다. 그리고 검진 결과에 정밀검사를 권유받으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만성 신장질환은 치료해서 완치하는 질환이 아니고 꾸준히 치료하고 다스려서 병의 진행을 지연시켜야 하는 지루한 질병이다. 따라서 신장질환을 발견하면 평생 치료받는다고 생각하고 신장 전문의와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5년에 말기 신부전으로 진단할 질환을 꾸준히 치료해서 10년 혹은 20년까지 신장질한의 악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면 성공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다.
말기 신부전증은 투석치료에 의존하거나, 남의 신장을 이식 받아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중한 질환이지만,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30년 이상 생존하는 질환이다. 고등학생 때 말기 신부전증으로 진단받고 투석 치료를 하면서 대학에 진학하고 신장 이식을 받은 후 더 공부해서 현재 국제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학 다닐 때 말기 신부전증으로 진단 받고 혈액투석을 하다가, 첫 번째 신장이식에 실패하고 다시 두번째 신장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잘 나가는 회사원도 있고, 스웨덴에서 공부할 때 내 동료 의사는 고등학교 때 말기 신부전증으로 진단 받고 혈액 투석 만 28년을 하면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신장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의사도 있다, 이 분은 5년 전에 신장 이식을 받고 건강하게 진료하고 있어서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많은 환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있다. 비록 마ㅏㄹ기 암만큼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 온 말기 신부전증이지만 환자의 의지와 의료진과 가족의 도움이 있으면 건강을 유지하면서 장수 할 수 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환자에게 맞는 신장 전문의와 함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길 기원한다.
박민선원장과 함께 알아보는 활성산소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