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오래 가는 파스

보라매병원

정우영 교수

심장센터에서 하는 검사 중 가장 많이 하는 검사가 심전도 검사이다. 심전도 검사는 심장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를 민감한 전극을 통해 받아 종이나 화면에 파형(wave)으로 기록하는 검사이다. 어떤 심장 질환은 심전도 사진 한장으로 진단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심장질환 분야의 기본 중의 기본 검사다. 환자 중에서 계속적으로 심전도를 보아야 할 경우에는 아예 모니터 화면에 연결하여 감시한다. 이 때 전극과 체표를 연결하기 위해 쓰는 흰색 딱지가 있다. 흔히들 electrode라고 부르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electrode가 아니라 electrode를 부착하기 위한 patch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환자들이 흔히 붙이는 파스와 색깔도 같고 끈끈이도 묻어 있어 환자들 중에는 파스인 줄 아는 분도 있다. 다만 똑딱이 단추가 붙어 있고 크기가 파스보다는 작다는 점이 차이다. 물론 특유의 파스 냄새도 없다.

심방세동이라는 부정맥이 악화되어 응급실에 갔다가 병세가 호전되어 귀가 조치 후 외래로 오신 할머니 환자 한 분이 있었다. 항응고제 치료의 대상이 되기에 항응고제 치료의 필요성과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부작용에 대해 설명 드렸다.

의사 : 할머니, 그럼 약 잘 드시고 한 달 뒤에 검사 하시고 다시 오세요. 일생 치료하는 병이에요.
할머니 : 네, 그래요. 수고하세요.
할머니 : (머뭇 머뭇) 근데, 선생님. 이 파스는 이제 떼어도 되나요? 약기운도 다 떨어진 것 같은데..
의사 : (어리둥절) 파스요? 뭐지요?
할머니 : (상의를 걷어 올리며 몸에 붙은 딱지를 짚는다) 이거 말이에요. 일주 전에 응급실에서 붙여 준 건데, 붙이고 나서는 가슴도 편안해 지고 괜찮더니 지금은 영 효과가 안 나타나는 것 같아요. 언제 떼라는 말이 없어서... 이거 효과가 그렇게 오래 가나요?
의사 :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 네 할머니. 이건 파스 아니에요. 맥박 사진 찍을 때 붙이는 딱지에요.
할머니 : (불그레~) 아, 그래요? 약이 아니라고요? 그럼 떼도 되지요?
의사 : 그럼요. 죄송합니다. 떼라고 말씀 드렸어야 하는데..
할머니 : 아니지요. 당연히 뗄 줄 알고 말을 안 했겠지요. 어쩐지 똑딱이가 붙어 있어 이상타 했어요..
의사 : (딱지를 떼어 드리며) 나가셔서 버리세요.

의료, 의학에 관한 정보는 이제 더 이상 의사들만의 것이 아니다. 연일 신문, 방송에는 의학지식이 (동물실험 단계의 성공마저 치료의 장이 열렸다고 말하고 있으니 김치국부터 마시는 경향이 있다.) 소개되고 있고 인터넷 검색에 보면 질병 소개, 치료법 소개는 물론 의사들이 학회에서 발표하는 연구결과도 강연 슬라이드째 나와 있다. 이렇게 전문지식이 대중화되면서 이 지식에 의거하여 임의대로 자가진단과 자가치료를 하고, 의사와 간호사의 지시도 검증을 해 보려는 환자가 늘어 가는 요즘, 이처럼 담당의사나 간호사의 말 없이는 딱지 하나 떼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않는 순수(?)한 환자를 보게 되면, 진료실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가 버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남들은 미련하다고 할지도 모를 이 할머니를 보며, 그래도 이렇게 나를 믿고 따라 주는 환자가 있다는 생각에 오늘도 외래진료로 지친 몸을 채찍질하며 병동 회진하러 올라 간다.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의 신뢰를 먹고 사는 존재인가 보다.


/기고자 : 보라매병원 정우영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래와 입원 진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소하지만 생각하고 느껴보아야 하는 일상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환자들이 모르는 질병의 숨은 면, 그래서 벌어지는 오해, 의사들의 말 못할 고충, 내가 모르는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훈훈한 병원문화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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