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6-03

최근 뉴스에는 올 해 초에 논산 훈련소에서 자살한 훈련병 정모씨에 대한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20세를 갓 넘긴 아름다운 청년이 자살하는 비극만으로도 가슴을 후비는 슬픈 소식인데, 자살하기 전날 꾀병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 목숨을 끊었다고 하고, 더욱이 죽기 전에 남긴 글에서 죽을 것같이 아프다는 사연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죽을 것같이 아픈 것도 모르고 국가에서 잘 돌봐줄 것을 믿고 있던 정 훈련병의 부모가 이런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아들의 아픔도 모르고,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던 그 무력감에서 오는 회한에 온 몸이 떨렸을 것이다.

 

우리 아들이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아이를 데려다 주고 돌아 오는 길에 남편이 아이의 목숨을 나라에 맡기고 가는 것이다. 이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해서 잠시 숙연해졌던 일이 있다. 아이들이 군대에 갈 때 부모는 국가가 잘 돌봐 줄 것으로 믿고 귀한 아들을 보낸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고,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직도 어린애 같은 내 아들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뉴스를 아무리 읽어 봐도 정 훈련병이 귀가 아프다고 호소했다는 내용은 있지만 사후 부검에서 귀에 어떤 병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귀가 아픈 질병은 다양하지만 염증 (중이염), 신경장애 (이명이나 통증 등의 증상을 동반), 종양, 상해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염증이나, 종양, 상해에 의한 귀 질환은 비교적 경험이 적은 군의관도 쉽게 진단이 가능하다. 청신경이나 안면 신경 장애에 의한 이명이나 귀 속 통증은 의사가 육안으로 쉽게 진단하기 어렵다. “군의관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니 중이염이나 종양, 혹은 상해 등 부검으로 쉽게 발견되는 귀의 질환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경 장애에 의한 이명이나 귀 안의 통증은 환자에게는 정말 죽을 것 같이 괴로워도 확실하게 아픈 부위를 진단하기 어려워서 꾀병으로 치부되기 쉽다. 또 환자는 죽을 것같이 아프게 느끼지만 실제로 원인이 되는 육체적인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정신과적인 문제 (psychosomatic syndrome)도 건강을 해치는 중요한 질환이다.

 

생생하던 젊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행과 그 부모의 가슴 찢어지는 슬픔과는 비교할 수 없을지 몰라도, 정 훈련병을 치료했던 군의관, 의무병 그리고 간호장교 모두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짐을 지게 되었다. 군의관, 의무병 그리고 간호 장교 모두 아마 20대의 젊은이들일 것이다. 경험이 적고 아직 갈 길은 많은 청춘들이다. 그들의 일천한 경험으로는 육체적인 문제가 확인되지 않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의 문제 혹은 정신적인 문제까지 알아 보는 안목이 없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믿을 만한 의사로 독립하기까지에는 의과대학 졸업장과 의사 면허증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선배들의 지도와 환자로부터 습득하는 살아 있는 실전경험이 필요하다. 경험이 풍부한 의사가 되어도 내 환자에 대한 최종판단과 결정은 내가 내리고 나의 책임이 된다. 주위에 같이 의논할 동료나 선배가 있다면 같이 의논하고 더 나은 결정을 할 수도 있겠으나, 유일한 의사인 경우에는 모든 책임을 지게 되어 있는 아주 외로운 직업이다. 군대와 같이 계급의 상하가 분명하고 비교적 경직된 조직에서는 훈련병을 담당하는 의사가 상급의사들과 환자에 관해 의논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정 훈련병의 경우에도 의사가 보기에는 육체적인 문제가 없는데 많이 아파하는 병사를 선배 의사와 의논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렇게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이런 불행을 막고, 군의관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서 군대의 말단 조직에 배치된 젊은 군의관들이 상부 조직의 경험 있는 의사들과 환자에 관해 의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들의 불행한 소식을 다시는 듣지 않도록, 또 아직 세상에 첫 걸음도 떼어 놓지 못한 사랑하는 후배 의사들이 외로운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열린 제도가 정착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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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이 맑아야 건강합니다.

[더맑은 클리닉]
박민선 대표원장

1983 이화여자대학 의과대학 졸업: 의학사
1986 한양대학교 대학원 졸업: 의학석사
1995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 대학원 졸업 : 의학박사
순천향대학 의과대학 신장내과 교수 역임
박스터 아시아태평양 의학고문 역임
박민선내과 원장 역임
현 더맑은 클리닉 대표원장

박민선원장과 함께 알아보는 활성산소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