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골에서 몸짱으로!
나는 누구이며 왜 운동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스미골에서 몸짱으로
강승구 저자
어릴 때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제대 후까지 몸에 맞는 옷 한번 제대로 입어 보지 못하고 항상 큰 옷만 입었었다. 선천적으로 너무 마른 몸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후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 되어 인터넷 동호회를 운영하였고 함께 지식을 공유하고 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인해 제2의 인생이 시작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가족 내력과 체질상의 문제로 나에게는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닫아 버려서일까? 아니면 노력을 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었을까? 마음먹고 결심을 실행하게 된 이후부터 변화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 조금씩 입맛, 체형이 변하고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살쪄서 고민인 분들이 아주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조금만 먹어도 또는 물만 먹어도 살이쪄 고민이라고 하지만 의외로 왜소한 체격과 건강미 없어 보이는 마른 몸 때문에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다.
우리 식구들은 살이 찐 체형이 없었다. 부모님도 어려서부터 마른 몸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께 분유를 사주시기도 하였다. 물론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탓도 있지만 또래 친구들보다 외형적으로도 힘이 없게 보인 건 사실이었다. 운동을 하면 달라질까 싶어서 태권도, 검도, 킥복싱 등을 배웠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마른 몸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늘 걱정을 하셨고 체질상의 문제였는지 중학교 다닐 때까지 야뇨증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나를 다그치시거나 화를 내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마 허약한 내 체질과 체형을 보시고 안쓰러워서 별 말씀을 안 하셨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에는 아주 마르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 키가 크면서 얼굴은 점점 홀쭉해졌다. 친구들이 그때부터 전봇대, 젓가락, 허수아비, 멸치 등의 별명을 부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서 남녀공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른 몸 때문이었을까, 여자들에게 말 거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내 성격에 스스로 화가 나기도 했었다. 너무 가는 팔과 목, 다리 때문에 여름에도 반바지나 달라붙는 옷은 입지도 못했다. 당시에는 몸에 달라붙는 쫄티가 유행이었고 과티를 쫄티로 맞춘다는 의견이 잠시 있을 때 평범한 체형의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군대에 가기 위해 휴학 후 친구들과 노동일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함께 간 친구들은 모두 불려나가고 혼자만 남아 있다가 한참 후에 다른 허드렛일에 불려서 갈 때 너무 창피했던 경험이 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엔 180 cm 키에 체중이 54 kg가 되지 못했다. 또한 한여름에 입대해서 힘들어서인지 그나마 있던 체지방마저 쏙 빠져서 50kg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신체등급은 1등급으로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만해도 가는 허리 때문에 누나 바지와 상의를 입고 다닐 정도였다.
버스나 전철을 탔을 때 나와 같은 체형의 사람이 있으면 동지애를 느껴서 위안을 삼기도 하였다.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는데 여고생들이 모두 앉아있는 것이었다. 서서 가다 보면 내 몸을 보고 흉을 보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다음버스를 기다린 적도 있다.
또 어느 날은 전철을 탔는데 자리가 생겨서 앉게 되었는데 옆에 앉은 여성의 종아리만한 내 허벅지가 너무 창피해서 일어난 적도 있었다.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가 ‘밥은 먹고 다니냐?’ ‘밥 좀 많이 먹어라’ 또는 ‘남자가 너무 힘이 없어서야 되겠냐’이런 말들이 비수로 내 가슴을 찌르곤 하였다.
가끔 사람들이 내 다리나 팔을 보는 것 같으면 괜히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던 내 청춘의 시절이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쉽게만 느껴진다.또한 여자들에게도 남자가 어깨가 너무 좁다느니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들었을 때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였다.
그때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 친구조차 옷 태가 나지 않는다, 너무 힘없어 보인다 등의 무시하는 말을 자주 하곤 하였다. 그리고 당시에 여자 친구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뒤통수를 몽둥이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고 그 일을 잊고자 노력하기 위해 일에 매진해 보았지만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는 날에는 술로 아픔을 달래야만 했고 주말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나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고 몸을 혹사시킨 결과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뒷목이 뻐근하더니 안면 신경에 문제가 생겼다. 큰 병을 진단 받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병원 한번 가본 적이 없던 나에게 몸이 신호를 주는 것이었다.
안면근육이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이제껏 무리했던 과중한 업무를 정리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점차 본연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더 건강해지고 잘 되야 한다는 일념과 내 인생을 한번 바꾸어 보자 라는 결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는 노력을 하지 못했다고 판단되어 내가 그 동안 겪어왔던 나 자신만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고자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조기 기상과 함께 무조건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마다 간식을 챙겨먹으면서 앞으로 내가 변화될 롤 모델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설정하고 큰 사진을 방 문에 붙여두면서 자기암시를 걸기도 하였다.
예전의 아픈 기억이 날 때마다 운동을 하기로 하였고 하루 영양섭취를 기존보다 2배로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03년의 여름을 시작으로 내 인생의 봄날은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있었다.
현재 네이버 대표카페 ‘스미골들의 동굴’을 운영하면서 예전의 내 모습을 보듯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다. 한창 피 끓는 젊은 시절에 의기소침 하며 자격지심 때문에 남들 앞에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고 성격도 외향적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없이 후회되고 또 대처방법을 알지 못해 고민만 해야 했던 시간이 안타깝다고 생각하였다.
요즘은 온라인 활동으로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서도 그 사람의 행동과 생활습관, 운동방법, 식이 등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누구에게나 정보가 공유되어 나와 같은 아픔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이 도움과 위안이 되며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앞으로 예전에 겪었던 경험담과 컴플렉스 극복법, 홈트레이닝 기초 다지기, 체계적인 분할운동, 정체기, 부상, 성공담 등을 수기로 적고자 한다.
/ 기고자 스미골에서 몸짱으로 강승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