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1-27

현대인의 건강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변수 중 하나는 식사습관입니다. 포만과 탐식의 쾌락에 빠져버린 인류는 뒤뚱거리는 하마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현대인 입맛을 사로잡은 인스턴트 식품과 패스트푸드는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심장병, 당뇨병 같은 생활습관병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치면서 바뀌어 버린 현대인의 입맛과 식사습관을 심각하게 되짚어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식단을 바꾸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화학조미료와 식품첨가물에 더 깐깐하게 반응하고, 유기농산물과 같은 ‘웰빙 음식’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수 십 년간 길들여진, 아니 유전적인 입맛의 변화가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입맛과 식사습관을 바꾸려는 분들을 위해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원칙 또는 노하우를 소개할까 합니다. 대부분 스스로 실천하고 있거나,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들로 개인적으로는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첫째, 좀 더 적게 먹기 위해 식사 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소식(小食)은 식단혁명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나라의 비만 인구는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동물의 유전자는 아사(餓死)를 대비해 가능한 많이 먹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데, 그것이 현대인을 하마처럼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젠 살기 위해 이 유전자를 개조시켜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적게 먹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소식을 결심했다 실패하고, 그 경험 때문에 소식을 어렵게 생각하지만 해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포만감이 드는 음식부터 먼저 먹으면 됩니다. 차병원 비만센터 김원우 교수팀이 한국인 기호음식 1700여가지의 포만감 지수를 계산한 결과 전통적인 한국음식과 과일, 야채는 포만감 지수가 매우 높고 칼로리가 낮았습니다. 반대로 라면 같은 인스턴트 식품이나 튀김류, 중국음식, 분식류는 포만감 지수가 낮고 칼로리도 높았습니다. 따라서 식사를 할 때 포만감이 빨리 드는 야채나 나물, 찜, 구이 같은 반찬을 먼저 먹고 나중에 밥을 먹는다면 조금만 먹어도 빨리 배가 불러 자연스레 소식을 할 수 있습니다. 식사 전 물을 많이 마시면 밥을 적게 먹을 수 있다고 추천하는 사람이 있는데, 물을 마시면 포만감은 들지만 소화액을 희석시켜 소화장애를 초래하므로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한가지 첨언(添言)할 것은 식당에서 음식을 좀 적게 시키자는 것입니다. 동료 또는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 가면 물어보지도 않고 음식을 많이 시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야 후덕하고 통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의 얘깁니다. 요즘은 음식을 많이 시키면 “미련하다” 소리를 듣습니다. 이미 배가 찼는데도 상대에게 억지로 “좀 더 드십시오”라고 권하는 우리 문화도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현미밥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인 식단혁명의 출발이자 기본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현대인 건강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비만과 당뇨병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흰 쌀밥입니다. 당도가 높은 백미는 혈당을 높여 당뇨병을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잉여 칼로리를 지방으로 축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비만이 대부분 탄수화물의 섭취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백미는 또 중성지방을 높이기 때문에 고지혈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미는 당 지수(음식이 체내에서 당으로 바뀌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가 낮아 혈당이 급상승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잉여 칼로리가 지방으로 축적되는 과정을 차단합니다. 칼슘과 마그네슘 등 영양소와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점, 식이섬유가 백미의 10배 가까이 높아 변비를 해소하고 중금속 등 유해물질을 배설시킨다는 것도 현미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현미에 도전하려면 밥맛을 포기해야 합니다. 밥을 지어 놓으면 푸석푸석하고 까칠까칠해 찰진 흰 쌀밥 맛과는 도대체 비교가 안됩니다. 그러나 먹다 보면 그럭저럭 먹을 만하고 조금 지나면 오히려 구수하기까지 합니다. 현미밥을 먹기 시작한지 3~4년쯤 됐는데 처음엔 불평하던 제 아이도 요즘은 군소리 없이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학 전 아동이나 노인, 위염이나 위궤양이 있는 환자에겐 소화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셋째, 국이나 찌개 국물을 조금씩 남기는 식사습관입니다. 나트륨과 칼로리 섭취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세계보건기구의 하루 나트륨 섭취 권장량은 2000mg(소금 5g)이지만 한국인 평균 섭취량은 4900mg(소금 12.5g) 정도로 매우 많습니다. 영양학자들은 나트륨 과다섭취의 주범을 국물이라고 지목합니다. 칼국수 한 그릇엔 약 2900mg의 나트륨이, 우동이나 라면엔 약 2100mg의 나트륨이 들어 있습니다. 나트륨은 대부분은 국물에 녹아 있으므로 국물만 남기면 나트륨 섭취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설렁탕이나 갈비탕, 곰국의 국물은 나트륨뿐 아니라 칼로리도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때문에 의사나 영양학자들은 건더기만 건져 먹고 가급적 국물을 남기는 식사 습관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넷째, 단맛보다 쓴맛에 입맛을 들입시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단맛을 찾고 쓴맛은 뱉는다고 합니다. 단맛은 대부분 칼로리가 높아 에너지원이 되지만, 쓴맛에는 독(毒)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본능도 마찬가지여서 아이들은 사탕처럼 단맛만 찾지 쓴맛은 뱉어 냅니다. 그러나 비만과 현대병을 이겨내려면 본능을 억누르고 쓴맛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현대인의 단맛은 칼로리만 높고 영양분은 없는 설탕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둘째 건강에 좋은 나물과 야채, 차(茶) 등은 대부분 쓴맛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단맛보다 쓴맛을 즐기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탕 섭취를 줄이려면 음식도 음식이려니와 특히 음료수에 주의해야 합니다. 진한 ‘다방커피’는 물론이고 청량음료나 과일주스, 드링크류에도 설탕이 매우 많이 들어 있습니다. 다방커피를 즐기신다면 지금부터 블랙커피에 도전해보시고, 음료도 가급적 생수나 녹차로 바꾸실 것을 권하겠습니다.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쓴맛에 익숙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쉬우며, 막상 익숙해지면 단맛보다 쓴맛이 훨씬 깊고 좋은 맛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다섯째, 혀에 살살 녹는 감칠 맛을 버리고 좀 퍽퍽한 맛에 익숙해 집시다. 사실 음식의 맛은 지방이 좌우합니다. 퍽퍽한 닭 가슴살보다 닭 다리나 날개가 더 맛있고, 쇠고기도 지방이 촘촘히 박힌 꽃등심을 최고로 칩니다. 찌거나 삶은 것보다 볶거나 튀긴 요리가 더 맛있는 것도 조리 과정에서 기름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에 좋은 지방은 비만을 일으키고, 혈관을 공격합니다. 비강(鼻腔)을 파고드는 튀김이나 프라이드 치킨의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고 약간 밋밋하고 담백한 맛에 입맛을 들여 봅시다. 기름을 쓰지 않고 찌거나 굽거나 무친 요리가 훨씬 깨끗한 맛 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을 줄여 나갑시다.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꾸 찾게 되는 건 급할 때 신속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바쁜 현대인에게 인스턴트 식품을 줄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일일이 음식 재료를 사서 직접 조리해 먹으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에 혼자 사는 분에겐 특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일이 아닙니다. 식단혁명을 위해선 좀 더 부지런을 떨고 까다롭게 굴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요즘은 즉석에서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생 음식들이 많이 출시돼 있습니다. 면류만 하더라도 생라면, 생자장면, 생메밀면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인스턴트 식품보다 가격도 비싸고 유통기한도 짧아 불편하지만 식단혁명을 위해선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합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젠 입맛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재삼 강조하지만 현대인의 식사 습관은 운동과 함께 건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수 십 년간 길들여진 입맛이 하루 아침에 바뀌진 않겠지만 필요성을 절감하고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 조선일보 의료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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