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어머니 위해 어린이로 남은 피터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스코틀랜드의 작가 제임스 배리는 10남매 중 7번째 아이였다. 유년기의 그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였는데 여섯 살 때에 그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이 발생했다. 양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열세 살 난 둘째 형 데이빗이 스케이트 사고로 사망했던 것이다. 집안의 희망이자 가장 기대했던 아들을 잃은 슬픔에 어머니는 몸져눕고 말았다.

어두컴컴한 방의 병상에 누워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어머니는 제임스를 볼 때마다 데이빗으로 착각해 말을 걸었다. 뛰어난 형의 그늘에 가려서 이제껏 부모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어린 제임스는 뒤늦게라도 어머니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었다. 제임스는 자기도 모르게 죽은 데이빗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데이빗은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키도 그대로이고 나이를 먹지도 않으면서 조금도 어른을 실망시키지 않는 완벽한 어린이였던 것이다. 이 강렬한 경험은 제임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를 위해 ‘자라고 싶지 않았던’ 제임스의 키는 150㎝ 정도에 머물렀다.

어른이 되었지만 키도 작고 어린이의 정서를 가진 배리는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으로 진출하여 극작가가 되었다. 그의 취미는 큰 개를 끌고 켄싱턴 공원에 나가 아이들과 노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배리는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나온 가족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그는 매일같이 이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피터 팬, 자라지 않는 아이’의 여러 캐릭터들과 줄거리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주인공 ‘피터 팬’의 피터는 아이들의 성에서, 팬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신에서 따온 것이었다.) 1904년에 발표된, 배우가 커다란 개를 연기하고 꼬마 주인공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감각의 이 연극은 영국과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정신적 충격을 환상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킨 배리는 평생 어려운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돌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29년에 아픈 어린이를 돕기 위해 설립된 런던의 한 병원에 ‘피터 팬’의 저작권을 양도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의학적으로 배리의 경우는 스트레스에 의한 ‘심인성(心因性) 소인증(小人症)’의 전형적인 증례라고 한다. 한편 현대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못하고 자기도취적인 남성상을 일컬어 ‘피터 팬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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